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4.3 버티고 제주 일군 여성들, 그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다
4.3 버티고 제주 일군 여성들, 그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2.12.21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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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가족연구원, 근현대 제주여성의 구술 자료 내놔
4.3 이후 여성의 노동과 삶 조명 ... 차별 심화와 교육단절도
"제주여성들, 아픔에 굴하지 않아 ... 역사가 말하는 교훈"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1947년 3.1절 기념 행사에서의 경찰 발포로 민간인이 숨진 사건에서 시작된 제주4.3은 이후 제주에 피바람을 몰고왔다.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숨을 거둔 이들만 당시 제주인구의 10분의 1 이상에 달할 정도다.

이와 같은 피바람 속에서 제주사회는 무너져 내리는 듯 했지만, 혹독한 시기를 버텨내며 제주사회를 재건한 이들이 있다. 서로를 도와가며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의 재건을 위해 노력을 해온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여성’이다. 4.3의 과정 속에서 많은 남성들이 희생되자 그 빈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며 그들이 살던 마을과 이 섬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주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상당했다. 4.3으로 인해 차별이 공고화되고 여성들의 교육이 단절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4.3 이후 제주에서 살아갔던 이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다시 한 번 조명했다. 해방 이후 제주여성사 정립 및 젠더 관점의 4․3연구의 일환으로 ‘근현대 제주여성구술사 Ⅰ - 4.3 이후 제주 여성의 노동과 삶’ 보고서를 발간, 4.3 이후 제주에서 살아갔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그려낸 것이다.

/자료=제주여성가족연구원.
근현대 제주여성구술사. /자료=제주여성가족연구원.

이번 연구는 4․3 이후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주 여성의 노동과 삶을 살펴보고 경제적, 사회적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과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4․3 당시 아동 및 청소년에서 지역개발기에 주요 노동 주체로 성장한 12명의 여성구술자로부터 당시의 삶에 대해 증언을 받았다.

◇끌려가버린 남성들 … 재건, 여성들의 몫이이었지만 어려움도

이 보고서에 따르면 4.3 발발 이후 제주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중 대다수인 79%가 남성이며, 어린이와 노약자 등은 11.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내 공동체 재건에 살아남은 여성들의 역할이 주요했다. 특히 한국전쟁이 더해지면서 남성의 부재가 더욱 심화되자 경제 주체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더욱 강조됐다. 4.3이후 제주 재건에서 실질적인 주체 역할을 담당했다.

여성들은 특히 중산간의 불타버린 마을 등에서 직접 집을 짓고 밭을 일구는 것부터 시작해 마을 안팎을 연결하는 길을 보수하고, 기반시설 등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초등학교 건물 보수 및 교실 신축을 위해 자금을 내기도 하고, 마을 공동목장을 복원하며, 농작물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4.3과정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성담을 쌓는다거나 보초를 서는 등의 노동에서도 여성들은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작 살아남은 남성들의 역활과 지위가 더욱 강화되는 측면도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의 기회와 재산 분배 등과 같은 권리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4.3을 겪고 이겨낸 여성들, 그들이 전해주는 목소리

이와 같은 제주의 재건과 차별을 직접 증언한 이들도 있다. 1938년 제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4.3을 경험했던 김모씨는 8남매 중 막내였지만, 4.3의 광풍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단 둘만 살아남았다.

첫째였던 큰 오빠는 4.3당시 산에 올라갔다가, 이게 꼬투리를 잡혀 1949년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남은 가족들은 다 함께 잡혀가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막내였던 김씨만이 극적으로 도망쳐 나와 살았다. 김씨의 어머니는 7발의 총을 맞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 김씨와 함께 그 후의 삶을 일궈나갔다.

김씨는 4.3 이후 결혼해 3남3녀를 낳아 키우며 집안 살림을 책임졌다. 농사 등의 경제활동을 통해 집안을 꾸려 나갔고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와 같은 노력을 이어왔지만 어려움도 컸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4.3 속에서 끌려가 행방불명되자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여 재산을 주었지만, 양자는 어머니를 돌볼지 않고 재산을 다 탕진했다. 김씨의 시집에서는 김씨의 오빠가 4.3시절 산에 올라갔었다며 눈치를 줬다. 김씨의 남편이 간첩혐의를 받아 고문을 받고 감옥살이를 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옥살이가 김씨의 오빠 때문이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역시 1938년생인 홍모씨는 안덕면 동광리에서 태어났지만 4.3때 마을이 불탔다. 아버지는 피난을 다니다가 잡혀 고문을 당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21살이 되던 해 결혼을 했고, 그 후 악착같이 일하며 집안을 일궜다. 그럼에도 시집에서는 홍씨가 가족과 친족이 없다고 무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4년 생인 문모씨는 4.3당시 둘째 오빠의 죽음을 겪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쟁에 참전한 샛째 오빠가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와 같은 가족들의 죽음 속에서도 문씨는 결혼 후 악착같이 일하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초등학교 임시 교사와 우체국 직원, 가정교사 및 토산품 대리점 운영, 어린이집 원장 등 쉴 새 없이 다방면의 일을 해왔다. 주변에서는 ‘집안의 대들보’로 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씨는 4.3의 과정에서 교육의 단절을 겪어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교육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아 결국 50세가 넘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각종 자격증 취득에 까지 나섰다.

◇가족 명예와 회복 위한 여성들의 노력, 그것이 역사의 교훈

이번 보고서는 이외에도 많은 제주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 여성들은 모두 4.3의 광풍 속에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며 집안을 일궈나가고 마을공동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성가족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4.3 유족 1세대 여성들은 성인이 돼 결혼한 이후에는 어머니와 며느리 역할뿐만 아니라 친정 가족의 돌봄을 위해 두 배, 세배 더 노력해야 했다”며  “그와 동시에 친정 가족의 명예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도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연구원은 이와 같은 여성들에 대해 “제주의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으며 살아왔다”며 “그와 동시에 많은 희생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제주 여성들이 지키고자 했던 삶의 가치를 나누어서 함께 실천해야할 것이다. 이 지점이 4.3의 역사가 말하는 교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민무숙 원장은 이번 연구에 대해 “4․3의 역사와 제주여성사의 중요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연구로, 이 연구가 제주 여성의 권익 향상과 4․3 희생자 및 유족들의 치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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