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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유적지] 햇살이 따스해지는 4월 낙선동 4.3성담을 거닐어 보자
[제주4.3유적지] 햇살이 따스해지는 4월 낙선동 4.3성담을 거닐어 보자
  • 백종은
  • 승인 2024.04.01 10: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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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협회 '문화 두드림' <1>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 백종은

 

낙선동4.3성 내부
낙선동4.3성 내부

제주의 4월은 특별하다.

지금도 정명되지 않은 제주4.3은 제주 곳곳에 생채기가 남겨져 있다.

2008년에 4.3유적지로 지정된 조천읍 선흘리의 낙선동4.3성은 도내에선 유일하게 당시 전략촌(재건부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돌로 성을 쌓아 집단으로 거주케 한 이 곳은 사실상의 수용소였으며, 이곳 주민들에겐 유일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설촌된 지 80여 년이 채 안 된 이곳엔 3m 남짓한 높이의 성담이 300여m 둘러져 있다.

햇살이 따스해지는 4월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낙선동 4.3성을 거닐며 제주4.3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선흘서5길 7>에 위치한 낙선동4.3성 유적지 사무실엔 문화관광해설사가 배치되어 이곳을 찾는 관람객에게 해설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해설 신청은 사전 예약신청 및 현장해설 신청 모두 가능하다.

(해설예약 ☎ 064-783-4373 낙선동4.3성 유적지 관리사무소)

입구에서 바라 본 성안 모습                                                                    외부 4.3성담 모습                                       
입구에서 바라 본 성안 모습                                                   외부 4.3성담 모습                                       

제주4.3 당시 제주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전개된 초토화작전(삼진작전)은 물 막은 섬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죽여 없애고,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앤다는 삼진작전은 토벌의 대상인 무장대뿐만 아니라 애꿎은 제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장대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터전인 집이 불태워지고 잿더미로 변한 마을에서 쫓겨난 주민들은 거리로 내몰려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용케 목숨을 부지해 해안마을로, 바닷가로 찾아들었다 하더라도 이들을 반기는 건 무장대의 동조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멸시와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그나마 미처 해안마을로 피신조차 하지 못하고 곶자왈의 춥고 어두운 동굴로 숨어들었다가 발각돼 목숨을 잃은 이들이 살아남은 자들에겐 위로 아닌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함바집 원형도
함바집 원형도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 주변 마을들이 불에 타 사라지자 뿔뿔이 흩어졌던 마을 주민들은 이듬해 봄 이 곳에 성을 축성하여 집단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축성 작업에 동원된 조천읍 관내 마을주민들은 주변의 밭담과 울담, 심지어는 산담까지 허물어 등짐을 지고 날라야 했다.

매일 같이 동원된 축성 작업으로 그들의 등짝은 허물어져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고 한다.

축성된 성은 높이 3m, 길이 150m×100m, 약 7500평 규모로 무장대의 침투를 방어하기 위한 2m 넓이의 해자와 무장대의 침입을 감시하고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을 갖춘 방어시설이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수용소였다.

성 내부에는 주민들의 집단 거주를 위해 함바집을 지어 살게 했고, 함바집은 방과 부엌이 구분이 없는 공간으로 억새로 칸막이를 만들어 5세대 정도가 생활했다.

성 모퉁이마다 초소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일 역시 마을 주민들의 몫이었다.

4.3으로 인해 건장한 남성들은 죽임을 당했고 죽음을 피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자원입대하거나 살길을 찾아 떠나버렸기에 마을에 남은 노인과 부녀자들은 삶의 고된 몸을 이끌고 밤마다 성 주변을 돌며 보초를 서야 했다.

그림  함바집   그림  통시(변소)
함바집                                                                                     통시(변소)

죽음보다 못한 삶을 견디며 모진 삶을 이어온 마을 낙선동. 이 곳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은 2008년이었다.

북쪽 성담 일부와 함께 성 내부의 집단생활 공간인 함바집, 통시(변소), 보초를 섰던 초소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상주했던 경찰지서 등이 복원돼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4.3 76주년을 맞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낙선동4.3성을 찾아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자. 함바집 안에 들어가 한 평도 되지 않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북적이며 생활했을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고, 경비 망루에 올라 이 자리에서 보초를 서며 추위와 공포를 견뎌야 했을 그 모습을 떠올려 보자. 지금은 사라져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재래식 변소(통시)를 보며 그 당시의 생활상도 이야기해 보자.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놀이를 했는지도.

76년이 지난 지금 복원된 성 주변엔 20여 채의 가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설촌 이후 지금껏 마을을 지켜온 노인들과 새로이 자리를 잡은 주민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제는 제법 따뜻해진 봄바람에 실려 모진 세월을 견디며 내뱉던 한 섞인 푸념과 무너져 버린 몸뚱어리를 힘겹게 추켜세우는 몸부림의 소리가 4월의 햇살을 뚫고 들려오는 듯하다. ‘살당보민 살아진다. 살당보민 살아진다’

제주인들에게 4월은 제주를 찾는 여느 관광객의 4월과는 다르다.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한 제주의 풍광 속엔 제주의 아픔과 슬픔이 숨겨져 있다.

낙선동 주변에는 ‘동백동산’과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인 ‘너븐숭이4.3기념관’, ‘함덕해수욕장’, ‘조천만세동산’ 등이 있으며 ‘김녕해수욕장과 만장굴’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또한 차로 5분여 떨어진 곳에는 걸어서 20여 분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마을 ’선흘리‘가 있다.

마을 안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다 보면 예쁜 카페와 음식점, 아차 하면 지나치게 되는 아기자기한 책방과 공방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제주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을 ’선흘리‘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추천해 본다.

선흘리 산책로 안내판
선흘리 산책로 안내판

[4월이면 꼭 가봐야 할 제주도 내 4.3기념관]

▷제주4.3평화공원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너븐숭이 4.3평화공원

▷낙선동 4.3성 ▷중문신사터 4.3역사관 ▷백조일손 4.3역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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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희 2024-04-01 13:26:21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가족들과 함께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