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열 번째 만남은 건축사사무소 상상이상의 이상진 대표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10>
이상진 건축사사무소 상상이상 대표
이상진 대표가 말하는 건축 : 기당미술관
기당미술관을 우연히 만났다. 일 때문이었다. 그 일로 기당미술관은 친구가 되었다. 기당미술관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는 숨은 보석이다.
기당미술관은 고인이 된 변시지 화백의 숨결이 그대로 녹아 있다. 변시지 화백은 제주의 정서를 표현한 작가였다. 바탕색은 장판지처럼 꺼칠한 황갈색, 그 위로 어눌한 먹선이 화면을 덮는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폭풍이 가슴을 파고든다. 제주의 거친 바람이 캔버스를 뚫고 몰아치려 한다. 변시지 화백을 두고 ‘폭풍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기당미술관은 변시지 화백의 선물이었다. 변 화백의 외사촌형이었던 기당 강구범씨가 변시지 화백을 찾아 일본에서 고향으로 날아왔다. 재일기업인이던 강구범씨는 이런 말을 꺼냈다. “도울 게 없느냐.” 변 화백의 답은 깔끔했다. “미술관을 선물해주시오.” 기당미술관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기당미술관은 삼매봉 자락에 있다. 웅크리듯 앉아 있다. 변시지 화백은 기당미술관을 설계할 인물로 건축가 김홍식을 꼽았다. 김홍식의 아버지가 제주 근대건축의 1세대인 김한섭이었기에, 믿고 맡겼다. 예술가는 예술가를 알아보는 법이다.
기당미술관은 육지에서 만날 수 없는 양식이다. 제주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건 변시지 화백이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기당미술관의 겉 풍경은 제주초가에서 낯익게 봐왔던 ‘눌’의 조합이다. 눌은 초가의 필수 요소였다. 농사 이후를 말하는 증거물이었고, 다르게 표현하면 ‘풍요’와 ‘여유’를 읽게 만드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미술관도 그랬으면 하는 기대감이 크다. 미술관에 오는 이들은 여유를 지니면서 작품을 둘러보고, 작품을 보고 난 뒤에 새로운 문화를 가득 안고 돌아가는 풍요를 느끼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건축을 논할 때 늘 던지는 고민이 있다. 바로 지역성이다. 눌을 형상화한 기당미술관은 건축에서 지역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기당미술관이 지역성의 정답은 아니지만, 지역성을 해석하는 다양한 행위의 한 단면임은 드러낸다.
사람이 기억을 먹고 살 듯, 도시와 건축도 과거의 기억을 품고 산다. 특히 장소성이 강한 도시와 건축은 그것이 자리 잡은 지역의 자연과 생태를 잘 나타낸다. 여기에서 장소성은 ‘그곳’에서만 구현된다. 그런 이유는 애초에 땅은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삼매봉의 숨은 자락에서 잘 어울리는 기당미술관이 ‘다른 곳’에 선다면 어울릴까? 그럴 리 없다. 형태와 재료가 ‘제주 것’인데, 어찌 다른 곳에서 어울릴 수 있을까. 그건 공간의 차이이며, 장소의 다름이다. 그게 곧 건축에서 말하는 지역성이며 정체성이다.
기당미술관은 ‘톱 라이트’라는 천창을 거쳐 빛을 흡수한다. 건축가 루이스 칸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빛을 디자인하는 것이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기당미술관은 자연의 빛이 공간을 더 빛나게 해준다.
미술관을 들르면 작은 것도 놓치면 안 된다. 기당미술관 내부를 걷다 보면 미술관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모형도 누군가의 작품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모형을 보러.
이상진 대표와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 건축사사무소 이름이 ‘상상이상’인데,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제 이름과도 중복되죠. 건축사라는 직업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일을 하기에 사람들도 기대를 하잖아요. 집을 지을 때 이렇게 짓겠다, 요렇게 짓겠다는 것에 부응해야 하고, 기대하는 것 이상의 만족을 드리고 싶은 의미에서 ‘상상이상’이라고 붙였죠.
- 제주엔 언제 내려오셨나요.
2015년 2월입니다. 10년이 다 되었네요. 제주 건축이 최고 정점을 찍을 때였죠. 육지에서 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일을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왔거든요. 마침 새로운 일을 찾을 시기였는데 제주도에 일이 생겼고, ‘한번 가볼까’라는 호기심이 생겼죠. 외국도 다녀오고 했기에 내려오게 됐는데, 지금까지 살게 되었네요.
