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6:01 (목)
“4.3 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못한 분들 구제절차 마련해야”
“4.3 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못한 분들 구제절차 마련해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2.07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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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장찬수 부장판사, 3년간 4.3 직권재심 전담해온 소회 피력
“재심 절차는 서로 다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아니다” 강조하기도
제주지방법원 장찬수 부장판사가 7일 오전 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3년간 4.3 직권재심 재판부를 이끌어오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지방법원 장찬수 부장판사가 7일 오전 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3년간 4.3 직권재심 재판부를 이끌어오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지방법원에서 제주4.3 직권재심 사건을 전담해온 장찬수 부장판사가 개정된 4.3특별법의 특별재심 절차 관련 조항에 대한 보완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군사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른 수형인 희생자들과 달리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에 대한 규정이 명확히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특히 장찬수 부장판사는 “재심에 관한 절차는 서로 다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며 “오로지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가 있는지, 혹은 개정된 4.3특별법의 취지대로 희생자 결정이 이뤄지면 재심개시 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법대로 판단하는 절차”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장 부장판사는 7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4.3 재심사건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묻는 질문에 우선 이같은 답변을 내놓은 뒤 “제주4.3사건 자체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이념의 대립이라는 문제까지 겹쳐 이념의 관점에서 제주4.3사건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어, 이를 극복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법대로만 판단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2021년 3월 16일을 꼽았다.

이날은 20건의 재심 사건이 다뤄지면서 모두 300명이 넘는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 사건이 20분 단위로 본안기일을 나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재판이 이어진 날이었다.

그는 “사건의 규모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서 법적으로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풀어줬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300명의 희생자 분들에 대한 양형이유를 제각각 다르게 쓴 이유를 묻자 “그날 오신 분들도 울컥했지만 저도 마찬가지였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소리 내서 울 순 없지 않느냐”고 자신도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그는 “사건마다 피해자가 유족이 다 다르지 않느냐. 다른 말로 소회를 표현하려다 보니까 소설 ‘순이삼촌’의 문장도 나오고, 제주어를 연구하는 김순자 센터장과 그 분 책에 나오는 문구, 제주가 좋아서 정착하신 분이 쓴 책 속의 문장까지 각 사건마다 소회와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까 조금씩 달라지게 된 것 같다”고 그날 판결문에 담긴 양형 이유 문장을 쓰기까지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4.3특별법에 명시된 재심 관련 조항 중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짚어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희생자 결정을 받지 못한 분들에 관한 재심 절차도 개정된 4.3특별법의 취지에 따른다면 제주지법에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다소 모호한 규정 때문에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직권재심에 관한 규정이 명시적으로 도입돼 있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규정일 뿐”이라면서 “이 부분에 관해서도 명시적인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을 따지지 않고 직권재심과 청구재심에 관한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조문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직권재심은 청구재심을 막는 취지가 아니라 희생자와 유족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국가 의무로 도입한 절차”라며 “따라서 희생자와 유족은 재심 절차에 있어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직권재심에 있어 명확한 권리구제의 기준과 그 절차 도입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이러한 기준과 절차에 관해 희생자나 유족에게 자유롭게 그 정보를 열람하고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더 나아가서는 유족이 없어 희생자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수형인들에 대한 직권재심에 있어서도 이같은 기준과 절차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유족들이 없어서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분들은 더 참혹하게 당한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어떻게 권리구제 절차를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입법 필요성을 거듭 제안했다.

4.3 직권재심 사건을 다루는 동안 도움을 받았던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처음 부임하면서 4.3 재심사건에 관한 업무를 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저 스스로 제죽4.3사건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도 부족한 상태였기에, 부임하고 난 후 300명이 넘는 군사재판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청구서가 접수됐을 때는 너무 막막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법정에서 직접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면서 재판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관련 자료를 집필한 이들과 유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가장 먼저 본 책이 정부에서 발간된 진상보고서였고, 양조훈 전 4.3평화재단 이사장의 ‘4.3의 진실을 찾아서’였다고 소개한 그는 “그 다음에 가장 많이 본 책이 김종민 기자가 쓴 ‘4.3은 말한다’였다. 그 책이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 분들 한 분, 한 분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다보면 ‘내가 과연 저 유족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오랫동안 소외되고 핍박을 받았던 세월을 나는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앞으로도 군사재판과 일반재판 수형인 3000여 명이 남았는데, 그 업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까지 해온 재판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임 재판장께서 더 잘 이끌어나가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재판 중 유족들에게 일일이 시간 제한도 없이 발언 기회를 준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4.3 재심사건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재판이 빨리 끝날 수밖에 없다”면서 “그나마 유족들의 얘기를 역사적인 기록물로라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석에서조차도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살아오신 유족 분들”이라며 “성장해서 자녀를 낳고 손자‧손녀가지 보셨는데도 그동안 숨기고 살아오신 분들이 재판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말씀하시면 그 한이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4.3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제주에서 3년 살면서도 제주 말에는 능하지 않다”면서 서툰 제주어로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서귀포문화원에서 매일 한 장씩 찢는 달력에 제주어가 한 문장씩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비매품이라는 그 책을 하나 달라고 졸라서 하나씩 읽었다”면서 하루 한 문장씩 나오는 단어 중에서 추려냈다고 제주어 인사말을 준비하기까지 과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마지막으로 제주도민들과 4.3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남긴 인사말 전문이다.

“제주 와서 동네마다 ᄀᆞᇀ은 날 식게칩이 하다(동네마다 같은 날 제삿집이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희생자들이 아이 야가기에 태와 보난 양 둑지가 도끈ᄒᆞ연(자식 목마 태워보니 양 어깨가 묵직해서)도 못 느껴보고, 애기 배불민 어멍도 배분다는데(애기가 배부르면 어머니도 배부르게 된다는데) 그러지 못해 그 설룬 아기 걸어난 질 보난 설루와 벤(서럽고 불쌍한 아기 걸었던 길을 보니 서러워 뵌)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어둑곡 ᄇᆞᆨ곡 ᄒᆞᆫ(어둡고 밝고 한) 날도 있었고, 들은 말 들은 디 버리곡 본 말 본 디 버리며(들은 말은 들은 데서 버리고 본 말은 본 데서 버리고) 가심 아픈 것도 용서헤사 시처진다(가슴 아픈 것도 용서해야 씻어진다)는 말로 살아낸 줄 알고 있습니다. ᄇᆞ름은 ᄂᆞ물고장 흥글 것 아니우꽈(바람은 유채꽃을 흔들 것 아닌가요). 부디 어떵ᄒᆞ연 ᄀᆞᇀ은 일 ᄒᆞ멍 가르각석인고(어떻게 해서 같은 일 하면서 제각각인가)라는 말 듣지 않도록 느 울엉 나 울엉 ᄆᆞᆫ 울엉(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모두를 위하여) ᄒᆞᆫ디 모영 ᄀᆞ치 가 보게(함께 모여서 같이 갑시다). 여러분 폭삭 속았수다(무척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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