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13>
유로 2024, 강팀들 조별리그 수난
예측불허 스토리 만들며 관심고조
모든 사물의 화려한 구색은 많은 이들에 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디자인과 인테리어의 콜라보레이션이 시너지 효과를 연출하면서 구색을 맞추는 조각이 하나하나 채워진다. 디자인과 인테리어의 설계를 거쳐 이뤄진 구색은 빛깔을 더하면서 화려함의 색채를 입는다. 그러나 화려함이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아무리 구색이 화려해도 정작 알맹이가 형성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가깝다. 이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해당한다. 개인과 집단의 화려한 커리어가 상호 시너지를 연출하지 못했을 때 ‘모래알’, ‘콩가루’의 오명이 절로 붙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구색의 화려함에 대한 의존도가 짙어지는 악순환은 성과와 비전 실현, 개개인의 역량 함양 등에 있어서도 큰 마이너스다. 화려함에 젖어있는 나머지 정작 실속을 채우지 못하고 후폭풍을 얻어맞는 현상은 현대 사회의 분야를 막론하고 내재되어 있는 주요 현상이다. 스포츠는 이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분야다. 올스타급 라인업으로 구색의 화려함을 맞춰도 구성원 간 시너지가 연출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연스럽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기대치가 무색하게 낭떠러지로 하락하곤 한다. 최근 지구촌을 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유로 2024(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강팀들의 부진은 화려함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 축구 시장의 최고봉인 대륙은 유럽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라는 종목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하면 잔소리에 가깝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다름 아닌 유럽 시장의 특성에 있다. 유럽 5대 빅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스타플레이어 비율이 유럽 출신 선수들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부분에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매머드급 투자를 기반으로 유스 시스템부터 기초 뿌리를 튼튼하게 세우면서 골격의 단단함을 입혔고, 유스에서 성인 무대로 올려놓는 ‘팜’을 적극 활용하는 특성도 각 빅리그와 국가에 크나큰 자산이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쏟아붓는 EPL(프리미어리그)을 비롯, 각 빅리그 중계권이 각국에 수출되면서 국가와 리그 자생력을 드높이고 있고, 철저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의 이적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부분 또한 시장성 강화를 촉진하면서 전체 시장 ‘파이’를 거대하게 만든다. 이러한 유럽 시장의 남다른 스케일은 킬리안 음바페(프랑스·레알 마드리드), 케빈 더 브라위너(벨기에·맨체스터 시티)를 비롯, 각 빅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을 양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줄인 말)’에 가까운 유럽 축구의 시장성에 지구촌 축구팬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무대가 있다. 다름 아닌 유럽축구연맹(UEFA) 주최, 주관으로 4년에 한 번 펼쳐지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다.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이 되면 각 국가의 국민과 축구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정된다. 열기도 뜨겁다 못해 불타오른다.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된 유럽 모든 국가들이 전쟁같은 지역 예선을 뚫고 본선 24장의 초대장을 확보하기까지 여정이 말 그대로 지뢰밭이다. 홈앤드어웨이 방식의 지역 예선을 거쳐 각 조 1~2위 팀에 본선 직행 초대장이 부여되는데 추춘제로 각 리그가 펼쳐지는 유럽의 특성에 A매치 기간 진행되는 지역 예선 자체가 굉장히 타이트하다. 공은 둥글다는 속설과 함께 약자가 강자의 꼬리를 무는 일이 지역 예선에서 심심찮게 발생되며,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출전 자체가 국가에 큰 자존심과도 같은 터라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의 신경이 늘 곤두선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피로도부터 선수들의 컨디션, 상대 패턴에 대한 인지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울러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향후 월드컵 무대에서 성과 쟁취의 기착지로 삼고 시스템의 연속성을 꾀하려는 각 국가들의 플랜 또한 뚜렷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국가 대부분이 FIFA랭킹에서 높은 순위를 자랑한다. 현재 FIFA랭킹 탑10 중 유럽 국가만 무려 8개가 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매월 시시각각 바뀌는 FIFA랭킹에 A매치마다 연신 좋은 결과물로 랭킹 포인트를 쌓아올리고 있고, 국가별로 가꿔놓은 시스템과 방향성의 표출도 유럽의 FIFA랭킹 탑10 독식을 부채질한다. 그러면서 베테랑과 젊은 피들을 고루 섞으면서 세대교체의 순환을 이루려는 플랜의 수확물도 나름 짭짤하다. 이는 국가 네이밍과 이미지 형성에 큰 디딤돌이 되고 있다. A대표팀 자체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화려한 커리어로 무장된 선수들이 한 팀으로 뭉쳐지기에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다. 소속팀과 달리 합을 이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각 리그에서 왕성하게 활약하는 선수들을 한 팀에서 본다는 자체가 자국 국민들과 팬들에게 큰 설렘을 가져다준다.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안다고 했다. 지난 14일(한국시간)부터 독일에서 막을 올린 유로 2024의 동향은 강팀들에 수난 무대가 되는 모양새다. 6개조로 나눠 각 조 1, 2위 팀과 3위 상위 4개팀에게 16강 초대장이 부여되는 무대에 조별리그부터 강자의 꼬리를 덥석 물어버리는 소위 ‘언더독’의 투혼에 강팀들이 쩔쩔맨다. 이런 광경은 스포츠의 묘미이기도 하다. 시작은 벨기에(FIFA랭킹 3위)와 슬로바키아의 조별리그 E조 첫 경기였다. 벨기에는 0-1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다. 벨기에는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를 딛고, 2010년대 케빈 더 브라위너를 축으로 ‘황금세대’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벨기에의 패배는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제아무리 화려한 라인업에도 상대의 철저한 준비와 파이팅, 투지 등에 대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면 결과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일깨운 경기였다.
