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7:49 (목)
“위계질서가 없는 모두가 즐기는 공간으로”
“위계질서가 없는 모두가 즐기는 공간으로”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3.3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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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9> 남광초등학교

‘솔빛쉼터’는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해서 만들어

‘대장’이 차지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

관상용 불과했던 화단도 숨 쉬는 공간으로 바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학교 공간이 바뀐다. 그에 맞게 공무원들의 사고도 바뀌고 있을까. 더디지만 바뀌고 있으리라 믿는다. 학교는 다양성을 아이들에게 안겨주어야 하고, 변화될 미래에 대한 사고를 하도록 해줘야 한다. 때문에 ‘틀에 맞춘 공간’이 아니라, ‘사고를 변하게 만드는 공간’이 필요하다.

학교 공간을 떠올려보자. 대게는 중앙현관을 두고 양옆으로 펼친 공간을 그리게 된다.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편 형상과 딱 맞다. 일(一)자 형태의 이런 공간은 나란히 교실을 두고 있다. 긴 복도가 있고, 교실은 하나의 유니트처럼 앉아 있다. 학교라면 으레 이런 공간이고, 새로 지어져도 이런 공간이길 바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굳이 들자면 공간에 대한 생각을 파괴하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며, 그런 공간에 익숙해서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슈마허는 심리학자 티렐의 생각을 빌려 ‘발산’하기를 요구한다. 티렐은 ‘수렴’과 ‘발산’을 이야기했는데, 문제해결을 끝낸 수렴만 하게 되면 사람은 산송장과 다름없다고 했다. ‘발산’은 생각의 끝이 없는 문제로, 끊임없이 사고를 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 능력을 지니게 된다. 학교 공간과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를 했지만, 학교 공간에 대한 생각도 기존 답이 정해진 ‘수렴’이 아니라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발산’의 사고가 필요하다.

남광초 중앙현관의 '솔빛쉼터'는 높낮이가 다른 계단이 있어 아이들은 공간 곳곳에서 주인이 될 수 있다. 미디어제주
남광초 중앙현관의 '솔빛쉼터'는 높낮이가 다른 계단이 있어 아이들은 공간 곳곳에서 주인이 될 수 있다. ⓒ미디어제주

남광초등학교의 공간은 기존 학교 공간과 뭘 다르게 할까라는 고민을 표출한 공간이 많다. 우선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탄생한 ‘솔빛쉼터’가 있다. 솔빛쉼터는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해서 만들었다.

네모난 틀, 갑갑한 천장. 아이들이 흔히 접하는 집이라는 공간은 이렇다. 솔빛쉼터는 이런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닌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창의적이라는 사실을 솔빛쉼터는 놓치지 않았다. 촉진자로 선정된 건축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건축 특강을 하고, 학생들은 여러 곳을 답사하며 건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다른 공간이 보였다.

솔빛쉼터는 서로 다른 높낮이를 지닌 공간이 가득하다. 위계질서라고는 없다. 공간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기에, 여느 공간처럼 ‘대장’이 차지하는 공간이 있을 수 없다. 공간은 모두가 누려야 하기에, 솔빛쉼터는 다양한 공간에서 아이들을 맞는다. 구성원들 모두가 공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고려한 점이 특징이다. 어쩌면 틀의 파괴이다. 남광초 신금이 교장도 여기에 동의한다.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이들은 아침에 오면 저녁까지 보내는 공간이 학교라는 공간이죠. 아이들이 통합적인 사고를 하도록 공간이 이뤄져야 해요. 지금의 학교는 돌봄까지 확대되고, 방과후 학교도 들어오면서 굉장히 복합적인 공간이 됐어요. 그러기에 학생들은 쉬기도 하고, 앉아서 놀 수도 있어야죠. 그래서 변화된 공간이 필요해요. 중앙현관처럼요.”

남광초 중앙현관 계단 밑 공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미디어제주
남광초 중앙현관 계단 밑 공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미디어제주

남광초의 옛 중앙현관은 학교에서 늘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높지 않은 천장과 현관 한쪽은 트로피가 가득한 장식장으로 들어차 있었다. ‘틀에 꼭 맞는’ 그런 공간은 아이들이 찾지 않고, 스쳐가는 공간일 뿐이었다. 거기를 ‘솔빛쉼터’로 꾸몄더니,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고독을 즐길 수도 있다. 학생들의 이색적인 활동도 여기서 이뤄진다.

중앙현관의 계단 밑의 공간은 더더욱 특별하다. 가로로 탁 트인 유리면을 만들어 바깥을 감상하면서 앉아서 쉴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마구 솟게 만든다. 촉진자로 활동했던 건축가 권정우 소장(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은 있을 수 있는 곳이 교실 밖에 없었죠. 그런 친구들이 학교에 와서 머물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공간의 특징은 단차를 둔 겁니다. 누군가는 꼭 좋은 자리만 차지하려는데, 힘센 아이만 아니라 모두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했죠.”

공간은 누군가의 점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솔빛쉼터는 그러지 않음을 말한다. 아울러 학교 공간은 ‘학생들의 것’만 될 수 없다. 매우 중요한 교육주체인 학부모가 있다. 그들이 학교에 와서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신금이 교장은 관상용에 불과했던 화단에도 손을 댔다. 학생들이 들어가서 식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공간은 의미가 없다고 봤고, 과감하게 손을 댔다. 바뀐 화단은 마음껏 만질 수 있고, 자연을 벗 삼아도 좋다. 이젠 학교가 학생에게 말을 걸고, 학생들이 학교에 말을 건다. 학부모도 덩달아 학교와 이야기를 한다. 학교 공간은 바로 이런 곳이다.

남광초 화단은 들어가지 못하는 관상용을 벗어나 자유롭게 드나들도로 꾸몄다. 미디어제주
남광초 화단은 들어가지 못하는 관상용을 벗어나 자유롭게 드나들도로 꾸몄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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