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25 01:14 (토)
“제주 돌 문화를 세계유산으로 끌어올리고 싶어요”
“제주 돌 문화를 세계유산으로 끌어올리고 싶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4.15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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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환진 돌빛나예술학교 교장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서 ‘돌챙이’展

“석공보다 돌챙이가 제게 딱 맞는 이름”

전통적 돌 쌓기 지키려 민간자격도 등록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돌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석공(石工)’보다 ‘돌챙이’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하다. 어찌 보면 ‘돌챙이’는 돌을 다루는 애정의 다른 이름으로 들린다. 조환진씨도 스스로를 돌챙이라 부른다. 그는 자신이 다루는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작품으로 여긴다.

“석공이라고 불릴 땐 제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아요. 하루하루의 제 삶이 고상하거나 그러지는 않거든요. 제가 하는 일은 흙먼지 뒤집어쓰면서 거친 돌을 깨고 다듬는 일이죠. 돌챙이로 불리면 뭔가 거친 일을 하는, 제게 딱 맞는 이름이죠. 돌챙이는 제주어이기도 하잖아요.”

돌챙이라 부르는 조환진씨. 그는 제주 돌 문화를 세계유산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미디어제주
돌챙이라 부르는 조환진씨. 그는 제주 돌 문화를 세계유산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미디어제주

돌챙이 조환진씨. 그는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다소 낯선 주제의 전시를 이끌고 있다. ‘돌, 바람 그리고 돌챙이’展이라는 이름의 전시다. 독특한 전시를 연 이유는 있다. 돌챙이의 삶은 돌을 그냥 다루는 이들이 아닌, 제주를 빛내는 고귀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돌을 다루던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돌챙이로 살았다고 할 뿐이지만 알고 보면 그 일은 제주를 빛낸 일이었어요. 그들의 삶을 더 빛나게 보여주려고 이번 전시를 마련했어요.”

이번 전시엔 문화재로 대접을 받는 이들의 삶도 만날 수 있다. 제주초가를 지을 때 담을 쌓고, 구들돌을 놓아야 하는데 돌챙이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다. 현재는 문화재(초가장)로 인정받고 있다. 제주옹기를 만들 때는 제주의 가마인 검은굴이나 노랑굴에서 구워내는데, 그걸 만드는 굴대장도 문화재다. 이렇듯 제주의 돌 문화는 아주 귀하다. 그러기에 조환진씨는 제주의 돌 문화를 세계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돌챙이를 비롯한 제주의 돌 문화를 세계유산으로 만들고 싶어요. 현재 돌챙이에 대한 기초 자료가 없는 상태랍니다. 조사를 하다 보면 분야별 장인들이 발굴될 테고, 그런 자료가 모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제주 돌 문화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녔을까. 그는 나라와 비교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제주도 돌 문화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더군요. 비교해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좋은 거잖아요. 정말 제주도는 돌 문화가 달라요. (다른 나라와 달리) 삶 속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어요. 외국은 건축물을 위주로 돌 문화가 발달했으나 제주도는 생활 곳곳에 있어요. 신앙에도 있고, 집을 짓는 데도 있고, 민구류에도 있죠. 그러니까 모든 걸 돌로 해결한 곳이었어요.”

그는 해외에 있는 돌챙이들과도 교류한다. 일본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이탈리아에서도 온다. 그는 일본 돌챙이들이 했던 말을 기자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일본은 돌 값도 비싸고, 쌓는 비용도 비싸기에 돌로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지 못한대요. 그러면서 금능리에 있는 텃밭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저기 있는 쪽파가 얼마나 귀하기에 비싼 돌로 둘렀냐면서요.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제주도는 돌이 생활이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제주도는 아직도 돌 문화가 살아 있어요.”

그는 제주 돌 문화는 제주해녀 문화와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제주해녀 문화가 세계유산이 된 데는 ‘공동체의 힘’도 작동했다. 제주해녀는 물질이라는 독특한 어로 방식을 ‘공동체’라는 마을 단위에서 이뤄진다. 그런 독특함이 세계유산이 된 힘이었다. 조환진씨는 돌 문화도 마찬가지란다.

“돌챙이들도 그런 문화가 있어요. 돌챙이들의 그런 문화를 잘 연구하고 발굴한다면 유산이 될 수 있고, 돌챙이라는 직업을 지닌 분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죠. 이번 전시를 시작하면서 세미나도 열었는데 세계유산으로 가보자는 노력이었어요.”

미약하지만 그는 첫발을 디뎠다. 아직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적지만, 그의 노력은 언젠가는 인정받으리라 여긴다. 그가 제주의 돌에 애정을 지니기 시작한 건 기차 여행 덕분이었다. 제주에서만 살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청량리에서 강원도 정선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고, 돌담 하나도 없는 창밖의 풍경에 충격을 받는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주에서 늘 보던 돌담이 육지에는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 제주도 돌담이 귀한 걸 알았습니다. 제주 돌담은 보물이며 귀한 걸 그때 알았어요. 이후로 돌담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제주 돌에 무한한 그의 애정은 ‘돌빛나예술학교’ 운영으로 거듭나고 있다. 돌빛나예술학교는 기술자양성이 목적이 아닌, 돌 쌓는 기술의 대중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만난 조환진씨. 6월 30일까지 '돌, 바람, 그리고 돌챙이전'이 열린다. 미디어제주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만난 조환진씨. 6월 30일까지 '돌, 바람, 그리고 돌챙이전'이 열린다. ⓒ미디어제주

“예전 밭에 나가 일하면서 아버지한테 아들이 배우고, 그러면서 돌 쌓는 기술은 자연스럽게 전수돼 왔는데 이젠 끊겼어요. 제주도민이라면 무너진 담 정도는 쌓을 수 있게 하자며 이 학교를 만들었어요. 민간자격도 등록했어요.”

그는 지난 2022년 민간자격인 ‘돌챙이(쌓기 석공)’를 등록했고, 자격을 따낸 이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런 자격을 만든 이유는 제대로 된 돌 쌓기를 원해서이다. 최근에는 돌로만 쌓는 담이 아니라, 시멘트를 집어넣어서 담을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전통 방식의 기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간자격을 만드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제주 돌쌓기를 지키려는 ‘지킴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일을 ‘작품’에 견준다.

“돌담을 작품으로 봅니다. 작품을 하나 남긴다고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해요. 일당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힘들 뿐이죠. 제 이름을 걸고 만드는 작품이고, 그 작품은 아주 오래 가잖아요.”

그의 말처럼 쌓아 올린 돌은 억지로 부수지 않는 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작품을 감상하러 가 보자. 그의 삶이 녹아난, 아니 돌챙이들의 삶이 가득한 ‘돌, 바람 그리고 돌챙이’展은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조환진씨가 말하는 세계유산이 될 가치가 있는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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