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16 17:45 (화)
제주어에 발효된 서정과 서사성 (2)
제주어에 발효된 서정과 서사성 (2)
  • 송미아
  • 승인 2024.06.20 13:1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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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칼럼] <22>
김정숙 시조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에 있다』 
② 자연의 결, 제주어의 결

차례

1. 반복과 압축의 시적환기와 음악성

2. 자연의 결, 제주어의 결
 1) 우주 속의 제주
 2) 창조 신화에 투영된 ‘여성의 힘'
 3) 제주인의 마음 고향 신당神堂
 4) 돌과 바람 그리고 삶

3. 제주어 시조의 시대 의식

2. 자연의 결, 제주어의 결

자연의 결과 제주어의 결은 맞닿아 있다. 제주의 자연은 영겁의 시간을 돌아 짙푸른 서정의 옷을 입었다. 섬과 제주인의 운명은 바람을 타고 혼류하여 독특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북받쳐 오르는 삶의 순간과 포효하는 파도의 야성은 일상을 넘어선 정신세계를 이루고 제주만의 결을 창조했다. 

돌과 바람의 섬. 제주인의 터전이었던 빌레밭과 바닷바람에 실려든 독특한 언어는 제주인의 뱃속에서 본능이 되었다. 그러나 제주어는 서서히 이별을 예고하는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고 상용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제주의 정체성이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래서일까. 시조로, 노래로, 시로 발효되어 표현되는 서정적 문학 장르를 만날 때면 ‘제주어’를 더 깊이 헤아리게 된다. 

마침, 봄의 행간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다가온 김정숙의 제주어 시조집. 시인의 시조들은 수면 아래 잠겨있던 제주의 이모저모를 색다른 어감으로 표출한다. 시인만의 간접 문답법을 활용한 수법, 초록동색草綠同色으로 배열한 사설시조의 시적 환기, 수미상관 구조, 동음이의어를 통한 강조 등 다양한 작법과 내용 면에서도 풍부한 문학적 영감을 투영한다. 이번 독서평론의 핵심은 잊혀져가는 제주어를 발효시킨 시조 작품을 통해 제주정체성의 진실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1) 우주 속의 제주

시조는 운율과 이미지의 결합으로 독자들 곁에 스며드는 문학이다. 김 시인은 한발 더 나아가 관념적 음성을 대입하여 우주 속의 나, 그리고 제주의 정체성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시도했다. 작품 「오」, 여기서 우주의 첫 씨앗이 터트린 관념어 “오”를 시적 소재로 활용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리처즈(L.A.Richards, 1893-1979)는 시적 관념어란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요. 그리고 일반적이며 특수한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효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결합하여 하나의 조리 있는 전체로서의 느낌과 태도를 형성하며 특이한 의지의 해방을 가져온다”고 정의했다. 생활언어인 ‘오’가 사랑의 언어로서 전수되고 자연의 소리가 인간에게 체화되어 영원성을 띠는 것은 시적 관념어의 효과와 어울림에 절묘히 부합한다.                                                

- 「오」전문
- 「오」전문

관념어 “오”는 김정숙 시인이 시적 영감을 형상화한 감각언어이다. 여기에 인간의 음성 “오”를 대입하며, 이로 인한 반응이나 해석에 대한 궁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속에 融合융합된 하나의 덩어리 자체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주가 우주 밖으로 쏘아 올린 씨 한 톨이”의 시구에서 불현듯 어느 영상이 떠 오른다. 민들레 씨앗이 우주 어디론가 흩날리다가 한반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 한 톨의 씨앗이 제주섬 모퉁이에 점 하나를 찍는다. 백일쯤 지났을까. 어느 날 “오오오” 하며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이처럼 여느 독자들도 나름의 상想이 스치지 않을까.

