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당 속은 훤헌디 이젠 망사리 채워도 물마중 해줄 사람 어서부난…”
지난 5월 25일. 이 날은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에서 해녀 은퇴식이 열린 날이었다. 귀덕2리 어촌계 주최,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날 은퇴식은 사상 최초로 열린 해녀 은퇴식이 됐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아이러니하게도 2016년 12월 제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7년이 거의 다 되도록 이런 행사를 마련하지 못했던 제주도민으로서는 부끄러운 일로 남게 됐다. 이에 <미디어제주>는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해녀 한 분, 한 분을 찾아 가족들과 해녀 후배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사연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아칙(아침)에 물질 나가는 사름들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져도 막 물질 나가구젠 해졈신게.”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오후, 지난 5월 은퇴식을 갖고 ‘마지막 물질’을 한 뒤로 테왁에서 손을 놓은 김유생 할머니(92)와 강두교 할머니(91)를 만났다. 은퇴 후 소회를 묻는 질문에 애써 바다를 바라보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돌리면서 꺼낸 김유생 할머니의 한 마디가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무려 70년이 훌쩍 넘는 물질 경력을 갖고 있는 김 할머니는 열다섯 살부터 물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바당에 물질허래 들어갈 땐 테왁도 어서난. 박 속 파내엉 구멍 막앙, 촛농으로 물 새지 못허게 허영 신서란 삶앙 망사리 만들엉 바당 들어가시녜.”
마흔 살에 남편과 사별한 뒤로 다섯 오누이를 혼자 키워냈다는 김 할머니. 할머니에게 귀덕2리 바당은 말 그대로 온전히 삶의 전부였다.
“난 물건 좋을 때 물질만 해도 바당 덕분에 아이들 키우멍 살아신디, 이젠 바당 일만 허영 살진 못헐거라.”
“바당 속에 들어가민 이제도 어느 구멍에 가믄 붉바리 싯고(있고) 어느 바당에 전복이 하영 이신지(많이 있는지) 눈에 훤헌디, 이젠 물건 허영 나와도 물마중해줄 사람도 없고 망사리 들지도 못허난 그만 허젠 햄주게.”
그나마 제주의 연안 바다는 10~20여 년 전과 달리 전복이며 소라, 성게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해녀들이 바당을 떠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더 이상 물질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수온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연안 어장이 황폐화되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바닷가 인근의 크고 작은 연못이 다 없어져 폭우 때마다 농약과 제초제 등으로 범벅이 된 흙탕물이 그대로 바다로 유입되는 것도 연안 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옆에 있던 귀덕2리 어촌계장 김성근씨도 “갯녹음 현상 등의 영향으로 해조류가 없기 때문에 해마다 종패를 뿌려도 전복이나 오분작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내년에도 5명이 은퇴를 신청해 놓고 있다고 한다. 5명이 은퇴하고 나면 귀덕2리 어촌계 소속 해녀는 27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해녀 숫자가 가장 많았던 1990년대 초 100명이 훌쩍 넘었던 데 비하면 그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아 인류무형문화유산 해녀는 말 그대로 박물관 속에 박제된 해녀의 모습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울한 얘기가 이어지다가도 필리핀에서 온 이주 여성이자 막내 해녀인 델리아(48) 얘기가 나오자 김 할머니 얼굴에 금방 다시 화색이 돈다. 물질도 잘하고 할머니들에게도 싹싹하게 군다면서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김 할머니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물질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시어멍도 물질해나신디, 물질 헐 땐 욕심 버려사 헌댄 고른 말 잘 들언게”라면서 후배 해녀들에게 시어머니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물질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강 할머니와 서로 망사리를 채워주면서 지내온 것도 시어머니 말씀대로 욕심을 비워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퇴식 당일에도 ‘마지막 물질’을 함께 했던 두 할머니.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바닷가를 나란히 손잡고 걷는 두 분의 모습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추석 명절의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