- 설계 공모에 도전을 많이 하시나요.
2022년 상반기에 자격증을 따고, 그해 사무실을 오픈했어요. 경기가 썩 좋지 않을 때죠. 지금은 민간사업이 거의 없어서 공모 쪽으로 도전을 해보고 있어요.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계속 도전 중입니다.
- 민간이 많이 줄었군요. 민간에서 클라이언트가 설계를 의뢰하는 경우는 공모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민간은 공사비에 매우 민감해요. 예산을 다 준비해놓고 하시는 게 아니라, 대출을 받아서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아요. 상당수는 경제성을 고려하기에 공사비가 많이 들 것 같으면 재료를 바꾸곤 해요. 저희는 디자인 측면에서 작은 것이라도 제 결과물이기에 ‘내 새끼다’는 생각으로 좀 더 예쁘게 하려고 하죠. 그걸 건축주분들은 다 잘라내시더라고요. “꼭 있어야 되나요?” 이렇게 물으면 “건물에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해요.
- 건축사 개인 의견보다는 건축주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편이군요.
어찌 됐거나 발주처는 건축주이고, 저희는 소규모잖아요. 결국은 타협을 하게 되죠.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도 ‘이 정도는 하시죠’라면서 얘기는 건넵니다.
- 소개하고 싶은 건축물로 ‘기당미술관’이라고 사전에 말씀해 주셨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기당미술관은 잘 눈에 띄지 않죠. 작품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기당미술관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곳입니다. 제주에 내려오고 2년 후엔가, 우연찮게 업무 외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게 되었어요. 기당미술관 모형을 의뢰받았어요. 기당미술관 건축 30주년 행사에 맞춰 축소 모형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를 받은 거였죠. 모형을 만들려고 기존 도면을 샅샅이 분석하고, 현장을 확인하면서 도면과 다른 게 있는지를 체크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기당미술관 구석구석을 보게 되면서 마음에 가는 그런 건물이 되더라고요. 제 아이랑 기당미술관에 일부러라도 한 번씩 오죠. 모형을 보여주면서 “아빠가 만든 거야”라고 얘기도 해주고요.
-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니, 좋겠습니다.
남들은 모르는 비밀의 작품이죠. 주변인들에겐 “기당미술관에 가면 내 작품도 있다”라면서 우스갯소리도 하죠.
- 혹시 끌리는 공간 같은 게 있을까요?
기당미술관을 자꾸 얘기하게 되는군요. 기당미술관은 굉장히 의외였어요. 구석에 있는 조용한 건물로 생각했는데, 처음 봤을 때는 숲속에 동그란 버섯처럼 쭉쭉 올라와 있어서 오름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야 ‘눌’이라는 형태인 걸 알았어요. 내부는 나선형으로 돌아 감아가는 재밌는 공간 구성을 하고 있죠. 천장도 동글동글한데, 내부에서도 동그란 방과 같은 공간을 두고 있어요. 그런 공간엔 작품 하나만 딱 걸어놓기도 하고, 천장에서 빛도 떨어지죠. 여기에 이런 건축물이 있는데 왜 다들 모르지? 의외였어요. “와~ 대단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기당미술관은 외부도 외부이지만, 내부의 공간이 광장이 멋있죠.
- 어릴 때 특별히 좋아했던 공간도 있나요?
충주에 살 때 저희 집은 과수원 중간에 있었어요. 시골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주변은 다 과수원이었죠. 동네엔 빌라도 있었는데 과수원 너머의 저희 집으로 가려면 빙 돌아야 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올레와 같아요. 그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비만 오면 신발이 더러워졌죠. 가는 길은 그랬지만 그 안은 포근했어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저희 집은 마치 성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집 뒤로는 동산이 바짝 붙어 있었어요. 외부에서 친구들이 오면 동산에서 즐겨 놀았죠. 지금 거기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과수원은 대부분 사라졌어요. 그래서 좀 아쉽죠. 예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게 사라져버렸으니까요.
- 애가 있으니 좋은 기억을 많이 물려줘야겠네요.
