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19>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9월 도입 논란
현대 사회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제도 속에 작동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신분, 역할 등에 따른 각종 제도는 국가 플랜의 청사진 수립을 유연하게 이끌어 내며, 이는 국가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제도의 공정성이다. 제도 도입과 시행 등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공정성을 가져야만 비로소 효력이 배가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최근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정성을 토대로 제도의 순환을 이루는 부분이야말로 사회 각계분야의 건강함을 더해주는 촉매제다. 그러나 공정성이 어긋나면 모든 것은 공염불이 된다. 당연히 제도 시행의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로 인한 공정성의 실종은 사회 발전에도 크나큰 암덩어리다. 제도권 안에 묶인 이들이 공정성의 실종에 따른 강요로 피를 보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최근 스포츠계에서 큰 화두 중 하나인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도 신분에 따른 공정성의 실종이 자라나는 새싹들의 기본권 박탈로 이어질 여지가 다분하며, 교육 당국의 이중적인 잣대와 탁상행정이 새싹들의 꿈과 열정을 가로막고 있다는데 이의를 달기 어려운 이유다.
클럽형 시스템이 일찍이 뿌리를 내린 해외 선진국과 달리 엘리트 체육이 국가 스포츠의 근간인 대한민국의 발자취에 학생 선수들의 학업 이수 문제는 오랜 세월 관통해온 이슈 중 하나다. 그럴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일단, 신분의 기본권에 있다. 학생 선수들에게 2가지 기본권이 주어진다. 학생 신분의 ‘학습권’과 운동선수로서 ‘운동권’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학생 선수들의 우선 권리는 운동선수로서 운동권이다. 학생 신분이지만 학업 성취가 아닌, 운동선수로서 대회 출전에 따른 실적 장만이 취업과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운동권을 가지고 운동 기능을 뽐내야 되는 구조로 인해 학업 결손을 무릅쓰고 운동에 매진해야 시장 가치와 시장성을 평가받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청소년기를 거쳐 각자 영역을 토대로 전문화를 꾀하는 것처럼 학생 선수들의 운동권에서 대회 출전과 실적 장만의 상관관계가 운동권에 따른 전문화의 루트에서 핵심 기능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신분의 기본권이 학생 선수들에게 딜레마를 안긴다는 부분이다. 처음 운동에 입문하고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체육특기자 자격을 부여받고 상급 학교 진학을 도모하게 되지만, 신분은 엄연히 학생이다. 사실 학생 신분에서 학습권은 기본권 중 핵심이다. 각 카테고리 별로 교육 과정에서 학습권이 보장되고 이에 맞게 학생들의 학업 이수를 원활하게 도모해야 학습권이라는 학생 신분의 기본권이 안정적으로 발휘된다. 학생들마다 특성, 성향 등의 차이가 판이한 것을 고려하면 개개인의 적성과 특성 등을 토대로 기본권을 표출하는 것이 신분의 아이덴티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국가의 로망 중 로망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학생 선수들에게도 ‘지-덕-체’ 속에서 학업과 운동 병행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초-중-고-대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직업 선수로 성장할 확률은 단계를 거칠수록 현저하게 떨어진다. 심지어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교를 거치고 전문화로 접어드는 고교시절부터는 수치가 더 하락하며, 비율 또한 0.1% 미만에 불과하다. 