시인은 우주에 도착한 씨앗 한 톨이 봉오리 단계를 거쳐, 반쯤 핀 꽃잎이 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하며 백일 맞은 ‘아이’의 음성에 대입시킨다. 어떤 의도나 섞임도 없이 한 잎 한 잎 펴져 가는 꽃잎의 순리처럼, 아이가 처음 터트리는 음성은 순수純粹 그 자체이다. 우주의 소리 “오”는 단순한 놀라움이나 기쁨의 음성이 아니라, 영적인 새로운 삶으로 눈뜨는 자아의 음성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하나의 형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중장에서는 우주의 첫 씨앗 ‘오’가 옹알이 “오오오”가 되고, 음성결합체인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우주의 소리 “오”하나면 통하는 할머니의 사랑을 그렸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여기 등장 하는 할머니는 손녀와의 관계 외에도 설화나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할망’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설문대할망, 설맹디할망, 영등할망, 세명주할망 등등 제주인의 역사적 아픔과 자연환경은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켜줄 설화와 신앙을 창조하게 하였다. 하여 할머니와 나 사이에 오래오래 ‘오’가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제주인의 삶에서 ‘할망’의 존재가 불가피한 대상이었음을 피력하고 있다.

“ ‘아’니 ‘오’니 하다가 휘파람처럼 날아간 소리”라는 시구에서 시인은 ‘아래아’의 존재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런데도 우주가 태어날 때마다 여전히 ‘오오’는 들린다며, 아래아 ‘오’는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불가피한 언어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제주인들은 두 팔 벌려 안아 주는 설문대할망의 품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여기서 시인은 제주인의 안위와 마음을 지켜주는 중심을 ‘설문대할망’으로 상정하는 제주인들의 시선을 내포시키고 있다. 이어지는 작품 「설문대할망」중에서도 그 존재성이 표출된다.

2) 창조 신화에 투영된 ‘여성의 힘’

제주섬의 흙은 설문대할망의 ‘살’이며, 제주섬의 물은 설문대할망의 ‘피’이며, 제주섬의 돌은 설문대할망의 ‘뼈’다. 라는 문장은 어느 “설문대할망” 재구성 신화의 마지막 내용이다. 이처럼 설문대할망을 재구성한 문학작품들은 주로 창조적 상징성을 기본 모티프로 한다. 김정숙 시인 역시 「설문대할망」 시조에 일부 창조적 모티프를 제시하였다. 나아가 설문대할망을 제주인의 바람을 헤아리는 현재성에도 등장시킨다. 

- 「설문대할망」 전문

“어젯밤에 다녀가셨나/ 쏟아놓은 꽃잎 자국”은 자연의 창조적 행위에 상상력을 덧입힌 시구이다. 설문대할망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의 원천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시적 주체가 설문대할망임을 비추어볼 때, 쏟아놓은 꽃잎 자국은 일반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풍경이다. 또한 시조 전반에 서정성을 입히며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해마다 봄이면, 철쭉이며 진달래가 지천으로 쏟아지는 한라산. 진분홍 꽃잎으로 물들여지는 제주의 독특한 신의 배려를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설문대할망은 봄의 빛깔까지도 좌지우지하며 꽃잎 자국을 쏟아낼 수 있는 창조신의 면모로 제주인의 삶에 다가왔다.

중장의 설문대할망은 제주인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적 인물로 비춰진다.  사설은 무려 스물한 가지 ‘삶의 바람’을 쏟아낸다. 마치 굿거리장단처럼 리듬과 율격을 갖추며 시조 전반에 음악성을 드리우는 것 같다. “말라말라 호다 건들지 말라 건들보름/ 해도 해도 너미햇주 한 많은 하늬보름/ 치맛은 무슨 맛산디 솔짝솔짝 치맛보롬…. 제주인이 살아가며 부시럭대는 소리다. 그런데 여기 제주어들을 가만 음미해 보면 애원하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하며 때론 익살스럽게 제주말의 맛을 드러내며 폭로하기도 한다. 시인이 제시한 바람은 시인만의 시적 은유어로 재해석된 시구들이다. 중장의 사설들을 읊조리는 독자들은 제주의 뿌리를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 본다.

