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우리나라 축구는 달라졌다. 지금은 유럽을 주름잡는 대형 스타도 많다. 모두 21세기 들어와서 일어난 일이니,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러나 역사는 최근의 이야기만 담거나 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서 근원을 추적하는 게 역사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축구 시작은? 제주의 축구 시작은 언제일까.
축구를 이야기할 때 <삼국사기>를 빼놓지 않는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을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축국’은 공을 이용한 놀이는 맞으나 현대 의미의 축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대축구의 탄생은 1863년 10월 26이라고 흔히 말한다. 잉글랜드에서 축구협회가 탄생한 날이다. 우리나라엔 조선 말 개항과 함께 근대적 의미의 축구가 도입됐다. 제주도는 언제일까?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으나 1910년대로 잡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근대적 형태의 축구가 제주에 들어온 지 100년이 넘은 셈이다.
제주도특별자치도축구협회가 제주의 축구 이야기를 담은 <제주축구 100년사>를 최근 펴냈다. <제주축구 100년사>는 축구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축구 100년사>를 들여다보면 제주축구의 시작점에 ‘용진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진회는 1912년 제주 성내 산지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족된 청년 모임이다. 용진회의 체육부에서 주관하는 축구 경기는 유명했다고 전한다. 용진회 주최 축구대회는 유학생들이 귀향하는 8월에 자주 열려 일제치하에 억눌렸던 감정을 터뜨리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 출신 유학생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1921년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배재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 축구대회에 제주 유학생 김대봉·좌달육 선수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화북 축구는 유명했다. 1922년 4월에 육지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최남식이 화북보통학교 교사로 부임, 축구 기술을 보급하면서 화북이 축구 고장으로 우뚝 서게 됐다고 <제주축구 100년사>는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울분을 터뜨리는 매개체였던 축구는 해방 이후 더욱 활발하게 기세를 올린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각 시도의 명예를 걸고 선수들이 출전했다. 1946년 11월 창설된 전도학생축구대회는 당시 도민들의 유일한 볼거리로 인기를 모았다.
그 가운데 오현고는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원정에 나서며 관심의 대상이 됐다. 오현고는 1962년 9월 우리나라 단일 고교팀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으로 출발, 5전 4승 1패의 전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제주 축구에서 뺄 수 없는 부별 경기는 고등부다. 1980년대에 들면서 고등부 팀이 잇달아 창단한다. 1990년대는 전국을 무대로 도전하는 시기이다. 1993년 제주에서 상설 개최되는 제1호 전국대회인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가 시작을 알렸고, 1995년 제76회 전국체전에서 고등부 축구 제주선발이 처음으로 우승, 금메달을 제주도선수단에 안겼다.
<제주축구 100년사>는 시대별로 화보를 담아서 한눈에 제주 축구 역사를 들여다보게 구성됐다. 1장은 제주 축구 발달사, 2장 제주의 축구인, 3장 제주도내 대회 경기사, 4장 전국체육대회 및 전국소년체육대회 참가, 5장 제주 축구 100년 실록, 6장 FIFA 국제대회 개최, 7장 제주특별자치도축구협회 가맹경기단체, 8장 제주의 프로축구, 9장 제주의 생활체육 축구 및 장애인 축구, 10장 제주의 축구 경기장, 11장 제주 축구의 현황 등을 담았다.
한편 <제주축구 100년사>는 고영진씨가 대표 집필했다. 고씨는 현장에서 발로 뛰던 기자 출신으로, 현재 제주도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