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 참여
그림책으로 시작하면서 책의 가치 알아가
“책은 이야기 없던 가족을 이야기꾼으로”
어떤 두 사람은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두 바퀴는 항상 같은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지요.
바퀴 하나에 바람이 빠지면
다른 바퀴가 멀쩡해도 더는 달릴 수 없어요.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두 사람> 중에서
그림책은 힘을 지녔다. 그 엄청난 힘을 우리는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은 그림책을 ‘낯선 세계’에 존재한다고 이해한다. ‘낯선 세계’는 우리가 이미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어른들은 지금의 엄청난 세계를 지닐 수 있었는데, 그걸 잊은 채 어른들은 ‘낯선 세계’라 부른다. ‘낯선 세계’는 바로 우리들의 어릴 때 모습이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창의적인 그때를 우리는 잊고 산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김보홍·현미영씨 가족을 만나면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김보홍·현미영씨 부부는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책으로 부부가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다. 부부는 ‘낯선 세계’라고 우리가 불렀던 그때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했다. 얼마 전 손에 쥔 그림책 <두 사람>은 이들 부부에겐 또 다른 선물로 다가온다. 그런데 왜 이들 부부에겐 그림책이었을까. 현미영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애들이 다 커버려서 남편이랑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에 참여했어요. 친정어머니도 참여하고 있어요. 남편은 워낙 말이 없는데, 그림책을 보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책을 통해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림책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얘는 이랬는데, 당신은 어땠어?’라고 하면, 남편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끄집어내더라고요.”
책을 접했더니 몰랐던 사실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림책은 이야기 창고였고, 부부의 이야기를 저장했다가 뱉는 보물섬이었던 셈이다. 그럴 만도 했다. 남편은 우리 세대의 가장이 그렇듯, 너무 바삐 살았다. 청년회장, 학부모회장, 숱한 직책이 남편에게 매달려 있다. 눈을 뜨면 5분 내로 밖으로 나가고, 집에 들어오면 5분 내에 잠을 청하는, 그야말로 바쁜 삶 자체였다.
바쁜 삶을 살았던 ‘이 시대의 가장’들에게 매번 똑같은 삶이 주어지진 않는다. 나이가 들면 연이 하나 둘 끊기게 되고, 집과의 관계 맺음이 많아지게 됐다. 그래서일까. 김보홍씨는 스스로를 ‘백수’라고 한다. 그런 그에게 현미영씨가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를 함께 해보자고 했으나 쉽진 않았다. 남편인 김보홍씨에겐 책이 너무 거리가 먼 존재였기 때문이다.
“책엔 관심이 없었어요. 작년에 처음 시작할 때도 이걸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내가 책을 식탁에 놔두면 ‘볼게, 볼게’ 그랬어요. 그러다가 한권을 보게 되면서 옛날 시절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아서 하나 둘 짚게 되었어요.”
김보홍씨를 책의 세계로 이끈 건 손이 먼저였을까? 식탁 위에 놓인 책에 자연스레 손이 향했고, 그런 책은 계속 쌓였다. 마음에 쌓이고, 머리에 쌓였다. 머리와 마음에 쌓인 책은 입을 통해 이야기로 나온다. 평소 아이들을 상대로 독서지도를 하는 현미영씨에겐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글이 많으면 부담스러우니까 그림책으로 시작했어요. 그림이 많고 글이 적으니까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책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김보홍씨의 말을 들어보자.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까지는 따뜻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는 걸 알게 되고, 잘못된 것도 있었구나 느끼게 되더군요. 책을 계속 접하다 보니, 자격증을 하나 따야겠다고 해서 요양보호사 시험공부도 하게 되고, 합격을 했어요.”
이젠 눈도 자연스레 책으로 향한다. 손이 하던 일을 눈이 하고, 마음이 해낸다. 자격증을 따게 만들 듯, 책은 도전정신도 심어준다. 놀랄만한 습관의 힘이다.
부부는 기자에게 읽은 책 목록을 쓴 기록장을 보여준다. 수많은 책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또 변한 건 없을까. 60대 이상의 나이대 가장에게 아주 낯선 공간을 들라면 바로 도서관이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그야말로 동떨어진 세계였다. 그러나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는 60대 김보홍씨를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이들 부부의 삶에서 작은 책방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에 추가됐다.
마침,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를 시작할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었다. 코로나19는 사람을 가두게 만들고, 사람간의 이동도 끊어버리는 괴물이지만 이들 부부에겐 ‘괴물’이 아닌, ‘벗’으로 다가왔다. 왜일까?
“코로나19로 (밖에서) 술을 못 먹게 되면서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를 하는 행사와도 딱 맞아떨어졌어요. 남편이 코로나19 이전엔 바깥으로만 돌았는데, 코로나 이후엔 책도 읽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요. 이런 작은 마음 씀씀이는 책을 읽고 실천한 사례라고 봐요. 남편은 표현도 잘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당신이 살아줘서 참 고맙다’고도 말하죠.”
책은 힘을 지녔다는데, 이들 부부가 사는 집이 그렇다. 그렇다면 책이 지닌 힘은 과연 무엇일까. 부부에게 한마디씩 해달라고 권했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학습으로만 책을 접하곤 했어요. 그러니까 지식을 쌓는 용도로만 아이들을 봤던 겁니다. 그러나 이젠 바뀌었어요. 책을 읽는 건 삶을 달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일깨우고 있어요.”
“성질이 워낙 급했는데 책을 읽고부터는 인내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30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도 그 전에는 5분만 책을 보면 눈이 붙을 정도로 잠이 왔는데, 한 번 두 번 읽다 보니까 끝까지 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독서지도를 하는 현미영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생을 일깨우도록 하고, 김보홍씨는 인내심이라는 좋은 걸 얻었다. 집안에서 말이 없던 김보홍씨의 변화는 덤이다.
현미영·김보홍씨가 이끄는 이들 가정엔 책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변했다. 책의 가치는 익히 체험했다. 그런 책의 가치는 현미영씨의 어머니에게도 전달됐다.
“어르신들은 집에 계실 때 TV만 보시잖아요. 제가 그림책을 어머니 집에 가져다 놓고 ‘엄마, 편할 때 읽으세요’라고 하면, 하나씩 보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항상 소리 내 읽으세요. 처음엔 느리시더라고요. 우리가 소리 내서 책 읽는 건 초등학교 때 말고는 안해보잖아요. 어머니는 여러번 그렇게 소리 내 읽더니 이제는 유창하게 빨리 책을 읽으세요. 발음도 정확해지고요.”
책을 흔히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현미영·김보홍씨 부부, 아니 이들 가족에겐 ‘마음의 양식’ 이상의 것이다. 가정을 이끌어주는 힘이 되고,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두 사람>은 김보홍·현미영 가족의 이야기처럼 ‘함께’의 중요성을 말한다. <두 사람>에 담긴 다음의 글을 음미해보자.
어떤 두 사람은 꽃과 줄기처럼 서로 붙어 있어요.
꽃은 아름다움과 향기로 다른 이들을 매혹시키지만,
꽃을 똑바로 받쳐 주고 꽃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은 줄기에요.
줄기 없이 꽃은 시들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