하필 왜 바당보름에서 마침표를 찍었을까. 시인은 “일 년 삼백예순다섯 잘 날 어신 바당 보름”에서 사설의 방점을 찍었다. ‘바당보름’은 제주인의 삶을 아우르는 바람이다. 잠시 독자 입장으로 반문해 봤다. 만약 통상적인 ‘보름’에서 머물렀다면, 시적 울림 없이 단지 제주어를 이해하는 기표記標 단계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시인은 사설 마지막 지점에 이를 대입하면서 제주인의 삶의 애환을 들여다보고 있는 존재가 설문대할망임을 환기한다. 제주어 ‘보름’은 표준어 ‘바람’이다. 이 시조의 ‘바람’은 공기의 흐름인 일차적 어휘를 소재로 했지만, 제주인의 애환과 그들이 소망하는 내면의 ‘바람’이 함의되어 있다. 따라서 시어 ‘보름’은 인간의 정서와 자연, 언어가 평등한 동반자적 위치에 있음을 강조하는 화자의 시의식이라 읽혀진다.

이 시조에서 ‘설문대할망’의 존재는 창조 신화의 문법인 초월적 존재와 능력을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 고대 모계 중심 사회에서는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능력이 신성시되었다. 이는 대지의 생산성과 결부되어, 고대인으로 하여금 천지창조의 근원을 여성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정신적 배경이 되었다. 하여 설문대할망은 제주 ‘바람’을 만들어낸 주체이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제주 여성들의 의지, 제주인의 삶을 품어내는 “여성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 여성성이 보살피는 인간의 삼라만상을 통해 설문대할망을 제주의 질긴 생명력의 원천으로 보는 작가의 시선이 엿보인다. 

종장에서는 섬을 한 바퀴 휘돌면서 제주인의 바람 소리를 듣고 온 설문대할망. ‘꽃바람을 피우고’라는 시구로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 ‘꽃/바람’은 중장 사설에서 나열되었던 삶의 바람과 대비된다. ‘꽃’은 제주의 갖가지 바람을 포용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보면 ‘아픔과 절박함 그리고 성취’라는 도식을 그려낼 수 있다. 자기 생명을 피우기 위해 아픔을 겪고, 절박한 몸부림을 치고 나서야 봉오리를 터트리는 것은 우리 인간사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설문대할망의 ‘꽃바람을 피우고’의 꽃은 아픔과 절박함을 내재한 제주인의 삶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여 설문대할망이 꽃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제주인의 아픔과 절박함을 포용하고 나아가 희망까지도 제시하는 함축된 기의記意로 해석될 수 있다. 

3) 제주인의 마음 고향 신당神堂

서정적 문학 양식에서는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우주의 심오한 형상을 이미지화하는 특징이 있다. 김정숙 시인은 여기서 한 발 나아가 평면적인 전개를 뛰어넘는 현대적 맥박으로 접근하고 있다. 작품 「프러포즈」와 「호다호다」는 독창적인 화법과 감각적 전개 방법은 언어적 유희를 부각하며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다. 

태초부터 우리가 당신 사이였나요
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당이라 하고
원초적 당의 주인은 신이었으니까요

(중략)

길은 끊어져도
생이 남아 있다면
당을 위한 신의 마음 신을 품은 당의 마음
하가리 할망당 앞에서
우리 당신 할래요?

- 「프러포즈」 중에서

제주의 민속 신앙은 대부분 무속에 뿌리를 둔다.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심방을 통해 굿을 하거나, 신당에 가서 심방 없이 기원하는 형식으로 실현된다. 제주 마을에는 대부분 할망당이 하나씩 있으며, 하르방당까지 있는 마을도 있다. 민간신앙에서 제주 여성들은 주로 매월 초하루, 보름에 마을의 신당을 찾아가 집안의 안위를 희구했었다. 

중장 “제주 섬 은밀한 곳곳 푸르른 이끼처럼”에서 당 堂은 인간의 마음을 신 神에 전달하고자 하는 중개 仲介의 장소로, 주로 할망당 하르방당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신성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제주인의 삶을 읽어주고 지켜주는 신을 모신 신당을 제시한 중장을 기준으로, 초장 “태초부터 우리가 당신 사이였나요”라는 문제 제기와 종장 “우리 당신 할래요?”라는 프러포즈는 수미상관 구조로 주제를 환기 한다.

