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6-19 11:55 (수)
기초 설계 없이는 방향성, 로드맵 수립은 요원
기초 설계 없이는 방향성, 로드맵 수립은 요원
  • 허지훈
  • 승인 2024.05.30 0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와 세상] <9>
프로야구 한화-K리그2 수원, 최근 성적 부진으로 사령탑 잇단 교체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설계다. 기초 설계가 명확하게 이뤄져야 건축 자재 투입의 원활함, 도면 작성 등 세부 요소들이 뒤따르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이러한 과정을 착실하게 거치면서 완성될 때 건축물의 예술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 등이 두드러진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팀의 기본 설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적 구성과 팀 밸런스 등의 화려함에 의존하면 이는 부실공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느 종목이든 한 해 농사의 성패가 기본 설계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더 그렇다. 성과주의라는 구조적 특성을 피할 수 없다고 한들 기본 설계가 갖춰지지 않고서는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리그2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최근 성적 부진도 기본 설계의 부재에 따른 잦은 사령탑 교체, 중-장기적 로드맵과 방향성 실종, 안일함의 종합세트가 한데 어우러졌다고 봐도 어색하지 않다. 두 팀 모두 두꺼운 팬층과 로얄티를 기반으로 야구와 축구의 양대 산맥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더하다. 마치 기본 설계의 미진함으로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가 허다한 현대 사회의 모든 기관, 조직의 악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대표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에서 두 팀은 양 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들이다. 이는 그간 걸어온 발자취에서부터 생성된 산물이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의 전신이며, 한화 이글스의 명칭은 1994년부터 생성됐다.)로 창단되면서 프로야구 회원이 된 한화는 당시 지역 연고 출신(Ex, 해태 - 호남, 롯데 – 부산·경남, 삼성 – 대구·경북) 선수들만 수혈할 수 있는 리그 규정 하에 송진우와 장종훈, 한용덕, 이상군, 정민철, 구대성 등 야구팬들이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라성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대거 수혈되며 팀 전력을 살찌웠고, 1991년과 1992년 페넌트레이스 선두에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1991 - 해태 4패, 1992 - 롯데 1승4패)에 머무른 쓰라림을 1999년 한국시리즈 챔피언 타이틀로 멋지게 승화시키며 충청 팬들에 큰 환호성을 이끌어 냈다. 수원 역시도 1996년 창단과 함께 K리그 4회 챔피언(1998~99, 2004, 2008)에 오르면서 K리그 대표 명문 클럽으로 발돋움했고,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투자 하에 이운재와 서정원, 김대의, 이기형, 신홍기, 염기훈, 정성룡 등 굵직굵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활약하면서 ‘갈라티코 정책(스타플레이어들을 대거 끌어모으는 정책)’의 효과를 입증했다.

야구와 축구의 종목 특성과 성향의 차이는 있지만, 두 팀의 발자취 속에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로 두꺼운 팬층과 로얄티의 형성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대전-충청권을 연고지로 삼았던 OB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신)가 1985년부터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하면서 공석이 된 대전-충청권 야구 연고팀 자리가 새롭게 채워졌고, 당대 최강 해태 타이거즈(KIA타이거즈의 전신)의 야성을 뒤흔들 대항마로 빙그레가 떠오르게 되면서 팬덤 형성과 로얄티 향상 등이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식됐다. 이처럼 충청권 빙그레의 존재는 프로야구의 질적 향상에도 큰 복선이 됐고, 연고지 지역 균형 역시 빙그레의 충청권 입성과 함께 구색이 맞춰지기에 이르렀다. 비록 해태의 강렬한 ‘아우라’와 롯데의 ‘미러클’에 막혀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쓰라림을 맛봐야 했음에도 충청권 출신 선수들을 축으로 지역 연고 기반을 다져놓은 부분은 훗날 KBO리그 팀 중 최다 영구결번(21번 송진우, 35번 장종훈, 23번 정민철, 52번 김태균) 기록 보유로 이어지는 초석과도 같았다. 수원은 창단과 함께 연고지 지정 과정에 당시 모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고지인 수원을 그대로 계승했고, 창단 초창기부터 호성적과 스타플레이어들의 존재에 서포터즈를 축으로 엄청난 팬층과 로얄티가 형성되면서 명문 클럽의 골격을 더 입혔다. 특히나 창단 초창기 안양 LG(FC서울의 전신)와 ‘지지대 더비(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이목동과 의왕시 왕곡동 경계 골목인 지지대 고개에서 따왔으며, 1999년 수원 코치였던 조광래 감독의 안양 감독 취임, 안양 선수였던 서정원의 수원 이적으로 절정을 이뤘다.)’는 오늘날 서울과 ‘슈퍼매치’로 연결되면서 K리그 대표 흥행 카드로서 입지를 탄탄히 할 정도였고, 양팀 서포터즈들의 열띤 응원전과 숱한 스토리텔링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실제로 두 팀의 경기 때마다 홈-원정 가리지 않는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은 장내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드는 매개체였다. 장내 주변부터 입장 행렬이 가득할 만큼 ‘구름관중’의 보증수표로도 자리매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관중몰이에 있어 두 팀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나란히 1982년(프로야구), 1983년(프로축구) 출범 당시 광역 연고제를 도입하면서도 지역 연고제 색을 강하게 뿌리내린 프로야구와 광역 연고제 색이 초창기 시절 짙었던 프로축구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두 팀의 두꺼운 팬층과 로얄티 등은 기존 팀들에 결코 떨어질 것이 없다는 평가가 자자한 이유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지난날 나름의 찬란한 업적은 어느새 두 팀에게 옛말로 자리하는 분위기다. 