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5.10 총선거 반대, 민청 가입 등 이유만으로…”
“5.10 총선거 반대, 민청 가입 등 이유만으로…”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3.21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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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일반재판 4.3희생자 유족 청구 재심에서 70여 년만에 무죄 구형
재판부 “결론 명백하지만 숙고한 후에 결론 이유 남길 것” 선고 미뤄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이곳에는 4·3 당시 희생된 희생자의 신위 1만4616기가 봉안돼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 이곳에는 4·3 당시 희생된 희생자의 신위 1만4616기가 봉안돼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치러진 5.10 총선거를 반대했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과 벌금형이 선고됐던 4.3 희생자 4명에 대해 검찰이 70여 년만에 무죄를 구형했다.

2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 제4-1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유족들의 청구 재심 사건에서 검찰은 “70여 년 발생한 불행한 과거사를 바로잡고자 한다”면서 공소 사실에 대해 무죄 의견을 제시했다.

변호인측도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들은 모두 공소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면서 “유족들이 듣거나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4.3 희생자 결정 취지 등을 보면 검찰은 어떠한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찰은 무죄 구형을,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변호인측은 검찰이 의견서를 통해 ‘희생자와 유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힌 점을 들어 재판부에도 “가장 참혹했던 비극의 희생자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기 바란다”면서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유족들의 청구로 재심을 받게 된 4명의 희생자는 당시 5.10 총선거 반대 집회와 행진이 무허가였다는 이유, 민주애국청년동맹 회의에 참석했다는 등의 이유로 군법회의가 아닌 일반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례였다.

당시 29세였던 故 강기옥씨(애월면 곽지리)는 민주애국청년동맹 농민위원회 회원으로, 무허가 집회 및 백지투표 날인 등 혐의로 군정청 법령 제19호 위반 등이 적용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또 故 박정생씨(당시 34세, 한림면 명월리)는 당시 민주애국청년동맹 위원장으로서 민청 가입 사실과 백지투표 날인, 집회 참가 등을 이유로 군정청 법령 19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민청 농민위원회 회원이었던 故 김일현씨(당시 26세, 제주읍 이호리)는 5.10선거 반대 무허가 집회 및 행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내란 방조죄 혐의가 적용된 징역 3년이 선고됐고, 종달리 청년들과 함께 무허가 집회에 참석해 집회를 단속하던 경관과 충돌을 빚었던 故 윤인관씨(당시 20세, 구좌면 종달리)는 벌금 2000원이 선고됐다.

故 김일현씨의 손주며느리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동네 할머니들 말씀을 들어보면 할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를 도와서 밭일만 하시던 분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말을 잘하거나 똑똑하지도 않았다”면서 “할아버지께서 정부가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유죄가 선고됐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당시 이호리 청년들이 사건이 터졌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산으로 피신하라는 얘기를 듣고 본인도 알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다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시할아버지가 억울하게 옥고를 치렀던 사연을 전했다.

故 박정생씨의 장남인 박학용씨도 “아버지에 대한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4.3에 연루돼 남들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도 못하고 가족들과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아버지는 생전에 아무런 잘못이 없었는데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붙잡혀가 형무소 생활을 한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시다가 65세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다”면서 “이번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다면 자식으로서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당시 벌금 2000원이 선고된 故 윤인관씨 사건에 대해 “1947년 6월 6일 종달리 청년들이 회의를 가진 이유는 당시 미군정이 민애청을 불법단체로 규정한 데 데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경찰이 단속에 나서면서 청년들과 충돌이 빚어지게 된 것”이라면서 “70여 명이 집회에 참여했는데 40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고 10여 명은 징역형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 대표는 “고인의 형량은 벌금 2000원이지만, 당시 종달리에서도 유력자였던 이 집안은 이 사건으로 폭삭 망하는 바람에 윤씨 집안은 종달리에서 거처도 없는 신세가 됐다”면서 윤씨 가족의 억울한 사연을 대신 호소했다.

이처럼 유족들과 관계자의 얘기를 다 들은 후 재판장인 강건 부장판사는 자신이 처음 4.3 재심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따로 선고기일을 잡아 선고를 하겠다”면서 선고를 다음달 4일로 미뤘다.

강 부장판사는 “결론은 명백하지만, 결론에 이르는 이유에 대해 숙고를 한 후에 판결을 남기고자 한다”면서 “유족들께서는 한 번 더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불편이 있겠지만, 재판장으로서 고심을 담은 판결문을 남기려는 것인 만큼 혜량해주시기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이에 따라 이들 4명에 대한 재심 선고 결과는 4월 4일 오전 10시 같은 법정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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