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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 거론하며 날 세우던 제주도, 이제는 ‘민생예산’ 거론
ISD 거론하며 날 세우던 제주도, 이제는 ‘민생예산’ 거론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5.23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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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사보류 파장 ②실종된 道-의회 협치
국제분쟁 우려 얘기만 나오면 화들짝 … ‘솥뚜껑’ 보고 놀란 제주도(?)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지난 19일 밤 9시 30분.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정의 올해 첫 추경예산안이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심사가 보류됐다.

도의회 차원에서는 지난 15일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송악산 사유지 매입 관련 공유재산관리계획안 심사가 보류된 데 따른 당연한 절차라는 입장이지만, 도 집행부와 의회 사이에는 추경안 심사보류에 따른 냉기류가 여전하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22일 오전, 허문정 도 기획조정실장의 관련 브리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도와 의회간 소통이 부족했다는 데는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추경예산안에 대한 심사가 보류되면서 이른바 ‘민생사업’에 대한 예산 집행이 늦어지게 됐다는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이다.

지역화폐 ‘탐나는전’ 즉시 할인 시책사업, 도내 3개 대학에 지원하기로 한 ‘천원의 아침밥’ 사업 등 사례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추경예산안 심사보류의 주된 요인이었던 송악산 사유지 매입 관련 공유재산관리계획안 심사 보류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2일 오전 허문정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이 추경예산안 심사 보류에 대한 도의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지난 22일 오전 허문정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이 추경예산안 심사 보류에 대한 도의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이에 이번 기사에서는 애초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이 불발된 후 투자자 측이 지난해 10월말 정부와 제주도에 국제투자분쟁 중재 의향서를 접수한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송악산 유원지 토지 매매를 위한 기본합의서 체결 동의안이 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에서 통과되면서 기본합의서가 체결됨에 따라 정부의 법률대리인 선정 절차는 보류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투자자 측은 지난해 10월 21일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 지정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고, ISD 절차 중 하나인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후 4개월이 경과됐기 때문에 국제소송 제기 요건도 완성된 상태인 것으로 제주도는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근거로 이번 추경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올 10월 이전에 국제투자분쟁센터에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제주도가 이번 추경안을 통해 토지 매입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다. 투자자 측이 문제를 삼고 있는 이 사안이 국제분쟁 소송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지난해말 도의회에 ‘송악산 유원지 토지 매매를 위한 기본합의서 체결 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첨부한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투자자인 중국 청도 소재 기업 신해원(유)이 송악산 유원지와 주변 지역 토지를 매입, 제주도에 유원지 조성사업 계획을 제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2020년 7월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에서 환경영향평가 동의안이 부결돼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됐고, 이후 전임 원희룡 지사는 이른바 ‘송악 선언’을 발표, 사업시행 승인과 관련한 행정절차가 전면 중단됐다.

원 전 지사의 ‘송악 선언’에는 송악산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항구적 보전을 위해 개발사업에 대한 제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같은 전임 도정의 송악산 보전 취지에 따라 지난해 7월 27일에는 이 일대가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됐고, 8월 2일에는 송악산 일대를 유원지로 지정한 도시계획시설이 실효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이 사안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통해 다뤄질 수 있는 사안인지 여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대한상사중재원은 이와 관련한 설명 자료를 통해 “우선 ISD는 투자협정상의 분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약 위반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중재 절차와는 차이가 있다”며 “ISD는 당해 투자협정의 보호 대상이 되는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 위반을 문제삼아 중재를 신청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개별 투자계약에서 분쟁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를 ISD 등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그 계약상 분쟁이 투자협정 위반에도 해당된다는 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 위반을 이유로 중재신청을 하려면 투자협정상의 투자자 보호규정, 즉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 의무와 최혜국 대우(Most Favoured Nation Treatment) 의무,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Fair and Equitable Treatment) 의무, 수용(Expropriation) 금지 등에 저촉되는 사항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제133조에 따르면 사업자측의 법률상 위반사항이 없더라도 ‘사정이 변경돼 개발행위 또는 도시계획시설 사업을 계속 시행하면 현저히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인‧허가 등의 취소, 공사의 중지, 공작물 등의 개축 또는 이전, 그 밖에 필요한 처분을 하거나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도의회에서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일련의 후속조치가 외국 투자자 뿐만 아니라 내국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법에 명시된 근거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관련 절차에 따라 애초 송악산 일대를 유원지로 지정한 근거가 됐던 도시계획시설이 실효된 상태인 데다, 특히 예래단지 사례와 달리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은 사업 시행승인을 받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투자자-국가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정도면 지난해 말부터 국제분쟁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제주도의 모습에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연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생예산’이라는 이번 추경예산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자 한다면 근거가 미약한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로 의회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와 함께 의회와 협치에 나서는 것이 훨씬 담대한 제주도정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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