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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제주 습지 이야기
화산섬 제주 습지 이야기
  • 고제량 (사)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
  • 승인 2023.02.0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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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세계 습지의 날 기고문

제주는 화산섬이다. 180만 년 전부터 2만5000년까지 수 없는 화산활동에 의하여 섬이 하나 우뚝 쌓였다. 초기에는 수성화산활동에 의하여 가늘고 세밀한 화산재가 쌓이기 시작했고, 중기 이후에는 육상 화산활동으로 까만 현무암에서부터 화산 송이(스코리아)까지 다양한 화산쇄설물로 다채로운 제주 자연환경이 형성되었다. 한라산, 오름, 곶자왈, 습지, 용암동굴, 해변, 하천, 뱅듸 등으로 제주 자연생태를 구분하여 그 특성과 가치들을 살펴보면 한반도와는 사뭇 다르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지질적 특성에 생물들이 바람과 더불어 정착한 모습은 기기묘묘하다. 그 기기묘묘한 가치들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 람사르협약이 인증한 람사르습지 5곳과 람사르습지도시가 2개 지역으로 인증되게 했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보편 탁월한 가치를 가졌다고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까? 이름부터 특별한 제주 생태계는 신기하다. 오름은 제주도 전반에 걸쳐 올록볼록 형성된 화산체를 이루며 타 지역에서는 동산이라고 표현함직한 곳이다. 곶자왈이란 용암이 흐르며 굳어 깨진 돌무더기 위에 형성된 숲과 주변의 가시덤불과 초지대, 억새로 어지러운 지질지대를 말한다. 뱅듸란 너른 들판을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적 가치를 자랑스러워한다. 그 자연을 지키려 얼마나 애쓰느냐에 대한 것은 다를지 모르지만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누구나 차고 넘친다. 이러한 제주의 자연적 가치는 2012년부터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로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제주를 꼽고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태어나고 자란 곳이 제주여서 많이 자랑스럽다. 이곳에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한다.

제주 자연생태적 구분에서 습지는 화산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5곳의 람사르습지 형성 특징을 살펴보면 오름 분화구에 습지가 형성된다거나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들판에 용암 판이 물그릇 역할을 하며 습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용암이 굳어 깨진 돌무더기 위에 형성된 곶자왈에도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곳에는 용암판이 곶자왈의 기저에 깔리면서 습지를 만들었다.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오름습지, 곶자왈습지, 뱅듸습지라고 제주만의 습지를 달리 이름 지어주고 싶다. 제주 습지 리스트 중 총 322개의 내륙습지는 한라산 정상에 백록담이라는 습지로 시작하여 한라산 중턱의 오름 습지들과 중산간 들판에 형성된 뱅듸 습지, 곶자왈 숲에 형성된 곶자왈 습지, 그리고 약 21개소의 해변에 형성된 연안습지까지 습지가 발달한 덕분에 제주에는 지하수가 많이 함양되고 있는 것이다. 생수 중에 최고라는 삼다수가 전국에 시판되면서 국민 다수가 제주의 물을 마시고 있다. 제주 습지의 공급서비스를 전 국민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제주 습지 보전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섬의 물이 대륙에 팔리는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섬은 물이 생명인데 지하수 저장량보다 뽑아 올리는 양이 더 많아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진단은 오래전부터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름 위에 형성된 습지로 람사르습지에 등재된 습지는 물영아리습지와 물장오리습지이다. 물영아리습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188번지에 위치한 물영아리오름 위에 있다. 산정화구호를 중심으로 물영아리오름 화산체를 포함하여 보호지역이 설정되어 면적 0.309km²인 타원형의 습지보호지역이다. 물영아리오름은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해발 300~400m 사이에 위치한다. 화산체로서는 전반적으로 조면현무암과 송이(스코리아) 퇴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화구 내부에는 사면에서 풍화된 미립질 물질이 바닥에 깔려 물이 고이게 된 습지이다. 이렇게 고인 물을 수망리 사람들은 소나 말에게 먹일 수 있는 중요한 습지였다. 물영아리오름의 지명 풀이를 살펴보면, ‘물’은 오름 정상의 습지와 관련이 있으나 ‘영아리’의 의미는 확실하게 풀이가 되지는 않는다. 분화구 내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산림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낙엽수림과 상록수림이 혼재되어있고 산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참식나무 등이 많고 인공림으로 삼나무도 볼 수 있다. 분화구 중심의 습지식물로는 마름, 바늘골, 좀어리연꽃, 송이고랭이, 택사, 올챙이고랭이 등이 우점하고 있다. 물영아리 습지에는 멸종위기 2급인 으름난초와 영아리난초, 백운란을 비롯하여 물방개, 두점박이사슴벌레, 애기뿔소똥구리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습지이다.