처음에 제주에 왔을 때는 단독주택에 머물렀고, 지금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어요. 첫째는 처음 제주에 내려와서 살던 마당 있던 예전 집을 기억해요. 마당이 있으면 무조건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성장하기 전에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 요즘은 아이들의 바깥놀이가 쉽지 않죠.
우리 아이들이 큰 아이들이랑 사방치기를 하면서 놀더군요. 바닥에 테이프를 붙어서 놀았는데, 다다음날인가? 커뮤니티 단톡방에 놀았으면 치워야 하지 않느냐고 누군가 얘기를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는 주차공간이어서 차단을 하고, 노는 걸 자제하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 애들이 놀 공간이 많지 않아요. 제주도는 다세대주택이 굉장히 많은데, 주차공간이 문제여서 도로에 주차를 하곤 하는데, 결국 아이들의 놀이도 방해하죠.
제가 사는 곳도 여러 동이어서 규모는 꽤 커 보이는데 놀이터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어요. 초등학교 근처여서 아이들은 많은데, 학교를 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 건축사 입장에서도 놀이공간 확보는 중요하고,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죠. 어떻게 하면 놀이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돈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빈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은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돈으로 보이거든요. 그 자리에 건물을 지으면 나중에 수익이 발생하기에 빈공간으로 놔두려고 하지 않겠죠. 어쩔 수 없이 남는 공간이라면, 그런 공간이라도 아이들이 활동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해요. ‘모임마당’이라던가,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준다면 동네 어르신들도 이용하시겠죠. 외국은 도시계획을 하면서 중간중간 녹지 공간을 잘 만들어두는데, 우리는 그런 공간을 이용하기엔 너무 멀어요. (사람들이 사는 가까운 곳에) 억지로 만들어 주려는 의도도 없어요. 오히려 그런 남는 공간은 카페가 되죠. 결론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공간만 생겨나죠.
- 설계할 때 내 몸의 어느 기관이 반을을 하나요.
머릿속으로 시각화한다고 할까요? 눈이 좀 가깝겠군요. 머릿속으로 형태를 떠올리고, 작업을 해봅니다.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맞지 않아서 변경을 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는 3D가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보여주면 파악을 빨리 하세요. 저 역시 거기에 길들여져 있어요.
- 사시는 곳은 서귀포인데, 제주시보다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잖아요. 건축적으로도 해소할 방안은 없을까요.
일본은 환기하는 시스템이 잘 돼 있더라고요. 서귀포는 (여름철에는) 안이나 밖이나 모두 습한 상황이기에 공기 순환을 하더라도 역부족일 거예요. 설비적으로 접근을 해서, 관련 장치들을 집안에 해둘 필요성이 있어요.
- 풍토가 다르면 생활양식도 달라지죠. 제주도 역시 지역별로 다르죠. 초가 시절엔 지붕을 1년에 한 번 얹는 곳도 있었지만, 2년에 한 번 하는 지역도 있었어요. 풍토가 영향을 미쳐서죠.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성산포 지역의 초가집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의뢰받은 적이 있어요. 벽체를 남기고 지붕만 새로 덮으려는데, 벽체를 더 올려달라고 하더군요. 현대식 지붕을 얹으면서 벽체도 달라진 것이죠. 예전과 달라졌죠. 그만큼 기술로 극복을 했지요.
- 존경하는 건축가는 있으신가요?
르 코르뷔지에가 있었기에 필로티도 있고, 아파트도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코르뷔지에는 뭔가 파격적인 걸 건축계에 툭 던져 놓았죠. 굉장히 보수적인 시절, 그런 걸 만든다는 게 대단하게 보여요.
- 건축사는 어떤 직업이면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까.
선배 건축사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건축사는 남에게 행복을 주는 직종이라고 했어요. 의사나 변호사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클라이언트를 응대하지만, 우리는 집을 지으려는 행복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남에게 행복을 주는 직업이라는 점에 공감을 해요. 반면에 우리도 행복할까? 건축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입장이기에 굉장히 어려운 위치라고 봅니다. 그래서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중재를 잘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죠.
- 마지막 질문을 해볼게요. 집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어요. 물리적 형태의 집과 형태가 없는 것. 개인적으로는 형태가 없는 것에 끌려요. 밖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집에 오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뭔가 다 툴툴 털어내고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집이겠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하잖아요. 그때 집은 물리적인 집은 아니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곳, 되돌아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이죠. 건축사들은 그런 곳을 만들어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