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책과 대화를 나누는 가족 공간
부모의 무릎은 책 읽기 습관의 시작점
아침 일찍 집 주변에서도 책으로 소통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수학 선생님을 꿈꾸는 아이, 의사가 되고픈 아이. 그들의 꿈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멋진 6층집을 지어서 층별로 가족들이 사는 꿈을 꾼다. 1층은 약국, 2층은 병원, 3층은 수학학원, 4층은 엄마·아빠 집, 5층과 6층은?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를 함께하는 현지와 수린이가 각각 살 집이다.
현지·수린 가족은 아빠·엄마를 포함해서 세트(?)로 다닌다. 장을 보러 갈 때도, 놀러 갈 때도 이들 4명의 식구는 정말 세트로 붙어 있다. 때문에 이들 가족에겐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는 일상의 연장선이다. 어쩌면 첫째인 현지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세트는 예고돼 있었다고 할까. 책 읽기 습관도 그랬다. 엄마 김명혜씨는 오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현지도 그랬고, 수린이도 배 속에 있을 때 책을 읽어줬어요.”
태아를 향해 엄마는 글을 읽었다. 엄마 김명혜씨만 그랬을까? 아니다. 오히려 아빠인 이남호씨는 더 적극적으로 태아와 책으로 대화를 했다. 지금도 엄마와 아빠의 그와 같은 책 읽기는 진행중이다. 엄마가 들려주는 책 읽기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빠는 재미있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수린이는 아빠 무릎이 좋다. 아빠 이야기를 들어볼까.
“집에 책이 1000권 이상 있는데 현지는 거의 다 읽었어요. 제가 읽어줬죠. 요즘은 수린이가 더 읽어달라는데, 책을 가져와서 제 무릎에 앉아 읽어달라고 해요.”
아이들의 어릴 때 책 읽기 습관은 엄마와 아빠의 무릎에서 시작된다. 무릎에 앉는 책 읽기는 마주보기보다 더 가치를 지닌다. 무릎 책 읽기는 책을 향해 함께 시선을 던지고, 신체 접촉을 하며 아이는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책 읽기는 곧 사랑이 되고, 그런 사랑은 커서 즐거운 독서 행위로 거듭난다.
현지·수린 가족의 사랑스러운 책 읽기 모습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렇다고 매번 아빠의 무릎이 독서 장소가 될 수는 없다. 분명 이들 가족에겐 뭔가 비밀이 있을 듯싶다. 어떤 독서 환경을 지녔는지 궁금했다. 현지·수린 가족의 책 일기 환경을 묻자 다들 한마디씩 한다.
“거실에 소파는 빼고 큰 테이블을 놓았어요.”(엄마)
“벽면 자체가 책장이에요.”(아빠)
“테이블에서 뒤로 돌면 자기가 원하는 책을 꺼낼 수 있어요.”(현지)
“서랍장도 있어요.”(수린)
거실 풍경이 그려진다.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그 뒤에 있는 벽은 온통 책이 차지한다.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꺼내 읽기도 쉽다. 거실은 가족 공간이면서 독서 공간도 되고, 그러다 보니 대화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방에도 책장은 있으나, 아이들은 거실을 더 좋아한다. 엄마의 말을 빌리면 방에 들어가라고 해도, 아이들은 거실이 좋아서 머문단다. 현지·수린 가족은 언제부터 이런 거실을 가졌을까.
엄마 김명혜씨는 첫째 현지가 일곱 살 때 거실 풍경을 이처럼 꾸몄다고 한다. 책과 친할 수밖에 없는 집안 구조를 3년 전에 만든 셈이다.
“현지 같은 경우는 예전에 놀잇감을 책으로 생각하는 거예요.”(아빠)
“책에 나온 주제로 놀잇감을 찾아요. 화산 폭발 얘기가 나오면 집에서 폭발놀이도 해보고요.”(엄마)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는 몸에 밸 때 나온다. 책 읽기에 최적화된 공간은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놀이처럼 책에 몸이 반응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현지·수린 가족은 말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3학년인 현지는 발표도 잘한다. 책 읽기 활동이 가져다준 덤이 아닐까.
책을 읽는 가정은 부모 세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김명혜씨는 어릴 때 아빠와 도서관은 물론 서점도 자주 향했다. 지금도 물론 책을 손에 쥐고 있다. 아빠 이남호씨는 아이랑 무릎에서 책을 읽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책과 친하다. 매달 한 두 권은 꼭 읽는다.
현지·수린 가족에겐 독특한 일상이 하나 더 있다. 현지에게 해당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엄마랑 아파트 단지에 있는 벤치로 향한다. 아침시간을 활용하는 엄마와 현지만의 방식이다. 엄마는 커피를 들고, 현지는 코코아를 들고 벤치에 앉는다. 모녀는 읽었던 책과의 이야기를 한다. 가끔은 수린이도 온다. 일찍 나가는 아빠를 배웅하면서.
아침 나들이는 지난달까지 이어졌다. 해가 짧아지면서 아침 나들이는 잠시 중단됐지만, 아침 햇살이 다시 창가를 비치는 계절이 오길 엄마와 현지는 기다린다.
수린이는 어떤 책을 기억할까. 물어봤더니 <이닦기 대장이야>란다. 즐거워지는 이닦기에 대한 이야기다. 현지는 <샬롯의 거미줄>을 떠올렸다. 아기 돼지 윌버가 어려운 상황을 맞아서도 힘을 내고, 다른 동물 친구들과 행복하게 산다는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읽은 느낌을 우리는 말로도 표현하고, 글로도 표현한다. 그러나 말이나 글로도 표현하지 못할 감응을 주는 게 바로 책이다. 현지·수린네는 매번 감응한다. 그렇다면 이들 가족에게 책은 과연 어떻게 다가올까.
수학 선생님이 꿈인 현지는 수학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한다. 아직 어린 수린이는 여전히 아빠 무릎에서 읽는 책이 가장 맛있다. 엄마는 한창 커가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책으로 배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불안할 때 책을 찾아봐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애를 키우다 보면 욕심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책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놓아야 할 것은 놓고, 제가 해야 할 것도 찾게 되죠.”
아빠는 아이들에겐 또 다른 창이다.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아빠만의 역할이 있다. 아빠는 책으로 경험을 쌓는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정보를 알게 되죠. 책을 읽으면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본 무기가 장착되는 게 아닌가 생각 들어요.”
세트로 다니는 가족.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책으로 나누는 이들 가족. 세트인 이들 가족이 함께 사는 꿈은 현지·수린 가족만 알고 있는 책에 담겨 있지 않을까. 현지는 그런 꿈을 꾸며 1층부터 6층까지 누가 살지 다시 읊는다. 6층까지 이르자, 옆에 있던 수린이는 “6층은 내 집?” 이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