물장오리오름 습지
물장오리오름 습지

물장오리오름습지 역시 오름 분화구에 형성된 습지이며 물영아리오름보다 해발 높이가 높은 80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 산78번지에 소재하며 면적은 0.628km²이다. 물장오리오름 역시 조면현무암과 송이(스코리아)로 형성된 오름이며, 분화구에 미립자 화산쇄설물이 물이 고이기 쉽도록 바닥을 조밀하게 메꾸어 습지가 형성된 곳이다. 습지식물로는 송이고랭이 군락, 골풀 군락, 갈대 군락, 큰고랭이 군락, 마름 군락 등이 우점하며, 오름 사면에는 졸참나무, 산딸나무, 개서어나무, 당단풍, 곰의말채 등 낙엽수가 많이 출현한다. 멸종위기 2급 식물인 두잎약난초가 발견되며, 애기어리연과 금새우난초 등을 볼 수 있다. 물장오리오름 습지 역시 물방개와 두점박이사슴벌레가 확인된다. ‘물’은 분화구의 습지에서 유래한 것임에 틀림이 없겠고 ‘장오리’의 뜻은 명확히 풀이된 바가 없다.

숨은물뱅듸 습지
숨은물뱅듸 습지

위 두 오름습지와 다르게 너른 들판에 형성된 1100고지 습지와 숨은물뱅듸 습지는 각각 해발 약 1100m와 1000m에 형성된 습지이다. 1100고지 습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에서부터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까지 여러 지역에 걸쳐 넓게 형성된 습지이며 면적은 0.126km² 이다. 숨은물뱅듸는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1.175km²로 5개 습지 중 가장 면적이 넓다. 숨은물뱅듸는 뱅듸 습지의 중요한 특징 화산이류(라하르)로 형성되 습지이다. 1100고지 습지와 숨은물뱅듸 습지의 생물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보호종으로는 자주땅귀개라는 식충식물이 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 두견이를 비롯하여 약 490종 이상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1100고지 습지는 해발높이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고 숨은물뱅듸라는 이름은 너른 들판에 도톰하게 형성된 습지임을 의미한다. 뱅듸라는 지명은 너른 들판을 이르는 제주 말이다. 숨어있는 물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하나 그 뜻은 명확하지 않다. 숨은물뱅듸습지는 과거에 애월읍 사람들이 논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소와 말에게 물을 먹이는 곳으로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멧돼지, 들소, 야생말, 노루 등이 와서 물을 먹는 곳이다.

동백동산은 제주에서 네번째로 람사르습지로 등재된 곳이다. 물영아리오름습지가 2006년 11월에, 물장오리습지가 2008년 10월에, 1100고지 습지가 2009년에 등재된 데 이어 동백동산습지는 2011년 3월, 숨은물뱅듸습지는 2015년 5월에 등재되었다.