이상과 현실의 높은 괴리감 속에 진로 선택의 폭이 일반 학생보다 현저하게 좁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특성은 학생 선수들의 향후 재사회화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학업 매뉴얼, 프로그램의 정비는 물론, 교육 당국에서 학생 선수들의 학업 이수에 대한 관리와 감독, 교육 등을 명확하게 해야 된다는 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학생 선수들의 학업 이수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일부 종목들의 학기 중 대회 폐지를 비롯, 각종 제도를 도입하며 학업과 운동의 원활한 병행을 도모하는 장치를 장만했다. 그럼에도 제도의 효력 발휘는커녕 악순환만 잔뜩 초래됐다. 아니 행정적으로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에 있어 일방통행식으로 두 가지 모토 쟁취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학업 성취와 이수 관련 매뉴얼을 비롯, 기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학업 이수가 오히려 몰입도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학생 선수들은 강의 도중 졸기 급급한 모습을 나타내며 육체, 정신적 피로도를 심화시킨다. 가뜩이나 OECD 국가 중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학생 선수들이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학업 이수를 이행하는 것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지역마다 학군과 교육열에서 판이한 차이를 보이는 와중에 각기다른 교육 커리큘럼, 제도적 모순점 등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학생 선수들에게 학업 이수가 두 가지 모토 쟁취를 통한 학교 생활이 아닌 노동에서 강제 노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방통행식 학업 이수 강요의 부메랑은 학생 선수들의 운동권에도 당연히 악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핵심은 휴식 부족이다. 학생 신분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에게 휴식은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밑천이다. 하물며 운동선수들은 휴식이 곧 최상의 경기력을 표출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런데 학생 선수들에게는 이러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학기 중 정규일과를 이수하고, 방과 후에 훈련을 진행하는 나머지 정작 운동선수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부족해지고 있다. 특정 시기에 대회와 리그가 집중되다 보니 휴식을 통한 일과 능률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공염불에 가깝다. 촘촘하게 짜인 대회와 리그 스케줄에 학업 이수 강요까지 겹치면서 학생 선수들의 혹사 논란은 매년 불거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엘리트 체육의 질적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학생 선수들이 처한 상황이나 현실, 동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제도적 못을 박은 교육 당국의 탁상행정이 빚어낸 촌극이다.
교육계에서 학생 선수들의 학업과 운동 병행 이수 정책을 요지부동으로 시행하고 있는 현실에 혼란의 연속은 여전하다. 일단, 제도적 장치의 효력이 전혀 없다. 대회 출전에 따른 출석인정 횟수 증가(초등학교 20일, 중학교 30일, 고등학교 50일), E스쿨(학생 선수들이 대회와 훈련으로 결손된 학업을 보충하고 추가 수업을 지원하기 위한 온라인 학습 시스템) 도입 등으로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계 비전은 현실과 완전히 역행한다. 운동선수의 꿈과 열정을 가지고 땀방울을 쏟아내는 학생 선수들이 학업과 운동 병행에 따른 육체, 정신적 피로도가 심화되는 와중에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E스쿨을 대리 수강하는 ‘블랙 코미디’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각급 연령별 대표에 차출되는 선수들의 경우 국제대회가 학사일정과 맞물리는 부분에 대한 안전장치를 쏙 빼놓은 부분도 학생 선수들과 팀 코칭스태프, 학부모 등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학생 선수들의 학업 이수와 관련된 제도 개선을 놓고 체육계와 교육계의 날 선 대립각은 현재 진행형에 가깝다.
