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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재판 4.3피해자 33명 '전원 무죄'... "직권재심 대상 확대해야"
일반재판 4.3피해자 33명 '전원 무죄'... "직권재심 대상 확대해야"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2.03.29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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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일반재판 제주4.3 피해자 33명 특별재심 진행
미군정 산하 유죄 판결 ​故이경천 선생 포함, '전원 무죄' 선고

일반재판 4.3피해자, 현재 직권재심 청구대상 아냐... "4.3특별법 개정 시급"
3월 29일 제주4.3 당시 일반재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 고태명 어르신, 그리고 32명 피해자의 유족들이 특별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법원 앞에서 기뻐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4.3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 없는 죄인’이 된 33명 특별재심 대상 피고인에게 법원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4.3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일반재판 피해자'들도 검찰의 직권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직권재심이란, 검찰의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를 뜻한다. 다만, 개정된 4.3특별법에 의하면, 직권재심 청구 대상은 '군사재판 4.3 피해자'로 한정된다. 이에 '일반재판 4.3 피해자' 또한 직권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유족 측을 통해 나온다.

3월 29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제주4.3 당시 일반재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33명 피해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3명 피고인 중 32명은 이미 고인이 된 상황. 이에 피고인 측 유족들이 방청석 자리를 채웠고, 유일한 생존자 고태명 어르신만이 피고인 자격으로 참석해 한 많은 세월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고태명 어르신이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저는 17살 중학교 1학년 때, 마을 이장님 부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을 한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보고 학생들하고 성관계를 했다며 끌고 가 때리고, 전기고문을 했습니다. 억울한 것은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고태명 어르신

이날 재판의 유일한 생존 피고인, 고태명 어르신(90)은 1948년 6월, 돌연 경찰에 의해 끌려가게 된다. 당시 마을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 활동을 했던 것이 체포된 이유였고, 약 일주일 간 모진 폭력과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거짓 자백까지 하게 된다. 그의 거짓 자백으로 당시 제주지방법원은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글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 밖에 없는데. 전기고문을 당해보니 피가 말라서, 지금은 잘 걷지도 못합니다. 병원에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답니다.” /고태명 어르신

이 같은 고태명 어르신의 사연에 재판부는 “범죄의 증거가 없는 점”을 들어, 그를 비롯한 33명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소감을 전하는 유족.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들 중에는 4.3 당시 미군정 산하, 미군 판사에 의해 징역 8개월과 5천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故이경천 선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 특별재심 개시가 결정되기 전, ‘미군정에 의해 진행된 재판을 대한민국 법원이 다시 심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권한 문제가 심리의 쟁점이 된 바 있다. 이에 재판부는 “제주4.3과 관련한 사건의 경우, 제주지방법원이 재심을 진행할 권한을 가진다”라는 변호인 측 해석에 손을 들었고, 오늘날 재심이 개시됐다.

재판에 참석한 故이경천 선생의 유족 박용현 씨는 자신을 “미군정의 잘못된 판단과 그 판단을 지탄하는 국민에 의해 오늘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재판장님이 그 어려운 사정을 판단하고, 재심을 개시해주시고, 오늘 이렇게 역사적인 판결로 무죄를 선고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재판에 참석한 제주4.3 피해자 유족의 모습.

“살아온 세월만 생각하면 눈물만 나옵니다. 돈이 없어 학교도 못 가고, 하지만 이 동네, 저 동네 오만일 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저희 아버지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판단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무엇을 잘못했길래 무슨 죄가 있어서 잡혀갔나요, 제 고향 서귀포시 안덕면에는 희생자가 800여명이 계십니다. 이분들의 원한도 앞으로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아버지는 26살에 딸 둘, 6개월된 아들을 두고 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한 청년이 무참히 짓밟힌 암흑 세계 속에서. 제주도민이 희생됐다는 비극은 정말 역사적으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재판장에 섰던 아버지가 ‘고문이 없어서 살 것 같았다’라고 말했을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 속에서 희생당했을까요.”

재판부의 ‘무죄’ 판결 후 주어진 발언 시간. 눈물을 글썽이며 유족들이 말했다.

3월 29일 오후 2시, 고태명 어르신 등 33명 일반재판 4.3 피해자에 대한 특별재심이 열렸다. 사진은 피고인 측 유족들과 관계자 등의 모습.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혐오의 생산을 막아야 합니다. 혐오는 진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해결할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여 안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혐오와 결별해야 합니다.”

이날 재판을 맡은 장창수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제주4.3의 비극은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낸 걸까. 해답은 ‘나와 다른 사상’을 마냥 ‘빨갱이’로 몰았던 당시 시대상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다.

장 판사의 발언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가 결국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우리사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하게 만든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제주4.3 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40명 피해자에 대한 직권재심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들 40명 피고인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오전과 오후, 각각 진행된 직권재심과 특별재심 피고인 총 73명 모두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해결할 과제는 아직 산더미다.

특히 제주4.3 특별법 개정이 시급한데, 일반재판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제주4.3 피해자들도 ‘직권재심 청구 대상’에 포함되도록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제주4.3도민연대는 “일반재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800여명이 넘는다”며 “개정된 4.3특별법은 군법회의 피해자만 직권재심 대상자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거론했다. 일반재판 4.3피해자는 직권재심 청구 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피해 당사자 혹은 유족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 재심청구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의 공권력으로 ‘죄인’이 된 것도 모자라,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게 된 일반재판 피해자들.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검찰의 ‘직권재심’ 청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4.3특별법 개정이 필수다.

이에 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왜 군법회의 피해자는 직권재심 대상이 되고, 일반재판 피해자는 안 되는 것이냐”며 4.3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 양 대표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며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더욱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라는 호소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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