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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목숨을 앗아간 ‘뒤틀린 역사’였다”
“한국전쟁 중 목숨을 앗아간 ‘뒤틀린 역사’였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5.25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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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해를 걷다] <2> 문학으로 만나는 ‘정뜨르비행장’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운명과도 같다. 제주 사람들에게 숫자 ‘4·3’은 단순하지 않다. 현대사를 오롯이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숫자 ‘4·3’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라는 이유만 있지 않다. 거기엔 ‘기억’이 들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안다. 제 몸에 난 생채기를. 우리는 그런 기억을 누군가에게 또다른 기억으로 전해줄 의무가 있다.

기억은 사라지면 회복 불가능하다. <미디어제주>는 그런 기억을 잇게 만드는 기획물을 시작한다. ‘4·3 유해를 걷다’는 이름을 단 기획물이다. 이 기획물은 마을신문인 <아라신문> 학생기자들도 동행한다.

제주도 곳곳에 흔적으로 남은 4·3 유적지. 그때 그 모습으로 기억을 지닌 곳도 있고, 사라진 곳도 있다. ‘4·3 유해를 걷다’는 특정 주제를 정해서 유적지를 들여다본다. 문학을 통해 이야기된 4·3의 장소를 보기도, 남은 건축물을 통해 4·3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편집자주]

 

시인 문충성·김경훈 등의 시에 자세하게 묘사

국제공항이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 담고 있어

국가권력의 위법 행위로 집단학살을 당한 곳

 

죽음의 학살터에서 관광객을 맞기에 가장 바쁜 공항으로 변한 제주국제공항. ⓒ미디어제주
죽음의 학살터에서 관광객을 맞기에 가장 바쁜 공항으로 변한 제주국제공항. ⓒ미디어제주

하루에도 수백 편.
제주공항은 손가락을 세기에도 벅찬, 수백 편의 항공기를 맞아들인다. 짧을 때는 3분, 길면 5분에 한 대씩 뜨고 내린다. 익숙한 제주공항의 풍경이다. 그야말로 숨 쉴 틈이 없다. 육중한 항공기의 몸은 제주공항 바닥을 무참히 찍어 내린다. 그 육중한 몸의 움직임에 비행장의 땅 밑은 ‘보이지 않는 울림’을 수도 없이 한다.

제주공항은 1940년대 첫 삽을 떴다. ‘정뜨르’라는 그 땅에 순전히 제주 사람들의 힘이 녹아들었다. 강제동원으로 만든 비행장이다. 21세기를 맞자 그 땅은 어느 순간 ‘세계에서 항공기가 가장 많이 오가는 공항’으로 변한다. 아니, ‘둔갑’이라는 단어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광객을 처음으로 맞는 제주공항. 이전엔 비극의 땅이었다. 제주4·3 때는 최대 학살터였다.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 수백 명의 목숨이 묻힌 땅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예비검속자가 되고, 그해 8월 수백 명의 예비검속자를 희생시킨 상처의 땅이다. 800여 명이 여기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07년 8월. 정뜨르비행장 학살터 발굴작업에 앞서 개토식이 열렸고,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은 기억에서 꺼내기도 싫은 ‘사형장’ 정뜨르를 소환했다.

“활주로에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들어서더니 한참 있다가 총소리가 팡팡났다.”

“동서로 구덩이를 길고 깊게 팠다. 구덩이 남쪽 지점에서 사람들을 총살해 밑으로 떨어뜨렸다. 몰래물 동산에서 봤는데, 흰 천으로 사람들 눈을 가리는 것까지 봤다.”

“몰래물 엉물 동산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밤이었는데 총소리도 들리고, 사람 우는 소리도 많이 들렸다. 한 1시간 정도 그런 소리가 들렸는데, 2~3일은 그렇게 와서 죽여 놓고 갔다.”

정뜨르에서 자행된 집단학살은 국가공권력의 의도적인 가해행위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10년 펴낸 ≪제주예비검속사건(제주시·서귀포시)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위헙행위’였음을 분명히 했다. 결정문의 일부를 옮긴다.

“희생자는 주로 경찰에서 제주4·3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요시찰 대상자로 관리하던 귀순자·자수자·석방자였다. 그러나 본 사건 예비검속 희생자 가운데는 귀순자·석방자·출옥자의 가족, 무고나 모략 등 개인적인 원한관계에 따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의 예비검속이 법적 근거나 기준 없이 실시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예비검속자 가운데 비록 제주4·3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 범죄행위가 발생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거 경력에 대한 의심이나 혐의만으로 집단 살해한 것은 위법한 행위였다.”