학생 선수들의 학업 이수와 관련해 체육계와 교육계의 날 선 대립각이 계속 형성되고 있는 와중에 불 난 집에 기름을 쫙 부은 제도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다.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는 학교체육진흥법 개정으로 탄생했다. 지난 2021년 학교체육진흥법 제11조 ‘학교의 장은 학생 선수가 일정 수준의 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경기대회 출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개정된 위 제도는 학생 선수들이 운동에만 올인하는 것이 아닌 학업과 운동의 원활한 병행을 통한 진로 선택의 다변화를 위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2021년 개정된 이 제도는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9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새학기가 되는 지난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가 현장의 거센 반발로 6개월 미뤄졌지만, 이번 2학기부터는 최저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학생 선수들의 대회 출전 금지가 완전히 제도화된다. 겉만 보면 그럴듯하다. 모든 학생 선수들이 직업 선수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피라미드 구조를 뚫고 직업 선수로 도달하는 과정이 낙타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운동을 중도 하차 이후 진로 설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즐비한 사회 동향도 학생 선수들의 학력 이수에 대한 소리 데시벨을 높인다. 이는 학생 선수들의 향후 원활한 재사회화를 도모하려는 복안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저학력제의 알맹이를 벗어던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초등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개 과목 기준 전체 평균 성적 하위 50% 미만, 중학교는 하위 40% 미만, 고등학교는 국어, 영어, 사회 3개 교과 평균 하위 30% 미만이면 적용되는 부분은 모순이다. 무엇보다 고교 2학년 신분으로서 내년 수험생이 되는 선수들은 초비상이다. 대학 진학과 취업이라는 중대 기로에서 최저학력 미달로 인한 대회 출전 불가는 그야말로 사형 선고다. 각 종목별로 직업 선수의 부푼 야망을 안고 땀방울을 쏟아내는 이들이기에 대회 출전 불가에 따른 시장 가치 하락은 팀과 개인 모두에게 엄청난 출혈을 입힌다. 안 그래도 일반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상당한 일반계 고교에 속한 선수들의 경우 학생 선수들이 일반 학생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도모하기가 ‘맨 땅의 헤딩’ 수준이다. 또 하나는 고교 교육 커리큘럼의 차이다. 일반계 고교와 전문계 및 특성화 고교의 교육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학생 선수들의 학업 성취는 천차만별이다. 이로 인한 학생 내신 산출이나 성적 관리 등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학군 형성, 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판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동등한 최저학력 이수가 고교는 물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고스란히 부메랑을 던진다. 학생 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모두 놓치고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할 우려를 더 깊게 만든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교육 당국의 극심한 횡포와 압력으로 비칠만 하다. 자라나는 새싹들의 열정 분출을 가로막는 격이며, ‘지-덕-체’ 양성이 아닌 낙오자 양성이라는 거센 비난의 화살을 받기에 충분하다.
참 웃긴 부분이 하나 있다. 연예계에서 대표적인 이슈 중 하나가 바로 미성년자 연예인들의 학업 성취와 이수다. 미성년자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만 놓고 봐도 얼마나 학생 선수들과 차별을 두는지를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아이돌 지망생의 경우 아이돌 기획사의 하드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가요계 데뷔에 모든 노력을 총동원하며, 아역 배우를 비롯한 미성년자 배우들은 TV 출연을 위한 촬영을 밤새 몰두하면서 저마다 인지도 쌓기에 혈안이 된다. ‘미스터 트롯’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립한 가수 정동원(2007년생)은 활발한 가요계 활동을 토대로 입지를 단단하게 다져가고 있고, 정동원 이외 남-녀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아역 배우 등 모두 미성년자 신분에서 저마다 일념을 가지고 역량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최저학력 기준은 없다. 대부분 기획사들과 방송사에서 미성년자 연예인들의 학업 이수를 적극 권장한다고는 하지만, 방송 스케줄에 따른 불가피한 수업 결손이 최저학력 기준과는 전혀 무방하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학생 선수들이 얼마나 역차별을 당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전형 특기자 신분으로 대학 진학까지 모색하는 미성년자 연예인들과 학생 선수들이나 각자 꿈과 열정을 불태우는 공통분모는 확실하다. 그러나 예체능 분야 중에서 유독 체육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교육 당국의 이중성은 대한민국 스포츠와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라곤 되지 못한다. 모든 분야의 제도는 공정성을 기본으로 한다. 공정성을 가진 제도 안에서 신분, 역할 등에 맞는 형평성은 핵심 중 핵심이다. 당장 도입되는 학생선수 최저학력제가 그래서 제도적으로 시급히 개선돼야 할 필요성이 큰 이유이다. 필드가 터전인 학생 선수들의 꿈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줄 의무가 교육 당국에 있다. 만약 이 부분이 가미되지 못하면 잡음이 더 거세질 뿐만 아니라, 미래는 어둠으로 들어찰 일만 남았다. 제도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