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9-19 17:23 (목)
“건축사는 일반인 언어를 도면으로 치환해주는 사람”
“건축사는 일반인 언어를 도면으로 치환해주는 사람”
  • 김형훈
  • 승인 2024.07.18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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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은 좋다. 채울 게 많기 때문이다. <도덕경>을 잠깐 빌려보자. “도는 텅 빈 그릇이다(道沖)”고 했다. 이유는 끊임없이 채울 수 있어서다. 젊음도 그렇다. 젊음은 나이듦과는 상대적 단어인데, 우리는 그 단어를 통해 긴장과 기대와 발랄함과 도전을 상기시킨다. 또 있다. 열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기개가 젊음에 있다. 젊음을 꺼낸 이유는 제주에서 활약하는 젊은 건축사들을 만나, 그들의 입으로 건축을 말하고 싶어서다.

젊음은 어디까지일까? 이 코너에서 소개할 건축사들은 스물한 명으로 정했다. 기준을 두기는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젊음을 지닌 이들이 있을 테지만, 모든 이들을 소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은 신진건축사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국내외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만 45세 이하 건축가로 제한을 두고 있다. <미디어제주>도 그 기준에 따라 만 45세 이하인 제주 도내 건축사들을 만난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올해부터 신진건축사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다섯 번째 만남은 도시제주의 고동연 소장이다. [편집자 주]

 

 

[제주 신진건축사들이 말하다] <5>
고동연 도시제주 소장

고동연 소장이 말하는 건축 : 알뜨르

비행장이 있었다는 그곳. 평온하기만 하다. 그런데 왜 비행장이 있었을까. 비행장은 사람과 물류를 이동시키는 플랫폼이지만, 군사적 목적일 경우엔 군인과 전쟁물자를 이동시키는, 죽음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바로 알뜨르다.

알뜨르는 제주어다. ‘뜨르’에서 보듯, 넓디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임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알뜨르는 대정읍의 바닷가 마을인 모슬포에 자리하고 있다. 모슬포는 일본인 구로이타가 쓴 <미개의 보고, 제주도>라는 책에도 나와 있는데, 일본인 최초의 이주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제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라니, 일본인 입장에서 모슬포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모슬포는 일본인들의 신흥중심지임은 분명한데,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모슬포는 전쟁을 준비하는 장소였다.

너른 들판에 낮은 둔덕이 보인다. 대부분은 잔디로 덮였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둔덕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이 뚫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비행기를 넣어둔 격납고다. 실제 격납고 용도로 쓰였을지는 의문이다. 일본에도 똑같은 구조물이 남아 있는데,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 용도가 아닌, 비행기를 숨겨두는 ‘엄폐호’로 부른다.

모슬포 알뜨르에 있는 비행기 격납고. 미디어제주
모슬포 알뜨르에 있는 비행기 격납고. ⓒ미디어제주
 

격납고는 20기 가까이 남아 있다. 격납고는 스스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말하고 있다. 격납고 내부는 송판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송판을 깔고 콘크리트로 마감했음을 보여준다. 세월이 지나니 철근도 삐져나와 있다. 눈에 드러나는 철근은 단순하게 콘크리트만 부어서 만든 구조물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송판으로 틀을 짠 뒤에 철근을 넣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었다고 격납고는 말하고 있다.

격납고에 숨어든 비행기는 일명 ‘아카돔보’로 불리던 제로센이다. 제로센은 우리가 잘 아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비행기다. 될 수 있으면 가볍게 만든 비행기로, 무게는 1.6톤에 불과했다. 격납고는 이렇듯 죽음을 말한다.

일제가 패망했으면, 알뜨르는 다시 제주사람들의 품에 안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모슬포 일대는 거대한 장병들의 도시로 바뀐다. 제1훈련소가 여기에 들어섰고, 지금도 여기엔 군사 냄새가 폴폴 난다. 훈련소 정문, 강병대교회 등 군사 냄새는 모슬포를 아우르고 있다.

70년 전의 젊은이들. 모슬포에 몰려든 젊은이들의 눈앞에는 삶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를 떠나, 어느 전장에 배치될지 모르지만, 살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이들을 달래주는 군예대(연예병사 조직)도 한국전쟁 기간 모슬포에 머물렀다. “삼다도라 제주에는~”으로 시작하는 ‘삼다도소식’도 이때 만들어지는데, 군예대 대장이던 박시춘이 발표했다. 박시춘은 낭만적 작곡가로 생각들지만 그렇지도 않다. 일제강점기 때 그에게서 죽음의 향기가 풍겼다. 그는 ‘황국신민’ 조선인들이 전쟁터로 가야 한다는 내용의 ‘아들의 혈서’를 작곡해서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았던 인물이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날까? 다시라는 말은 말자. 그런 말은 쓰지 말자. 알뜨르는 그런 말을 떠올리지 말라고 말한다. 죽음의 흔적을 통해 평화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평화가 깃든 알뜨르가 되길 알뜨르는 바란다.