시인은 부부나 상대를 일컫는 ‘당신當身’과 할망당 하르방당 등 신당에 모신 신을 의미하는 당신堂神 등 동음이의어를 대비하여 묘한 설렘을 안겨준다. 제주인의 마음 고향. 제주 여인들은 그곳에 가야 마음이 편했다. 언제나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당신, 매일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당신…. 얼마나 절실했으면 당신堂神과 당신當身의 중의적 표현을 동시 수용하게 했을까. 숭배의 대상이었던 당신堂神을 인간의 속생활로 끌어와 연모의 대상으로 치환한 감각과 기교에 마음이 동할 따름이다. 시인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대상에게 프러포즈의 행위를 설정하여 제주인의 열망과 의지가 깊음을 표명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의 할망당 할르방당은 일부 마을 할머니들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작품 「호다호다」에서 치성드리는 기도의 실제를 만날 수 있다.

- 「호다호다」 전문
- 「호다호다」 전문

「호다호다」는 귤 농사를 통한 생명의 순환을 인간의 삶과 연결하고 있다. 제주어 ‘호다’는 제발, 부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등 기원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시인은 오월, 귤꽃, 귤이 맺히는 과정에서 소재를 찾는다. 나아가 밭농사의 치성을 자식 농사의 치성으로 확장하며 시의식을 집약시킨다.

수백만 송이 귤꽃 터지는 계절 오월, 그 꽃잎이 터지기 전까지의 농부는 ”사나흘 밤낮 공들여“ 다섯 꽃잎을 피워냈다. 다섯 꽃잎이 펴지기까지 할망당, 하르방당을 찾아가 치성드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가운데 노란 점 하나에 온갖 치성 들이는 봄” 귤열매가 맺힐 때까지 ‘봄’이라는 한 계절을 바쳐 치성을 들일만큼 밭농사를 위한 기도는 삶의 필연적 의식이다. 어느 한 잎도 아프지 말게 하며, 비바람에도 곱게 익게 해 달라고 농사를 위해 빌고 또 비는 것이 제주 여인들의 섬세한 신앙이었다.

그런데 시적 전개 과정을 보면 갑자기 ‘기도의 대상’이 바뀐다. “호다 호다 눈맞은 사름사만낭 시장게 보내줍써”는 작품 전반적인 소재 밭농사에 대해 치성드렸던 장면에서, 자식 농사로 전환 시켰다. 자식 농사에 치성드리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제발 아프지 않기를, 비바람에 휘둘리지 않기를, 사랑의 짝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시인은 마치 “뉘라서 어머니의 깊이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요.”라며 딱 ‘한 행’의 시구로 일침을 놓았다. 아울러 자식의 인륜지대사를 위해 신당 神堂에서 기도했던 제주 어머니들의 견고한 갈망을 함축하고 있다.

4) 돌과 바람 그리고 삶

제주인은 돌에서 태어나 돌에서 죽는다는 말도 있다. 울담에서 태어나서 밭담에서 일을 하다가 산담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넘쳐나는 돌을 파내고 농부의 땀이 베긴 후에야 양식을 내주었던 땅. 이처럼 제주인은 척박한 농경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로인해 강인한 정신력과 다양한 지혜를 얻기도 했다. 집에는 울담, 우영담, 올렛담을 쌓았고, 밭에는 밭담, 산소에는 산담을 쌓았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돌은 그렇게 존재했다//중략// 돌 위에 돌/ 돌 아래 돌/ 돌 옆에 돌/ 몇만 년// 같은 돌 하나 없어 같은 삶 하나 없어 

- 「현무암 일가」 중에서

시적 화자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돌은 그렇게 존재했다”고 한다. 그렇다. 돌을 바라보며 그 안에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크면 왕돌 왕석/ 양손으로 들면 담돌”이라며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제주의 돌은 누군가에게는 산담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밭담이 되었다.

"돌 위에 돌/ 돌 아래 돌/ 돌 옆에서 돌/ 몇만 년"이라는 단순한 나열처럼 보이는 시구이다. 그러나 가만히 음미해 보며 제주를 지켜왔던 인고의 세월이 잔잔히 연상된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온 돌은 시간 연속성 속에 늘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같은 돌 하나 없어 같은 삶 하나 없어“ 제주인은 돌이 너무 많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을 보내면서 얻어낸 지혜의 손길은 제주의 삶을 단단하게 해 줬다. 경계의 역할을 해 주는가 하면, 때론 바람의 통로로, 때론 위험으로부터 보호했다. 아울러”같은 삶 하나 없어"라는 마지막 시구는 제주의 자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주를 지켜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인의 강인한 정신세계를 내어준 자연은 ‘돌’과 ‘바람’이다. 이어지는 「게무로사 별곡」과 「설문대할망」에서 바람의 존재를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자연으로 인한 삶의 뿌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보름 보름 해도 게무로사 섬 놀아나크냐/중략//공출/간섭/눈독에도/고망고망 지킨 삶/중략/아버진 역경의 오지랖을 건너왔다 하셨네

