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외삼촌 두 분, 이제서야…”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외삼촌 두 분, 이제서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01.10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0‧21차 4.3 직권재심, 행불‧사망 수형인 60명 모두 ‘무죄’
연좌제 때문에 군인‧공무원 시험 볼 수 없었던 유족들 사연도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불인 묘역.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4.3 당시 행방불명된 외삼촌 이름을 말해 줄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야…”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1952년에 태어난 김군선씨(71)는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두 분의 외삼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들아, 분명히 기억해 둬라. 외삼촌 2명이 있는데 4.3 때 행불됐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남은 자손은 김씨 뿐이었다. 그는 4.3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고, 기억도 없이 살다가 작년 10월 희생자 유족으로 전화를 받고서야 외삼촌 두 분의 이름을 알게 됐다고 한다.

“72년 평생을 사는 동안 처음 법정에 와봤다”는 그는 “외삼촌 두 분의 이름을…”까지 얘기하다가 “목이 메어서 말 못하겠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10일 오전 제20차, 제21차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직권재심이 열린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이날 법정에서는 4.3 당시 대전형무소로,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되거나 병들어 죽은 희생자들의 조카, 동생 등 유족들의 희미한 기억 속의 사연과 그들이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가 소개됐다.

다른 한 유족은 고등학교 때 면접을 보던 중 할머니하고만 살고 있다는 이유로 회비를 낼 수 있겠느냐는 얘기와 함께 심지어 ‘폭도의 자식’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는 “육사, 공군, 공무원 같은 일을 하고 싶어도 원서를 낼 수 없었다. 앞으로는 이런 세상이 없어야 한다”고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4.3 당시 숨진 큰아버지의 조카 이영진씨 사연도 비슷했다.

이씨는 “살아오면서 큰아버지 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도 육사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안됐다”면서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사회적으로 4.3에 대해 다시 한 번 무죄가 선고돼 기쁘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직권재심에서는 1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11명과 2차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49명까지 합쳐 모두 60명에 대해 70여 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한편 4.3 직권재심 재판을 맡아온 장찬수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도민들 뿐만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힘을 모아 법이 개정돼 직권재심 조항까지 도입됐다”면서 “다만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 부장판사는 “법원은 억울한 게 있다면 억울한 것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한결같을 것”이라고 그동안 4.3 직권재심을 맡아온 자신의 소회를 피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