 

고동연 소장과의 이런저런 말 (대담 진행 : 김형훈)

- 알뜨르엔 군사유적이 많습니다. 격납고를 비롯해 여러 유적이 남아 있는데, 제주에서 소개하고 싶은 장소로 꼽으셨어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알뜨르의 뜻을 살펴보면 아래란 의미의 ‘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뜨르’를 합쳐서 부릅니다. 여기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비행장과 전투기 격납고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인 곳이죠. 사람들이 처음 이곳을 방문하면 넓은 들판에서 농사짓는 풍경, 멀리 보이는 산방산, 한라산 남쪽의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곳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아름다움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되죠. 그런 점에서 제주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아픔이 공존하는 그런 장소이죠. 한번쯤은 방문해 볼 필요가 있기에 소개해봤습니다.

- 가끔 오시나요? 여기 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요.
답답할 때, 아니면 누군가에게 제주의 이야기를 할 때, 제주도는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인 부분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을 때 오죠. 친구나 지인에게도 추천하기도 하고요.

이 일대는 제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동알오름 일대에 말을 풀어놓기도 하는데, 동알오름 밑에서 보면 산방산부터 한라산, 서귀포월드컵경기장까지 전체가 다 보입니다. 서귀포시 중문 출신인데, 이쪽에서 중문도 보여요. 우리가 항상 보는 관점은 육지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여기는 거꾸로 바다 쪽에서 제주도를 볼 수 있죠. 한라산의 모습은 물론 여러 풍경이 중첩되는데, 그래서 좋아요.

-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이죠. 너른 들판만 있기에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는 기존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모습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일대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특별한 공간이 되겠죠.

비행기 격납고를 마주한 고동연 소장. 미디어제주
비행기 격납고를 마주한 고동연 소장. ⓒ미디어제주

- 비행기 격납고를 건축적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역사적인 걸 떼어내고 그냥 건축으로 봤을 때는 넓은 벌판에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겨난 것이잖아요. 하지만 벌써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결국엔 이것도 하나의 풍경으로서 들판과 일체감이 된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어요.

- 제주도는 서로 다른 모습이 있는데, 바다와 오름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긴 하네요.
자연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적인 부분도 중요합니다. 제주도가 지속가능한 관광을 하려면 시간이 축적된 문화와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건 물론 건축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 스스로에게 영향을 많이 준 건축 관련 책자가 있나요?
정기용 선생의 <사람 건축 도시>라는 책이 있어요. 책도 그렇지만 사실은 정기용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죠. 건축을 예술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용자나 도시의 관점으로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강연이 인상에 남았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읽게 되었죠.

- 정기용 선생님은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셨는데, 그러다 보니까 기억의 축적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셨죠.
정기용 선생님의 프로젝트가 있는 전북 무주 답사도 갔다왔어요. 디자인만 봤을 때는 별거 아니라고 볼 수 있겠으나, 별거 아닌 것을 끄집어낸다는 점이 대단해요.

- 그런 분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건축계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이제는 파편화가 되는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각자 개성이 뚜렷해진 것이고, 다르게 보면 중심이 없는 거죠.

- 건축주 요구를 잘 수용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제시해서 의견을 만들어내는 편인가요.
건축주 요구를 잘 수용한다고 생각하는데, 건축주분들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는데, 건축주의 요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제 주장을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 건축주가 시공자 얘기를 듣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경우도 있죠. 시공사에서 돈이 많이 든다면서 건축주에게 얘기를 하면, 제가 거절해 버리고, 건축주가 결국은 저를 피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용할 건 수용하면서 조율을 해갑니다.

- 설계할 때 몸의 어느 부분이 반응을 하나요.
현장을 갔을 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촉감은 아니고 몸에서 느끼는 감각같은 건데, 이미지로 형상화되진 않고요. 설계할 때는 우선 땅을 중요시 여깁니다. 땅을 얼마나 만져서 조직화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땅의 레벌은 어떤지를 우선 이해하려 합니다.

