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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료를 확인하자고?” 4.3 재심 재판부가 격분한 이유
“없는 자료를 확인하자고?” 4.3 재심 재판부가 격분한 이유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1.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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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 19일 재심개시 결정문 통해 검찰 작심 비판
“피고인만 적법한 절차에 따른 수사 진행됐다고 가정할 수 있나?” 성토
지난해 4월 2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정부의 추념식 행사를 앞두고 희생자 가족을 찾은 유족들이 다녀가면서 각명비 앞에 놓아둔 국화꽃이 드문드문 보인다. /미디어제주 자료사진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해 4월 2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정부의 추념식 행사를 앞두고 희생자 가족을 찾은 유족들이 다녀가면서 각명비 앞에 놓아둔 국화꽃이 드문드문 보인다. /미디어제주 자료사진의 발길이 이어졌다.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후 지난 2017년 숨진 고(故) 한상용 씨에 대한 재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재심 개시 결정을 하면서 이례적으로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담당 검사가 “지금까지 소명자료만으로는 피고인에 대해 재심 사유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한 부분을 호되게 질타한 것이다.

제주지방법원 형사제4-1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9일 고(故) 한상용 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검찰이 추가 보증인 조사 또는 사실조회 등을 통해 재심개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재심개시 결정문에 적시된 내용에 따르면 고(故) 한씨는 1927년생으로, 1950년 2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군정법령 제19호 위반 및 왕래 방해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한씨는 고문 후유증 때문에 별다른 직업도 갖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지난 2017년 숨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씨의 경우 지금까지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피해자이기 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을 청구하게 된 것이었다.

고인이 된 한씨의 아들 한 모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평소 아버지 한씨는 4.3 당시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다가도 술에 취하거나 하면 4.3 때 경찰에 끌려가 고문당했던 일을 얘기했다고 한다.

끌려간 사람들 중 앞서 취조를 받던 사람들이 제대로 말을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몽둥이나 각목 등으로 사정없이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심지어 죽어 트럭에 실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묻는 말에 순순히 응하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한씨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 후유증으로 6년 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좌결신경통, 허리통증, 오른쪽 대퇴골 무혈성 괴사 등으로 고생하느라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희생자 신고를 하지 못한 이유도 장남 역할을 하고 있는 아들 한씨가 타 지역에 살면서 생계를 꾸리느라 때를 놓친 탓이라는 얘기도 전했다.

여기에다 자신 뿐만 아니라 누나도 연좌제 때문에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지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도 못하고 경찰과 검찰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찰을 당해 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아들 한씨의 진술 내용만으로는 재심청구 사유로 부족하다는 취지의 검찰 주장에 대해 “전문법칙은 공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제출하는 유죄의 증거에 대해 적용되는 증거법칙”이라면서 “이 사건과 간은 재심청구에 있어 재심청구인의 진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검찰의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이어 재판부는 “재심청구인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이를 전해들은 진술이라고 해서 피고인의 직접 진술한 경우와 달리 차별을 두거나 할 아무런 근거나 이유도 없으며, 전문진술이라고 해서 그 신빙성까지 근거 없이 부인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고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검찰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재판부는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당시 형을 선고받고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경찰의 가혹한 고문으로 허위 사실을 시인했다는 점, 재판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한 허위사실 자백을 진술했음에도 고문 사실이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감형되거나 무죄 선고를 받은 예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당시는 극심한 이념 대립에 따른 혼란기로 영장에 의하지 않은 불법연행이나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등이 다반사였음을 알 수 있다”면서 “피고인의 경우에만 적법한 절차에 따른 수사가 진행됐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경험칙에 반한다”고 검찰 측의 주장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아울러 “재심개시 요건은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는 검사의 주장은 수긍할 수 있다”면서도 “피고인의 경우처럼 70년이 넘는 과거의 일에 대해 재심사유를 엄격하게 따질 경우 자칫 재심 제도의 필요성이나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검사의 주장은 4.3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은 외면한 채 평상시와 같은 상황이었음을 전제하고 재심사유가 있는지를 따지자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보증인 진술과 사실조회 필요성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보증인 진술은 통상 유족의 진술을 통해 들은 것에 불과해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더구나 사실조사반에 대한 사실조회도 희생자 신고가 있는 경우 도내 행정기관이 구역별로 담당해 확인하는 절차로 통상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희생자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사실을 확인할 자료가 현재까지 없음이 명백하다”고 지적, “없는 자료를 확인하자는 검사의 주장은 무엇을 확인하자는 것인지, 혹은 사실조사반에 의한 확인 절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주장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검찰 측을 나무랐다.

특히 재판부는 “검사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려고 했다면 굳이 사실조회가 아니더라도 이 사건 재심청구 이후 담당 행정기관에 전화 통화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재심청구 사유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검찰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한편 고인이 된 한상용씨의 경우 국가보안법 및 군정법령 제19호 위반 등 혐의 외에 강도살인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아들 한 모씨는 빠른 시일 내에 희생자 신고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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