벨기에의 첫 경기 패배에 이어, FIFA랭킹 2위 D조 프랑스, FIFA랭킹 5위 C조 잉글랜드가 챔피언 0순위 후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조별리그 내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다. D조 네덜란드(FIFA랭킹 7위)와 F조 포르투갈(FIFA랭킹 6위)도 조별리그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오스트리아에 2-3 패배(네덜란드), 조지아에 0-2 패배(포르투갈)를 각각 맛보면서 강팀의 체면을 구겼다. 뿐만 아니라 ‘디펜딩 챔피언’인 FIFA랭킹 B조 이탈리아(FIFA랭킹 10위)는 조별리그 탈락 직전에 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뒤지다가 버저비터 무승부로 살아났다.
유로 2024에서 강팀들의 조별리그 수난은 화려함에 젖어 극심한 매너리즘을 야기하는 현대 사회와도 맞닿아있다. 현대 사회의 병적인 화려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화려함의 손길이 안 뻗치는 곳이 없다. 화려하고 비싼 외제차부터 고급 의류, 고층 아파트 등 화려함 추구의 범주가 굉장히 광범위해졌다. 너 나할 것 없이 화려하고 좋은 것만을 고집하는 그릇된 욕심이 어느 순간 개인과 집단의 부와 명예를 쟁취하는 핵심 수단으로 변질됐고, 심리적인 조급증과 강박관념이 더해지면서 의식 또한 굉장히 기형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화려함 추구는 실속의 채워짐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물품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도 잘 갖춰진 성능과 품질을 등에 업고 디자인과 인테리어 등의 다양성을 다채롭게 추구하면 실속의 알맹이를 착실하게 채워갈 수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가꿔가다 보면 추후 더 좋은 상품으로 거듭나면서 물품의 상품 가치를 더 끌어올린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의 성과와 커리어에 너무 심취된 나머지 발전적인 방향을 구현하는데 있어 기본 알맹이를 채우지 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다. 대부분 집단들이 해당 분야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물론, 주변 구성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되는 이유다. 구성원들의 노력과 집단 비전을 위한 공유 등이 어우러져야 더 진일보된 모습이 가능하다. 이러한 부분들이 지난날의 성과와 커리어와 맞물려 미래의 화려함이 된다. 스포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아무리 화려한 라인업 구성과 커리어로 무장됐다고 해도 팀워크와 투지, 파이팅 등 기본 요소들이 결합되지 못하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팀 전력이나 선수 개개인의 탈랜트는 부족해도 투지와 파이팅을 기반으로 하나로 뭉쳤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내면서 강자의 꼬리 내리게 만든다. 화려함만으로는 절대 성과를 이룰 수 없다. 그게 스포츠의 묘미이며,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어느덧 조별리그를 지나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유로 2024는 오는 30일(한국시간)부터 본격적인 서바이벌 경쟁에 돌입한다. 토너먼트라는 녹다운의 특성상 에러 최소화, 기본 특색 구현 여부 등이 생존과 직결된다. 매 경기가 그야말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다. 조별리그 내내 체면을 단단히 구긴 챔피언 후보군들에게도 토너먼트는 진짜 시험무대다. 화려한 구색과 함께 선수 개개인이 한 팀으로 어우러지면서 기본 특색을 구현하면 얼마든지 치고 오르게 된다. 저마다 챔피언 타이틀을 쟁취하려는 일념 또한 뚜렷하기에 서바이벌 경쟁에서 생명줄 연장 여부에 시선이 절로 집중된다. 지구촌 많은 축구팬들이 밤잠을 설쳐가면서 서바이벌 경쟁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개인과 집단도 마찬가지다. 병적인 화려함이 아닌 기본 내실을 잘 가꿔가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단단함을 입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사물과 업적에 있어 화려함이 더 빛을 낼 수 있다. 화려함의 완성은 내실에 있다. 이는 한 개인이든, 집단이든 막론하고 모두 해당된다. 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이 속설은 굳건하다. 기본 내실을 잘 채워가면서 개인과 집단 모두 발전을 도모한다면 그보다 좋은 화려함이 없다. 병적인 화려함에 지나치게 옭아매어 있고, 거기에 젖어있는 개인과 집단,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과 집단들은 이를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