- 제주도는 북쪽과 남쪽이 다릅니다. 제주시에 해당하는 북쪽은 바다를 바라보고 남쪽은 북쪽과는 정반대인데, 어느 쪽이 설계하기가 재미있나요.
(제주시에 설계를 한다고 해서) 바다에 관점을 주지는 않습니다. 바다 뷰만 얘기하고, 건물을 높이기만 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집이 편안하게 앉히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편안한 집이 되는 게 중요하죠. 보여지는 건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감귤밭이 있으면 감귤밭이 풍경이 되고, 바다가 있으면 바다가 풍경이죠. 바다나 한라산의 풍경을 보려고 건물을 높게 짓거나 높게 올리면 결국에는 경관의 사유화가 되고, 주변 풍경을 해치게 됩니다.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변 풍경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 행위이지만, 최대한 경관에 녹아들게 해야죠.

- 땅을 잘 분석해야겠더군요. 어떤 주택은 2층을 멋지게 지었는데, 나중에 주변이 전부 2층으로 들어서면서 결국엔 눈에 띄지 않는 건축물이 되기도 해요.
그걸 예측하기는 쉽지 않죠. 처음 의도와 달리 주변 환경이 달라지면 설계한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죠. 결국은 경관이든 풍경이든 점유를 하게 되면, 다른 누군가도 그걸 점유하기 위해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혹시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을 존경하시나요?
정기용 선생님과 조성룡 선생님을 존경하는데, 예전 대학원 때 가르침을 받았어요. 정기용 선생님은 책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실천적 건축가이고 사회적 건축가인 것 같아요. 다들 공공건축을 이야기하지만 정기용 선생님은 그런 걸 실천한다고 느꼈습니다. 건축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 앞서 얘기했듯이 화려한 건축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를 고려한 건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조성룡 선생님은 실제 건축을 할 때 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주변 도시와의 관계, 건물과의 관계를 많이 해석하고, 어떻게 디자인 하는 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 만일 협업을 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건축가는 아니지만 예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분이 있습니다. 공간 디자이너 임태희 소장인데, 그분이랑 스테이 설계를 하다가 진행은 되지 않았어요. 협업을 한다면 임태희 소장이랑 다시 하고 싶군요. 건축가가 아니어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을 느꼈어요. 임태희 소장은 공간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소품도 디자인을 합니다. 아무래도 공간을 채우는 시각이 달랐어요.

신진건축사 고동연 소장. 미디어제주
신진건축사 고동연 소장. ⓒ미디어제주

- 신진 건축사를 만나는 기획을 하고 있는데, 건축사는 어떤 사람이라고 보시나요.
어떤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조율해 주는 사람이겠죠. 건축주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사항을 구체화시키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정기용 선생님은 ‘번역가’라는 말씀도 쓰셨는데, 우리들은 일반인들의 언어를 도면이라는 언어로 치환해주는 직업이라고 봅니다. 또한 공공 측면에서 얘기한다면,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직업이죠. 어떤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고민하는 직업입니다.

- 그렇지만 공공을 해치기도 하지 않습니까?
태생적으로 기존에 있는 풍경을 해칠 수밖에는 없죠. 풍경 얘기를 하자면, 주변에 얼마만큼 녹아들게 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봅니다.

- 조선시대 정자 건축처럼 자연 그대로 할 순 없겠으나, 건축주가 땅을 깎아서 지어달라고 했을 때는 설득도 필요하겠죠.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그렇습니다. 길보다 낮아요. 건축주가 처음엔 올려달라고 했는데, 조금만 올려서 진행하고 있어요. 약간은 묻혀 있고, 따뜻하죠. 햇빛과 바람뿐만 아니라 공간의 아늑함이 있습니다. 건축적으로 말한다면 ‘위요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결국은 기존의 풍경과 제주의 모습을 얼마만큼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걸 얼마나 고려하면서 건축을 하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죠.

- 현재 건축환경이 무척 어렵죠.
소멸에 따른 대책이 있어야겠어요. 서울은 투자 가치를 봤을 때 재생산이 가능하지만, 제주도인 경우 원도심에서 도시재생을 하는 비용보다는 자연녹지 등의 새로운 땅에 집을 짓는 게 훨씬 빠르고 비용 측면에서도 쌉니다. 원도심을 비롯해서 원도심과 이웃한 지역은 차츰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젊은이들은 들어오지 않는데,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서 정책을 해야할 시점입니다. 건축 부분의 특례를 고심해봐야 하고요. 구옥이나 돌집을 활용하고 싶어도 제도적인 부분 때문에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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