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는 새로운 담론 만드는 장
“제주도민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제주비엔날레 운영 방법 논의도 필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섬, 제주도.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배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다. 배를 잘 짓고, 잘 운영한 이들이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은 제주사람들의 그런 점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건 섬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들은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다. 배를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높은 파도와 바람을 이기는 건 어렵다. 죽기도 하고, 부서진 배에 실려 바다 위를 떠돌기도 한다. 제주사람만 그랬을까? 아니다. 바다 위를 이동하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제주를 빠져나간 이들도 표류를 하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표류해서 제주 땅을 밟기도 했다.
표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표류 이면엔 놀라운 점이 있다. 바로 표류는 서로 다른 지역끼리의 이동을 불렀고, 문화교류를 강제한 도구였다. 제4회 제주비엔날레(2024년 11월 26일 ~ 2025년 2월 16일)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제주비엔날레는 ‘아파기 표류기’라는 주제를 담았고, 표류를 문화로서 이해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아파기는 역사서에 한차례 등장한다. <일본서기>에 탐라 왕자 아파기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는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다.
“탐라가 처음으로 왕자 아파기 등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耽羅始遣王子阿波伎等貢獻).”
- (일본서기 권 26 天豐財重日足姬天皇 齊明天皇 661년 5월 23일)
왜 아파기는 일본으로 가야 했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당나라로 갔던 일본 사신단이 돌아가던 길에 표류하게 되고, 탐라에 도착하면서 일은 일어난다. 일본 사신단 일행은 8박 9일을 해상에서 떠돌다가 탐라에 안착하고, 아파기 일행을 만난다. 아파기는 일본 사신단을 따라서 일본으로 향했다. 표류가 문화교류였음을 역사가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주비엔날레가 ‘표류’를 키워드로 제시한 점은 신선하다. 그러나 제주비엔날레가 가야할 길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다른 비엔날레처럼 영속적으로 진행하려면 별도 기구가 필요할 텐데, 지금은 그런 구조가 되지 못한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을 만났다.
- 종전 제주비엔날레는 관장님 총감독을 맡으시지 않고 외부에서 맡곤 했는데, 관장님이 총감독 임무까지 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을까 궁금한데요.|
제가 총감독을 한 이유는 있습니다. 일단 제가 부임한 시기는 작년 겨울이었고, 곧바로 비엔날레를 시작해야 했어요. 준비기간이 짧았죠. 또한 제주비엔날레 운영과 관련된 내용인데,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을 공개모집 해야 한다는 감사 지적을 받았어요. 자문위원회 구성을 하고 예술감독 선임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데, 시간 문제가 뒤따른 겁니다.
제가 기획자 출신이면서 예술감독을 할 수 있는 경험도 있어요.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진행해야 하는데 여러 정황이 예술감독을 외부에서 뽑는 것보다 내부에서 하게 되었죠.
- 아파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데, 어떻게 제주비엔날레 주제를 ‘아파기 표류기’라고 정하게 됐나요.
아시다시피 제주 비엔날레는 후발 주자입니다. 차별성 혹은 정체성에 관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다른 비엔날레와) 차별성을 두고 어떤 장치를 마련하려 했어요. ‘아파기 표류기’는 아파기보다는 표류가 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제주가 중심이 되어 문명사를 살펴보는 장치이죠. 지역의 특수성으로 표류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살펴보는 기획입니다.
표류를 통해 문화사와 문명, 이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특히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서 올라오는 지역의 작가들을 우선 선정했고, 그 안에서 문명끼리 교차하고 공통된 부분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기획입니다. 결국 제주가 갖고 있는 차별성과 정체성에 기반한 주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제주도 사람들은 섬 안에서만 살 수 없었죠. 섬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고, 표류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류는 뒤집어보면 개척의 역사일 수도 있겠어요. 그같은 표류를 이번 비엔날레에 어떤 식으로 녹여낼 건가요. 아울러 제주 작가는 어떻게 참여하나요.
말씀처럼 섬밖으로 나가는 능동적 행위도 있고, 제주에 우연히 흘러온 표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명사 안에서 융합하고 소통하는데, 그런 상호 작용을 이번 비엔날레에서 예술적 관점으로 풀어낼 계획입니다.
작가들은 14개 나라에서 39개 팀이 참석합니다. 국내 작가는 17명이고, 이 가운데 9명이 제주 작가입니다. 최근 5년간 제주에서 열린 국제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작가이면서, 대부분 표류와 관련된 작가를 선정했어요.
표류 관련을 예로 들면 철새가 있겠죠. 철새를 바라보는 풍경도 있고, 철새와 관련되어 환경 영향을 다루는 작가도 있을 테고, 리서치에 기반한 작가도 있습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문명사를 들여다보는 작가도 참여시키고 있어요.
- 우선은 제주도민들이 관심 깊게 봐야할 텐데, 어떤 식으로 제주비엔날레를 알릴 계획인가요.
8월 중순에 사전 워크숍을 한차례 진행했습니다. 또한 학술컨퍼런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할 컨퍼런스인데, 표류 관련 전문가들과 국제 큐레이터, 작가들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도민들이 참석해서 표류에 관련된 내용들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교류의 스펙트럼을 알 수 있을 겁니다.
- 표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제주 출신 장한철을 뺄 수 없겠죠. 장한철 <표해록>은 문학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이런 재미있는 요소도 담는다면 좋을 듯한데요.
이번에 표류를 주제로 정하면서 다양한 리서치를 했습니다. 장한철도 있고, 최부도 있고, 박연과 하멜도 표류했던 이들입니다. 리서치에 대한 결과물을 아카이브해서 제주비엔날레 본 전시에 결과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 제주비엔날레는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죠. 이젠 4회째를 맞게 되니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지속 가능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중요하면서도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비엔날레는 어떤 결과물을 전시하는 겁니다. 전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제주비엔날레가 4회를 맞게 되는데, 다른 곳은 별도의 조직을 두고 운영됩니다. 행정에서 가능한지를 미술계와 행정 등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 드네요.
특히 제주도는 관광이라는 게 있죠. 관광과 더불어 비엔날레가 좋은 시너지를 만들 수 있어요. 제주도는 비엔날레 후발 주자로서 운영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할 때라고 봐요.
- 방금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관광이 달라지고 있어요. 예전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찾지 않았으나, 이젠 달라요. 문화를 즐기는 시대가 왔음을 느껴요. 제주비엔날레가 잘 된다면 관광적 요소도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첨병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아요. 설문조사를 해보니 도민 참여율이 낮았어요. 홍보문제도 있을 테지만, 현대미술이 난해한 측면도 있습니다. 광주비엔날레도 초기에 그랬어요. 그러다 광주비엔날레를 보고 자란 ‘광주비엔날레 키즈’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고 있어요. 아울러 세계를 빛내고 있고요. 제주도가 문화예술의 섬으로 거듭나려면 현대미술의 첨병인 전시를 많이 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희들이 노력을 많이 해야죠. 홍보도 하고 유인책도 마련하고, 도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주도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표류와 연관돼 있습니다. (제주인들은) 표류인들의 후손인 만큼 도민들께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