최근 성적이 그대로 말해준다. 한화는 2007년 이후 지난 시즌까지 포스트시즌 초대를 단 한 번(2018년) 밖에 받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최하위만 8번(2009~10, 2012~14, 2020~22)을 기록하는 수모를 맛보며 ‘자판기’로 전락했다. 잇따른 최하위 속에 매년 신인드래프트 때마다 전국 각지 우수 자원들을 상위 픽하는 횡재에도 팀 차원에서 확실한 중-장기적 방향성과 로드맵이 전무했고, 타 지역에 비해 팜이 취약한 충청권의 지리적 특성에 나머지 팀들과 인적 자원의 격차가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2014년까지 2년 임기를 채운 김응용 감독 이후 김성근(2015~2017), 한용덕(2018~2020), 카를로스 수베로(2021~2023) 등 차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퇴진했다. 급기야 올 시즌에도 최원호 감독이 지난 27일 박찬혁 대표이사와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까지 생성됐다. 무엇보다 올 시즌은 에이스 류현진의 12년 만에 국내 유턴과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최근 과감한 투자, 투-타 젊은 자원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열어젖혔다. 초반 7연승과 단독 선두의 휘파람에도 주축 자원들의 잇단 부상과 얇은 뎁스, 핵심 자원의 부진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팀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성적 역시 4월 초순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타면서 팬들의 비난 화살을 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원도 한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2000년대까지 K리그를 호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2010년대를 기점으로 팀 성적이 곤두박질을 쳤다. 2022년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간신히 잔류한 것도 모자라 지난 시즌 팀 창단 최초로 다이렉트 강등의 수모를 맛보면서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 2010년대 중반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면서 구단의 몸집이 확 줄었고, 스타플레이어 영입에서 유스 시스템 활용으로 팀 운영 시스템이 개편됐다. 유스 시스템의 육성을 통해 연속성 가미를 골자로 했지만, 오히려 이게 되려 추락을 야기하는 꼴이 됐다. 무엇보다 투자가 성과를 증명한다는 불변의 진리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유스 시스템 활용의 의존도가 짙어진 나머지 스타플레이어 영입과 같은 투자 실탄을 주저했고, 그 사이에 울산과 전북, 서울 등 소위 ‘빅마켓’ 클럽 경쟁팀들이 지갑을 두둑하게 열어젖히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소위 ‘리얼블루(수원 출신 레전드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용어를 일컫는다.)’ 출신들을 사령탑에 앉히면서 총알받이로 팀을 꾸려가는 정책도 순혈주의 의존의 비난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 결과가 지난 1년 사이에 4명이 감독 혹은 대행직(이병근, 최성용, 김병수, 염기훈)을 앉는 웃지 못할 촌극을 불러왔다. 다이렉트 강등의 수모와 핵심 자원들의 이탈 속에 올 시즌 박경훈 단장 선임을 비롯한 프런트 개편을 꾀하며 다이렉트 승격을 야심차게 외쳤으나 최근 K리그2 무대에서 5연패에 팬들의 비난과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 25일 서울 이랜드FC 전 1-3 패배 이후 팬들이 버스를 가로막고 항의하는 과정에 염기훈 감독이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면서 씁쓸함이 더했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중-장기적 방향성과 로드맵 부재가 비단 스포츠 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 조직의 기본 철칙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조직은 사업 추진과 실현, 정책 수립 등에 있어 중-장기적 방향성과 로드맵 수립이 주요 밀알이다. 이를 토대로 조직 구성과 역량 배양에 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며, 조직 아이덴티티 확립과 이미지 제고, 비즈니스 가치 향상 등이 부수적으로 뒤따라온다. 그런데 스포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고질적인 성과주의의 이면에 모든 책임을 꼬리 자르듯 자르는 행태가 늘 반복된다. 스포츠에서 감독을 내치는 이유가 성적 부진이 주 핵심인 것처럼 일반 조직이나 기업에서도 성과 부진에 따른 책임을 중간 책임자에 떠넘기는 일이 너무나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중-장기적 로드맵 수립과 미래 지향적인 가치 창출은 요원할 수밖에 없으며, 구성원들의 사기와 동기부여 확립에 있어서도 악영향만 잔뜩 초래된다. 이러한 촌극의 대부분이 무사 안일주의와 매너리즘이 핵심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성과의 핵심 지표이자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기업과 사조직 모두 매년 사업 정책에서 드러난 개선점을 토대로 발전 피드백을 공유하면서 사업성 강화와 투자 증진 등을 바라본다. 하지만, 무사 안일주의와 매너리즘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치고 있음에도 단순히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서 발전과 성장을 바라는 날강도적 행태가 한국 사회에 너무나 만연되어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 수직적 분위기와 맞닿아있으며, 중-장기적 로드맵과 방향성의 부재는 조직 이미지 형성과도 고스란히 직결된다. 시즌 초반 바람 잘 날 없는 날을 보내고 있는 한화와 수원 모두 새 사령탑 체제로 또다시 ‘리셋’ 된다. 한화는 새 사령탑 선임 이전까지 정경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지휘하게 됐으며, 수원도 어수선한 상황 속에 새 사령탑 체제로 분위기 쇄신을 도모할 방침이다. 스포츠 팀이든, 모든 조직이든 성과 부진에 따른 꼬리 자르기의 반복은 구성원들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그렇기에 기초 설계에서부터 방향성과 로드맵을 하나하나 수립하면서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필수다. 그게 모두가 공생하고 웃는 길이라는 점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