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아이들 ①
책으로 만난 아이들 ①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03.2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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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의 독서 칼럼] <6>

# 책으로 만나는 행복

아이들과 만나 독서지도를 해 온 지 어느덧 20여 년이 되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래도록, 혹은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할 때였다. 신문을 보다 우연히 ‘독서지도사’라는 문구에 마음이 끌렸다. “이 일이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내 일이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평소 책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책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독서지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 만나서 고등학교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아이들도 더러 있고, 짧은 시간이지만 책과 함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아이들도 있다. 독서지도는 책을 매개로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만남이다.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자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의견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말랑말랑해지는 책읽기

오랜 시간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독서지도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의구심이다. 물론 한 아이를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사고가 유연해지고, 감정표현도 풍부해지는 걸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변화에 책과 함께한 시간이 어느 정도 기여를 했을까, 하는 데는 장담할 수 없다. 아이들의 사고에 많은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혼자서 책을 읽고, 혹은 책을 덜 읽고 성장했다면 지금과 다르게 자랐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의문이다. 아이들 본연의 기질과 정서, 그리고 성향에 따라 충분히 다양한 가능성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책읽기가 주는 효과에 대한 의심을 해 본 적은 없다. 오랫동안 책과 함께한 아이들이 친화력이 좋고, 사고가 유연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새침해 보이지만, 자신의 의견에 또박또박 힘을 실어 얘기하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아이. 먼저 말을 걸면 뭔가 거부당할 것 같아 망설임을 갖게 하는 아이. 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열 살의 승준(가명)이다. 외동의 기질대로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혼자서 놀고 즐길 수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성향도 강했다. 손을 내밀면 잡고 따라올 것 같은 느낌보다는 내민 손을 외면하고 묵묵히 뒤따라올 것 같은 이미지. 가끔은 앞서가는 사람의 흔적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것도 같은 아이. 그런 이미지의 승준이와 십 년을 함께했다. 

학습 이해력이 좋고 똘망똘망해 보이지만, 말이 없고 말 걸기를 주저하게 하는 아이였다. 그런 승준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갈 정도로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아이가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예고도 없이 커피를 사들고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승준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또래 아이들이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친구의 생각 안에는 개인적인 일상에서부터 사회, 정치, 인류의 문제까지 화제도 다양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주저 없이 풀어내고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군 복무 중에는 “엄마꺼 사다 드리다 생각났어요.”라며 px에서 구매한 물품을 선물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릴 때 승준이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간간이 갖게 되는 만남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군 복무 중 전역 후 대학과 사회 생활에 대한 계획을 물었었다. 승준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참 멋있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설계가 확실했고, 기대에 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너는 마음만 먹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의 대학 생활에 후회는 없니?”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승준이는 “내가 남들처럼 수도권의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면,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공부하느라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대학생활이 있어서 내 미래를 설계하고, 꿈꿀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내비쳤다. 대답을 들으면서 그런 질문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과 안도의 마음이 함께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함께했던 책읽기가 너의 성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었다. 그 물음에 승준이는 “장담할 순 없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함께 혹은 혼자서 했던 많은 생각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 같습니다.”라고 확신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생각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 행복을 위한 책읽기

옛사람들의 책읽기는 다독이 아니었다. 정독을 넘어 몸으로 체화하는 책읽기였다. 내용을 곱씹으면서 내 생활에 적용해 보고,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해서 창조하는 책읽기다. 한 권의 책을 여러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적용하는 책읽기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해 왔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되새기다 보면,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독서에서 사고의 과정은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지와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물으면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서 혹은 새로운 정보의 습득, 사고력 증진, 공감을 통한 카타르시스까지 이유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내 삶이 행복해지는 데 많은 부분 책읽기의 결과가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와 갈등들을 좀 더 손쉽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단순한 경험을 위한 책읽기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유도하는 책읽기가 바람직하다. 생각의 결과에 따라 선택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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