- 「게무로사 별곡」 중에

제주어 ‘게무로사’는 아무런들, 그렇게 한들 등 ‘강한 의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바람, 바람 해도 게무로사 섬 놀아 나크냐"는 아무리 거센 바람의 역경에도 이를 이겨내는 제주인의 강인한 정신을 강조하는 시구이다. “공출/간섭/눈독에도/고망고망 지킨 삶” 제주의 삶은 척박했다. 빌레밭의 돌무덤을 파내며 거센 비바람과 눈물 바람으로 만들어낸 농산물을 ‘공출’이라는 미명하에 본국의 착취당하며 살아야 했다. 이처럼 쓰라린 역사적 배경을 안고서도 제주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 “아버진 역경의 오지랖을 건너왔다 하셨네!”라는 시구에서 제주인이 겪은 아픔과 고난이 얼마나 컸을지 감지할 수 있다.

제주의 바람은 끝이 없다. 태평양과 대륙의 갈등일까. 수시로 제주 곳곳을 누빈다. 바다며 산이며 밭이며 필자가 매일 만나는 십 평 남짓 손바닥 꽃밭까지 여지없이 불어대며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가지가 가녀린 꽃모들이 시도 때도 휘몰아치는 바람 쌀에 버텨내는 걸 보면, 거센 바람에 맞섰으나 동시에 순응했던 제주인과 동일시된 모습을 보여준다. 

말라 말라 다 건들지 말라 건들보름/ 해도 해도 너미햇주 한 많은 하늬보름/ 눈 왁왁 코 왁왁 살아시녜 흙보름/중략/ 가나오나 주는 거 어시 미운 꽃샘보름/ 똠 나는 디 산들보름 / 바당이고 땅이고 대박나 줍써 영등보름/일 년 삼백 예순 다섯 잘 날 어신 바당보름

-「설문대할망」 중에서

시인의 표현처럼 가끔은 미운 꽃샘바람으로 왔다가, 때론 해도 해도 너무한 한 많은 하늬바람 오기도 한다. 허허벌판이었던 바람코지 빌레밭이나 바닷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었을까. 김 시인은 위에 분석한 「설문대할망」 작품에서 무려 스물한 가지의 바람을 토로한다. 여기에는 제주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삶에서 만나는 ‘은유의 바람’을 섞어 사설로 풀어낸다. 그만큼 ‘바람’은 제주 내면에 일체화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 「멍」전문  
- 「멍」전문  

작품 「멍」은 제주인의 지난한 삶을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을 담담히 들여다보게 한다. 제주어 ‘멍’은 ‘~하면서, 하며’ 표준어 ‘멍’은 ‘퍼렇게 맺힌 자국, 상처’ 등 전혀 다른 의미이다. 시인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표면적 의미와 함의적 의미를 혼용하는가 하면, 표준어와 제주어의 나열한 작법으로 시의식을 집약시킨다.  

시인은 가끔 가벼워지고 싶어서 놀면서 쉬면서 올레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리고 “멍으로 다져진 땅에 발을 올려놓는다“ 고 했다. 여기서 ‘멍으로 다져진 땅’은 중의적 해설을 요하는 시구이다. 제주어 ‘멍’을 표준어로 바꾸면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다져진 땅이라는 표면적 의미이다. 아울러 자연환경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시퍼렇게 멍이 배 있는 땅이며, 제주의 상처를 함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산다는 것은 멍드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도르멍 도르멍 바쁨을 누렸네” 여기 ‘누렸다’라는 의미에는 ‘즐겼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척박한 환경과 바쁨의 생활마저도 이겨내려는 제주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담겨 있다. 아울러 "검푸른 부종을 이젠 쓰다듬어야 하겠네!"라는 시구는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제주인의 상처를 품으며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하고, 제안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제주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싸안으며 소중한 제주를 함께 품어가자는 의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작품 「멍」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마치 평서문임에도 문답 형식이 내포된 것 같은 착각. 시적 화자는 묵직하고 진솔한 말투로 상담자와 내담자의 역할을 다해 주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멍드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검푸른 부종을 이젠 쓰다듬어야 하겠네" 다툴 때, 슬플 때, 화날 때, 하루의 일과를 하루에 끝내지 못할 때, 쳇바퀴 돌 듯 살아갈 때…. “ 마치 오늘을 고생한 나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결국 이 작품은 제주 자연의 결과 제주어의 결을 융합融合하며, 제주인의 상처를 시조로 치유해 주고 있다. 아울러 바쁜 일상을 사는 인간사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며, 이들에게 치유와 극복의 희망을 제시해 준다.