정뜨르비행장에서 학살된 이들의 유해는 모두 찾지 못했다. 절반만 컴컴한 땅에서 환생했을 뿐이다. 정뜨르비행장에서 일어난 학살은 문학작품으로도 표현된다.

시인 문충성은 시집 ≪허물어버린 집≫(문학과 지성사, 2011)에서 4·3을 이야기한다. 당시 고희를 넘긴 시인에게 4·3은 기억에만 머물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둬야 할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허물어버린 집≫에서 4·3 시편이 보이며, ‘정뜨르 비행장’도 시편의 하나에 들어있다.

일제 때는 정뜨르 비행장 만드는 데
끌려가 죽을 고생했다고 삼촌이
해방된 다음엔
4.3사태 터져
폭도로 몰려
정뜨르 비행장 어디에서
총 맞아 죽었을 거라고 삼촌이
소문 따라 말들만
육군 졸병 시절 나는
휴가 와선 공군 장교였던 재민이 덕에
여기서 군용기 타고 오산까지 날아갔네
오늘날
대한항공이든 아시아나든 타고
국제공항 제주 날아올라
제주 바다 건너 오갈 때
문득문득
정뜨르 비행장
아직
살아 있어
생각만

- 문충성 시 정뜨르 비행장전문

아라신문 마을기자와 학생기자들이 제주공항 인근을 둘러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문충성 시인의 '정뜨르 비행장' 전문을 읽어보기도 했다. 미디어제주
아라신문 마을기자와 학생기자들이 제주공항 인근을 둘러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문충성 시인의 '정뜨르 비행장' 전문을 읽어보기도 했다. ⓒ미디어제주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삼촌은 시인의 삼촌만은 아니다. 삼촌은 제주사람들이다. 제주사람들이 만든 비행장에서 삼촌들은 주검이 된다. 아니, 시인은 그 삼촌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살아 있으리라는 여운을 남긴다.

정뜨르비행장 땅 밑에 아직도 잠자는 삼촌. 그 삼촌은 누군가의 삼촌이었고, 누군가의 형제였고, 누구의 아버지였다. 예비검속이라는 위법행위의 피해자였던 삼촌들. 시인은 “아직 살아 있어”라며 읊조린다. 비록 생각만으로 “살아 있어”라고 외치지만, 정말 우리 삼촌들은 눈을 감지 못하고 오늘도 뜨고 내리는 수많은 비행기를 응시하는지도 모른다.

시인 김경훈은 좀 더 구체적으로 1949년 10월 2일을 겨낭한다. 그는 제주4·3 순례 시집인 ≪까마귀가 전하는 말≫(각, 2017)에서 ‘1949년 10월 2일, 정뜨르비행장’이라는 시로 말한다. 그 시의 부제엔 ‘국방경비법’이 달렸다.

문충성 시인이 1950년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이들을 이야기했다면, 시인 김경훈은 1949년 국방경비법으로 정뜨르비행장에 묻힌 이들을 꺼냈다.

어떤 이는
군인 신분으로 국방경비법 위반
무기징역 받았다가
석방된 후
대통령이 되었고

어떤 이는
민간인 신분으로 국방경비법 위반
사형을 선고받아
공항 활주로에
암매장되었다

여하한 자든지
죽일 수 있는 국방경비법
군인은 집권한 후
이 법을 폐지하였고
헌재는 합헌 결정했다

비행기 뜨고 내리는
제주국제공항
뒤틀린 역사처럼
유해는
뒤엉킨 채 발굴되었다

- 김경훈의 시 ‘1949102, 정뜨르비행장

국방경비법은 미군정 때인 1948년 만들어졌다. 그 법이 제주도민에겐 죽음을 부른 도구였다. 1949년은 계엄법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당시 고등군법회의는 제주도민 1600여 명을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로 올가미를 씌웠다.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은 정뜨르비행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와중에 제주도민을 범법자로 몰아간 국방경비법은 유효한 법이었을까. 단심으로 제주도민들에게 내려진 판결. 그게 유효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법은 우리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김경훈 시인은 그런 심경을 “헌재는 합헌 결정했다”고 말한다. 국방경비법 위반을 한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고, 그는 그 법을 폐지했으나 2001년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란다. 제주도민을 억울하게 죽인 그 법이 합헌이란다. 시인은 그게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시로 토했다. 그나마 최근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이 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죽은 자는 아무 말이 없다. 시인의 말처럼 ‘뒤틀린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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