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일반재판, 군사재판 수형인 모두 4.3 피해자 "직권재심 청구돼야"
일반재판, 군사재판 수형인 모두 4.3 피해자 "직권재심 청구돼야"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5.31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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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일반재판 및 군사재판 제주4.3 피해자 34명 재심 진행
재판부 '전원 무죄' 선고... 유족회, "직권재심 대상 확대해야" 강조
31일 제주4.3 수형인 34명에 대한 재심재판 결과,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남은 제주4.3의 과제와 관련한 현안을 공유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70여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옥살이를 한 ‘죄 없는 죄인’, 제주4.3 수형인 34명이 추가로 누명을 벗었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3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일반재판 제주4.3 수형인 4명, 군사재판 제주4.3 수형인 30명에 대한 재심재판을 각각 진행했다. 일반재판 수형인 4명에 대한 특별재심은 제주4.3희생자유족회 측의 청구로, 군사재판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은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의 청구로 개시된 바 있다.

이들 34명 피고인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무죄’. 선고 후에는 유족들의 한 많은 세월에 대한 증언이 있었다.

“저는 4살 때,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어머니한테 잠깐, 잠깐 들은 말은 ‘아무 죄도 없는데 형사들 둘이 와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봤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목포형무소로 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매일 울며불며 다니며 면회를 갔습니다. 저는 잠을 잘 때마다 (어머니와) 한 이불 속에서 울었습니다. 집안이 패가망신이 되고, 아버지 생각을 하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고생했습니다. 동네에서 ‘호로의 자식’이라고 하고, 살아온 과정이 억울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법도 없이 살 사람인데, 다니다가 어디서 죽었다, 너네 아버지는 너무 순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살다가, 아버지에 대한 판결문을 보게 됐습니다. 그걸 보고 내가 막 울었습니다. (판결문에는) 아버지가 오른팔을 못쓰고, 위도 썩어 있다 적혀 있었습니다. 법도 없이 살 사람을 데려다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해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는 25세 나이에 서귀포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제주4.3 당시 죄 없는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합니다. 죄 없는 많은 분들이 갇혔을 때, 외할아버지는 모른 척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도움을 주고, 정을 주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니까요.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남을 도왔다는 이유로 잡혀갔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습니다. 국가권력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났습니다.”

“한밤 중 형님과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세 사람이 와서 저희 형님을 잡아갔습니다. 이후 형님은 제주시 한복판에 파묻혀 매장당했습니다. 가서 보니 시체가 몇 백구가 있었습니다. 형님의 시체를 찾았는데, 얼굴은 없었고 다리와 뼈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 아들이 경찰중앙학교에 합격을 했는데, 경찰학교를 못 갈 뻔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앙정보부 사람이 왔던 것 같습니다. 제 형이 그렇게 죽었는데, 아들이 어떻게 경찰에 합격했냐고 하더군요. 저는 ‘나한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하냐, 무슨 죄가 있어 우리 아들이 경찰학교에 못 가냐’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아들은 경찰이 되어 잘 살고 있지만, 오랜 세월을 고통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연좌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아버지는 경찰입니다. 좌익 쪽에 음식을 나눠줬다는 죄로 잡혀갔고, 이후로 소식이 없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살아있을까) 하다가 1969년에야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8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3때 할아버지, 고모, 언니 두 분과 어머니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1살 아기는 젖동냥을 하다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충격으로 눈이 멀어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의 무죄 판결로) 우리나라가 민주적인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주4.3 당시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에 회부돼 희생당한 피고인 유족들의 증언. 이들의 기억 속 4.3은 “죄 없는 내 가족을 잡아가 고통을 겪게 한 국가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다.

이들의 가족이 일반재판을 받았건, 군사재판을 받았건 모두 “누명을 쓴 수형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인지 현행 제주4.3특별법 상에는 ‘군사재판으로 인한 제주4.3 피해자(수형인)’만이 특별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제주4.3 사건 관련 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재심) 절차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오임종 회장이 31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검찰의 직권재심 청구대상 확대가 시급하다” 밝히고 있다. 앞서 밝혔듯 현행 제주4.3특별법에 따르면, ‘일반재판 피해자’는 직권재심 청구대상이 아니다. ‘군사재판(군법회의) 피해자’만 직권재심 대상에 포함된다.

이에 일반재판으로 인해 억울한 선고를 받은 피해자를 위해선 ‘직권재심 청구대상 확대’ 내용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밖에 정리되지 않은 호적으로 제주4.3 피해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 또한 남은 과제로 꼽힌다.

또 제주4.3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 '보상'을 '배상'으로 표현하는, 용어 정리도 이뤄져야 하겠다. 

'배상'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그 손해를 물어 주는 일'을, '보상'은 '국가 또는 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갚아 주기 위하여 제공하는 대상'을 뜻한다.

제주4.3은 적법하지 않은, 국민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한 경우다. 이에 '피해보상금'이 아닌, '피해배상금'이 4.3 피해자 및 유족에게 전해져야 한다.

관련해 이날 재심 재판이 끝난 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측은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재판 및 일반재판 4.3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차질없이 지속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국가의 폭력으로 제주 사람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면, 그 고통을 치유하는 것 또한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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