자연의 숨결을 담은 제주

제주인의 삶에서 자연을 떠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땅은 척박했으며 강한 바람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삼키기 일쑤였다. 홀로 떨어진 섬. 제주는 이로 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휘몰렸으며, 예측하지 못하는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에 맞서 이겨내려는 제주인의 의지는 수많은 설화와 신당 神堂을 만들어 냈다. 이 지점을 꿰뚫어 시인 특유의 감각을 집약시킨 김정숙. 그녀의 깊은 통찰력은 이번 시조집에 제주인이 살아왔던 진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 에머슨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여,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공감과 영감을 주는 존재’가 시인이라고 했다. 그렇다. 김정숙 시인은 제주어에 발효시킨 시조 작품을 통해 제주인의 공감을 끌어냈으며, 제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설문대할망을 제주 ‘여성의 힘’과 연결하는가 하면, 돌과 바람을 이겨냈던 정신과 지혜 그리고 제주인의 마음을 지탱해 준 신화와 민간 신앙을 형상화하여 제주 감수성에 젖어 들게 했다. 이처럼 김정숙 시인은 어느 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긴장의 국면을 유지하며 군더더기 없이 깊고 오묘한 시조 미학을 펼쳐내고 있다.

※김정숙 제주어 시조집의 독서 평론은 3회 연재 되며, 마지막 연재 3편은 “제주어 시조의 시대의식”입니다.

※‘아래아’는 인터넷 표기가 불가능하므로, 시조집 표기와는 달리 시평에서는 편의상 ‘ㅗ’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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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2024-06-23 16:20:56
제주인이 아니어서 제주어 시집을 거의 본 적이 없고 송미아 평론가님 덕분에 제주어 시조를 처음 접했습니다. 지난번 평론에서도 소중한 올레의 정서를 느꼈는데 이번 평론에서는 그야말로 제주인의 뿌리들을 보는것같아요.프러포즈와 설문대할망.. 시조도 좋고 해설을 읽어서 생각지못했던 제주를 느낍니다. 마지막시조도 넘. 좋네요. 펑론가님처럼저도 위로받는것 같습닏다. 다음 편도 기다려집니다.

초록사랑 2024-06-22 22:11:57
1편에서는 김정숙시인님의 시조집을 통해 300년을 거슬러 살아버린것 같은 착각을..... 너무나 오랫동안 내 안에 담아두었던 제주어와의 만남이어서였을까요?
2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왁왁' '도투멍' '마포름' '금착금착'등등. 저는 지금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영미 2024-06-22 00:05:51
1편에 이어 2편도 잘 보았습니다~~한 겹 한 겹 정성껏 벗겨 마련해 주시니 두 손 깨끗이 맛있게 먹을 뿐입니다. 좋은 시조에 훌륭한 평입니다. 좋은 작품 감상할 수 있게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3편도 기대가 되네요~~

미녀 2024-06-21 20:59:03
한 편의 시조가 지친나를 위로해 줍니다. 오늘을 지치게 산 나에게 위로해 주는 듯한 마지막 작품<멍> 마지막 문장을 읽도 또 읽습니다.깊은 평론 감사합니다.

무심재 2024-06-21 15:33:26
요즘엔 부모님댁에나 가야 들을 수 있는 제주어지요.
송미아 독서평론가의 글처럼 제주어에 잘 발효시킨 김정숙 시인의 시조를 읽어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