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애정, 환대
애정, 환대
  • 정경임
  • 승인 2022.09.05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Happy Song] 제13화

애정, 환대

이 단어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문해력 논란을 불러일으킨 ‘심심한 사과’와는 논의 차원이 다른 것으로, 최근 책과 드라마,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어의 쓰임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애정’은 불륜 스캔들에나 어울릴 법한 애정행각 따위에 쓰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애정’이 사전적 의미인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사용된다. 한편 누군가를, 또는 뭔가를 기쁘게 맞아들일 때 ‘환영’이라는 단어를 쓴다. ‘환대’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던 단어였다. 반가움을 표현할 때 환대보다는 환영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데, 아마도 환대는 약간 지나친, 혹은 오버액션의 뜻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왜 몇몇 단어의 쓰임이 필자의 눈에, 귀에 걸리는 걸까?
 

# 단어의 쓰임에 놀라다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말기암 환자 찬영은 친구 미조에게 “너를 애정한다”라고 말한다. 처음에 이 표현이 너무 낯설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애정하다’는 표현에서 깊이 사랑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또한 <고독사 워크숍>이란 소설책에는 “어떻게 애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표현이 나온다. 벌써 애정하다는 표현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이 새로운 쓰임이 반가워서인지 필자도 마구마구 사용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애정’은 등재되어 있어도 ‘애정하다’는 없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애정하다’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다’로 풀이해 놓았다.

'애정하다'는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올 초에 읽었던 소설에는 직장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곳에 가도 괜찮냐고 묻자 “환영”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친구는 본인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하며 여행 온 주인공에게는 그닥 마음 쓰지 않았다. 이때 주인공은 ‘환영은 받았는데 환대하지는 않음’을 느낀다.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란 뜻이다.

# 애정하다, 환대하다

환대는 자주 쓰지 않는 단어일 뿐이지 신조어가 아니다. 손님상을 거나하게 차려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 넉넉하게 대접해도 환대 대신 환영해서 그렇다고 표현한다. 즉 과하게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는 자세인 듯하다. 물론 다른 점은 있다. 환영은 마음의 자세이고, 환대는 마음에 더해 후한 대접을 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반면에 ‘애정하다’는 문법상 틀린 단어이다. ‘-하다’는 ‘공부하다, 운동하다’처럼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로 쓰이는데, 이때 ‘-하다’는 동작성을 갖는 명사 뒤에 붙는 것이다. 따라서 동작성 명사가 아닌 ‘애정’에 ‘-하다’를 붙여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애정하다’는 단어는 귀에 착 걸릴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따뜻하게 와닿는다. “나는 너를 애정해.”가 “나는 너를 사랑해.”보다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것은 드라마 탓만일까?
 

# 당신을 환대합니다~

<환대: 이승윤을 사유하다> 표지. 타이포그래피만으로 된 표지를 오랜만에 보았다.

제주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물론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도 연락이 오곤 한다. “제주에 산다면서?”로 시작해서 “여지껏 제주에 사니?”, “언제언제 제주에 가는데 볼 수 있을까?”, “제주에 가볼 만한 데 추천해 줄래?”, “제주에 가니까 가이드 부탁해!” 등등. 제주 10년차인 필자는 정착 초기에는 육지에서 오는 손님들이 반가웠다. ‘환영’의 수준으로. 제주 정착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고 삐거덕거리자 심하게 말하면 귀찮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도 완전한(?) 제주 정착의 길은 멀지만, 제주를 찾는 지인들을 ‘환대’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멀리에 사는 필자를 찾아주는, 그 이유가 다른 데 있더라도, 이들에게 환대받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싶다. 시간이 나는 대로 가이드 역할을 하고, 가성비 높은 음식을 대접하고, 그동안 발굴해 놓은 조용한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휴식과 충전을 선사할 계획이다. 이것이 제주에 사는 행복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