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21:23 (목)
하나 된 목소리를 위해
하나 된 목소리를 위해
  • 정석왕
  • 승인 2023.03.1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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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톡(talk talk)]<29>제주장애인요양원 정석왕 원장

2019년 3월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는 올해 2월 『2023년 전국 시설장 대회 및 정기총회』를 제주에서 개최하였다. 우리 협회는 전국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900여 개소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이며 장애인 거주시설은 장애인들의 거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날 행사는 장애인 거주시설 미래 방향과 현재 주요 이슈인 탈시설 등의 현안에 대한 하나 된 목소리로 대응하고자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통령 비서실에 제출하는 뜻깊은 행사로 마무리가 되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장애인에게 왜 필요한지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시설은 폐쇄적인 곳’, ‘인권침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고령・발달장애인 등에게 최대한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전문적인 거주 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적 특성을 보이는 중증・발달장애인은 행동 장애가 심해서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돌보기 매우 어렵다. 가족이 집에서 매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 본인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랑으로 돌보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장애인복지시설 입소를 통해 가족 대신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을 보호하고 돌보는 곳이 장애인 거주시설 역할이다. 시설에 입소했다고 해서 사회와 격리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퇴소가 가능하다. 시설에서 거주할 때도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보통의 삶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 정부 브리핑이나 언론, 방송을 통해 장애인 탈시설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노출되고 있다. 먼저 ‘탈시설’ 용어 문제부터 언급하고 싶다. ‘시설을 탈피해야 한다’ 혹은 ‘탈출해야 한다’는 의미의 ‘탈시설’은 시설을 전면 부정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장애인의 선택에 기반 한 다양한 거주 공간에서 살 권리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개념으로 어떠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시설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가정 내 돌봄의 어려움이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시설은 희망이다. 그런데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지금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장애인에게 적용한다는 강제적인 단어다.

시설은 합법적인 기관이다. 또한 대한민국이 사회 복지 인프라와 제도가 열악할 때, 장애인에게 최후의 마지노선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한데 탈시설 논란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시설의 공로를 부정하고 시설에서 종사했던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특히 일부 단체에선 시설을 감옥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시설에 대한 접근법이 틀렸다. 과거 한국 사회에선 마을 공동체가 장애인·노인·아동을 돌봤다. 대가족 중심 사회였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가족 구성은 핵가족화됐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돌보는 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주로 부모형제나 소수의 가족이 모든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장애인에게 무조건 시설을 선택하라는 것도 아니다.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면 집 등 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면 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선택에 따라 경증 장애인의 경우는 집에서 중증 및 발달장애인은 시설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가정과 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 중에 장애인이 선택하면 된다는 의미다. 오히려 시설 거주 장애인 중 경증장애인의 퇴소가 증가하면 그 자리에 시설 이용을 희망하는 중증・고령・발달장애인 지원을 통해 이들이 넋 놓고 시설 입소를 기다리는 불상사도 해결할 수 있다.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시설 입장에서 꼭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다. 종사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표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종사자 1명당 평균 6명의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이들 종사자가 지원하는 장애인 지원 예산은 어떨까? 중증장애인 기준 시 설 이용장애인 1인당 연간 약 4,400만원선 인데 비해 재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1인당 최대 1억 2,000만원에 가깝다. 시설은 국가가 해야 할 복지 서비스를 대신해 오고 있다. 한데 예산지원은 늘 부족하다.

시설에서만 인권 문제가 발생하는지 반문해 본다. 그렇다면 시설이 없어지면 모든 인권 문제가 없어지는가? 일반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매번 발생한다. 사회라면 어느 집단에서든 인권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시설이니까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 자체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목소리가 큰 단체에 휩쓸려 기존의 사회 복지 서비스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장애인시설은 과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설 입소자를 위한 서비스를 지속하는 입장이다. 시설의 현실을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처럼 인권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단지 시설 자체에 있는지 인력 및 예산 지원 등 지원구조에서 기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장애 당사자와 가족, 시설 및 학계 등과 협의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정성 있고 성숙한 자세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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