동백동산 습지
동백동산 습지

동백동산습지는 곶자왈습지라고 제주에서 새롭게 습지분류를 할 수 있는 특별한 지질적 특징과 숲의 바닥에 형성된 신비로운 습지이다. 해발 약 100~200m 사이에 형성된 상록수림 곶자왈 기저에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흘러 용암동굴과 용암판을 이루며 물이 고일 수 있는 습지이다. 용암이 널찍하게 굳어진 지질적 특징이 물그릇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백동산습지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12번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0.59km²이다.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붉가시나무가 우점을 하고 있으며, 황칠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샌달나무, 까마귀쪽나무 등 약100여종의 나무와 40여종의 덩굴식물, 40여 종의 양치식물 등과 더불어 식물 350여종, 곤충과 양서파충류를 포함하는 동물 1100여종 등 1500여 종 이상의 생물다양성을 보이는 곶자왈이다. 환경부 멸종위기 생물로는 약 15종이 있으며, 제주비바리뱀, 참개구리, 물방개, 두점박이사슴벌레, 물장군, 팔색조, 긴꼬리딱새, 붉은배새매, 솔잎란, 대흥란, 개가시나무, 제주고사리삼 등이 서식한다. 제주고사리삼은 전 세계에서 제주 동북부 곶자왈에서 발견되는 1속1종의 특산종으로 동백동산과 주변 곶자왈에 대부분 서식하는 귀한 종이다. 선흘1리 사람들은 1970년대 초반까지는 동백동산 습지에서 물을 길어다 생활했으며 목축에서도 동백동산의 습지가 유용하게 쓰였다. 마을 목장으로 일부가 활용되었었다. 나무 역시 지역 사람들이 숯을 구워 팔아 경제활동에 쓰였으며, 동백동산에서 노루 등 동물을 잡아 식생활을 이어갔다. 1971년도에 제주도기념물 10호가 되면서 더 이상 나무를 베거나 동물을 잡지는 않았고,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물을 길어가 먹지도 않았다. 그 후 약 40여년 간 마을과 곶자왈은 각자의 시간으로 흐르다가 2010년 습지보호지역이 되면서 문화서비스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제주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5개의 습지 외에 중요한 322개의 내륙습지와 21개의 연안습지를 조사하여 보전관리하고 있다. 물론 보호지역이 아니면 법적 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나 제주특별자치도 습지보전계획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다. 21개의 제주도 연안습지 리스트 중 현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는 못했으나 제주특별법으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보전관리되고 있다. 그 중 철새들의 중요한 서식처인 하도리~종달리~오조리~성산읍으로 이어지는 곳은 수차례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시도했으나 주민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얼마 전 봄에는 오조리마을회가 해양수산부 담당자를 모시고 지역 환경단체와 오조리 철새도래지 보전방안에 대해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이 제주에서는 습지보전의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한때는 직접적인 먹는 물 공급지로서 지역 공동체가 습지 보전에 노력을 보이던 역사가 있기도 했고, 목축문화가 큰 지역의 특성상 곳곳에 형성된 습지를 중요시해 마을 전체가 관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지하수 개발과 상수도 공급으로 자연 습지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못하여 도로를 내면서 매립되기도 하고 개발 과정에서 유실되기도 한다. 많은 습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하여 가뭄의 길이가 길어 습지로서 기능을 잃은 곳도 많다. 2011년 3월 동백동산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재되면서 환경부 국립습지센터 정책인 ‘습지보호지역 주민역량강화사업’으로 인하여 제주도에서는 동백동산습지 주변 선흘1리 마을에서부터 마을 공동체의 습지 보전 활동이 시작되었다. 주민 스스로 습지를 모니터링하고 생태계 조사를 통해 변화를 기록해 나가는가 하면, 생태관광이나 생태교육 또는 체험을 통해 문화서비스를 발굴하여 주민참여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실천해 왔다. 비슷한 시기에 물영아리오름 습지가 있는 수망리도 같은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제주도에서는 두 지역 습지가 지역 공동체에 의하여 보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현명한 이용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로 제주시 조천읍이 2018년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되었으며, 서귀포시 남원읍이 올 11월 제14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되었다. 람사르습지도시란 람사르습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민참여를 통해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도시에 협약이 인증하는 제도로 2018년 첫 7개국 18개 도시가 인증되었고, 올해 14차 총회에서 추가 인증되어 현재 18개국 43개 도시가 람사르습지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들은 주민 주도로 습지 교육과 교류를 통해 국가경계를 넘어서서 협력을 통해 습지를 보전해 나갈 것이다.

제주도에서 물영아리습지, 동백동산습지와 주변 공동체는 과거에 생활과 밀접하게 습지를 활용하여 생활을 이어왔었고, 현재는 휴양과 치유, 생태관광, 생태교육 등 문화서비스를 통해 보전에 참여하고 현명한 이용으로 지역 경제 향상과 공동체 활성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생태관광 프로그램과 생태교육을 준비하여 대안 관광과 생태교육을 이루어 가는 한편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해설가가 되어 습지 보전을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규제를 통한 보전은 개인의 피해를 동반하며 보전에 있어 주민들의 반발을 많이 받았다. 이제 주민 참여를 통한 습지와 지역 공동체가 선순환 고리로 엮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발굴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 정책의 하나로 람사르습지도시라는 람사르협약의 정책은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자본의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얽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 공동체를 습지 보전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다수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논의가 자주 이루어진다면 안 될 일도 아니다. 물론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고 공정한 사회여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람사르습지도시 정책이 만들어지는 데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수없는 소용돌이 속에 상처도 많지만 꿋꿋한 뚝심으로 앞으로도 잘 운영해 나가볼 생각이다.

제주의 습지는 작고 앙증맞다. 한반도의 넓고 깊은 습지에 비하면 작고 볼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화산섬의 특별한 습지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사람들의 생명수였던 물통에서부터 용천수, 지하수까지 다양한 물 이용 역사와 마을마다 문화적 기억과 흔적이 있는 한 미래까지 돈독한 습지와의 인연을 이으며 물과 공동체의 공존을 약속할 수 있을 것 같다.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2023년 습지의 날 슬로건은 ‘지금은 습지를 복원할 시간’이다. 더 이상 습지 훼손을 막고 그동안 훼손된 습지를 복원 시켜야할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지구 습지 35% 이상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개발과 도시팽창 그리고 기후 위기로 육화 속도가 빨라져 많은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회복의 시간이다. 지구 면적의 6%가 습지이고 지구 생명 40% 이상이 그 습지에 기대어 살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습지에서 물과 식량을 얻고, 습지가 조절해주는 안전한 환경에 살고 있으며, 수많은 생물다양성 안에서 문화적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훼손의 행동을 멈추고 습지 회복의 시간을 가지고 우리들 마음도 습지처럼 촉촉하기를 바란다.

(이 원고의 일부분은 2022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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