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31 (금)
자식들의 꿈마저 앗아간 연좌제 “한때는 원망했지만…”
자식들의 꿈마저 앗아간 연좌제 “한때는 원망했지만…”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3.31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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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22번째 4.3 증언본풀이, 유족들의 기구한 사연 이어져
스물두번째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이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스물두번째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이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렸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75주년을 앞두고 31일 4.3평화기념관에서는 유족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는 4.3증언본풀이 마당이 펼쳐졌다.

제주4.3연구소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뒤로 올해 스물두번째를 맞이한 이날 증언본풀이의 주제는 ‘4.3 재심과 연좌제 –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

31일 4.3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연좌제 때문에 고교 시절 육군사관학교 꿈을 접어야 했던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 양성홍씨. ⓒ미디어제주
31일 4.3 증언본풀이 마당에서 연좌제 때문에 고교 시절 육군사관학교 꿈을 접어야 했던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 양성홍씨. ⓒ미디어제주

# 연좌제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꿈 접어야 했던 17세 소년

이날 본풀이 마당에서는 가장 먼저 연좌제 때문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려던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양성홍씨(76‧제주시 연동) 얘기가 소개됐다.

양씨는 아버지가 산으로 피신한 이후 어머니가 수차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거의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왔던 얘기를 한참이나 지난 후에서야 어머니에게 직접 들었던 얘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1949년 4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산에서 내려와 주정공장 터에 마련된 수용소에서 군사재판을 받고 징역 7년형이 선고된 양씨 아버지는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중 행방불명됐다.

이후 양씨는 뒤늦게 1999년 미국 비밀 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문서를 토대로 대전 골령골 대량 학살 사건이 다뤄진 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동네 선배로부터 ‘연좌제’ 때문에 군인도, 공무원도 될 수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6개월 가량 근무하다 신원조회에 걸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하던 중 시비가 붙어 싸운 일로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혼자 유치장에 갇히는 일을 겪은 뒤로 ‘죄짓고 살면 정말 큰일나겠구나’하고 정신을 차리게 됐다.

그는 “한때는 아버지 때문에 영(이렇게) 됐다는 생각에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다”면서도 “스물일곱살이라는 그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그 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생각해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1947년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강상옥씨(73)는 아버지가 마포형무소로 끌려갔다가 북한군으로 끌려간 후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귀순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얘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미디어제주
1947년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강상옥씨(73)는 아버지가 마포형무소로 끌려갔다가 북한군으로 끌려간 후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귀순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얘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미디어제주

# 인민군 끌려갔다가 육군 병장 만기제대한 아버지 사연도

1949년 6월 만삭인 어머니가 주정공장에 끌려가 있던 중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강상옥씨(74‧제주시 월평동)의 기구한 사연도 소개됐다.

당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붙잡힌 강씨 아버지는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의 ‘총알받이’로 끌려다니다가 지리산까지 들어가게 됐다.

지리산에서 1년 정도를 지내다가 전남 담양경찰서로 귀순한 강씨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해 담양에서 지내다가 육군으로 자원 입대, 4년 3개월 군 생활을 마치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후 제주로 돌아와서도 2년 남짓 숨어 지내다시피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강씨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취업을 하려다가 신원조회에 걸려 탈락하고 나서야 ‘연좌제’를 알게 됐다. 당시 경찰이었던 동창 친구로부터 ‘반공법으로 무기형 선고를 받고 형무소에서 옥사한 걸로 돼있다’는 얘기를 처음 듣게 된 것이었다.

이후 그는 “연좌제 피해가 자식들에게까지 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경찰 친구의 도움으로 병무청에서 아버지의 군 복무 기록 등을 찾아내 경찰에 제출, 경찰에서 보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아버지가 군대도 정상적으로 다녀왔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첨부하면서부터 연좌제의 굴레를 벗어나게 됐다고 한다.

강씨는 “아버지는 서른아홉살까지 객지에서 생활하면서 군 복무생활까지 마치고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제주로 돌아와서도 거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채 2년 남짓 살다가 돌아가셨다”면서 “재작년에 아버지가 재심을 받고 무죄 선고를 받은 판결문을 산소에 가서 절하면서 읽어드리고, 이렇게 친구들한테도 하지 못한 얘기를 공공장소에서 하게 돼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3.1절 집회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사위까지 연좌제 피해를 당해야 했던 얘기를 꺼낸 오희숙, 오계숙, 오기숙씨 세 자매. ⓒ미디어제주
3.1절 집회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사위까지 연좌제 피해를 당해야 했던 얘기를 꺼낸 오희숙, 오계숙, 오기숙씨 세 자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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