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해반천을 품다, 생태 작가 손영순
<1부> 생태적 성장과 해반천, 동화작가 손영순의 작품세계
해반천을 품다, 생태 작가 손영순
<1부> 생태적 성장과 해반천, 동화작가 손영순의 작품세계
  • 미디어제주
  • 승인 2022.03.22 11:03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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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9>

생태적 성장과 해반천

지난봄이었다. 월요일이면 수목원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나를 포함한 세 자매는 꽃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마당의 재발견이랄까.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했던 팔순의 대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시어머님 혼자 가꾸고 지켜오던 마당이 눈에 밟혀 꽃모종과 나무 몇 그루를 사 들고 시댁 마당을 찾았다. 아마도 스스로 꽃과 나무를 심어본 건 그때가 처음일거다. 그 뒤 나는 거의 매주 시댁 마당을 찾았고 손수 심은 그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며 어릴적 자연을 바라보던 진지한 시선을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그즈음 만난 해반천(경남 김해시 소재) 손영순 작가는 꽃이 맺어준 인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꽃 박사였다. 그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는 꽃과 나무가 무려 400여 종이란다. 그는 꽃을 가꾸며 사람들과 꽃을 나누고 있었다. 그에게 나눔받은 해반천 꽃씨를 가져다 시댁 앞마당에 조심스레 뿌려놓았다. 바다 건너온 특별한 꽃씨에 시어머님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졌고 그들을 매일 들여다보며 며느리가 오는 주말을 기다렸다. 앞마당은 팍팍한 일상에서 자연의 순리가 지닌 여유로운 삶으로 우리의 시간을 바꾸어놓았다.

취재차 만난 손영순 작가가 들려주는 꽃 이야기, 해반천 동식물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그의 지나간 삶과 작품들에 관심이 갔다. 작가가 쏟아내는 꽃과 해반천 이야기 속에는 생태와 나눔이라는 작가만의 철학이 배어있었다. 자연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의 삶은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성찰의 순간을 주문한다.

필자가 손영순 작가의 작품으로 글을 쓰는 까닭은 그의 작품들이 작가 자신의 삶에서 획득한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위해 꾸며진 작위적 설정이 아닌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의해 포집된 언어로 우리의 시선을 자연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창작력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의 어린 시절과 주요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분석하면서 독서지도의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칼럼 1부에서는 작가의 성장 배경과 해반천의 생태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태적 성장과 해반천, 생태작가 손영순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살펴볼 것이다. 다음 칼럼 2부에서는 “꽃 나눔을 실천한 손영순 작가의 삶과 비교 독서”를 통해 작은 실천으로 변화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 아버지와 함께했던 맛있는 책 읽기, 정서의 양분

작가의 부모님은 온갖 채소재배와 마당의 꽃밭, 과수원 과일 농사를 하며 염소와 닭을 키우는 등 막내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그에게 동식물은 그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화 속 등장인물들을 보면, 동식물들이 주를 이루고 사람을 대신하여 등장한다.

어린 시절 작가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학교 도서관의 동화책은 거의 섭렵했다. 공부 잘하는 착한 언니에 비해 손영순 작가는 천방지축 막내딸이었다. 어느 날 성냥팔이 소녀의 슬픔에 공감하던 작가의 가슴에 슬며시 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막내딸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것을 좋아했다. 작가가 방바닥 여기저기 흩어놓은 책들을 아버지는 뚝딱뚝딱 재미있게 읽으셨다. 그 시대에 보기 드문 문식성 환경이었다. 가정에서의 문식성 환경은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는 정서의 기초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 시절은 누구나 먹고살기에 바빴던 때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막내딸이 빌려온 책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읽어냈단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으며 인물과 이야기에 공감하는 정서를 체득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포용력, 상상력의 뿌리

어머니에게는 말썽꾸러기 막내딸이었지만 말대꾸도 조용히 받아주며 딸의 호기심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주었다. 외향적이고 쾌활하신 아버지와는 반대로 조용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어머니는 고된 집안일과 과수원 일을 묵묵히 해내셨다. 차분하고 공부도 성실하게 잘하는 언니와 달리 손영순 작가는 궁금하거나 해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어머니 몰래 저질러 보고야 말았다.

어느 날은 꿩알을 어미 닭에게 품게 하면 어떤 병아리가 될지 너무 궁금하여 어미 닭에 엄마 몰래 꿩알을 넣고 품게 했다. 그런데 알이 태어나기 전에 엄마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다 알을 모두 화장실에 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혼을 내면, 작가는 지지 않고 꼬박꼬박 자신이 그런 일을 왜 벌였는지 반박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막내딸을 더 이상 혼내지 않고 사랑의 눈으로 조용히 지켜봐 주셨다. 이러한 어머니의 잔잔한 지지와 포용력은 그가 세상에 대한 온정을 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또한 작가의 호기심 어린 모험은 이후 작품을 쓰는 데 상상력의 근간이 되었다.
 

#자연 친화적 삶의 연장, 해반천 동식물

해반천은 생태를 가꾸려는 작가와 시민들의 마음이 함께 흐르는 곳이다. 물론 작가는 작은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꽃 나눔이라며 애써 몸을 낮추었지만, 그녀가 꾸민 소국길은 노천의 깊어지는 가을을 물들이는 정취 이상이다. 해반천은 작가에게 제2의 정서적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정서를 가꾸면서 작품을 썼다. 그만큼 해반천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던 작품세계는 어린 시절 그의 성장 배경에서 내재화된 자연 친화적 삶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해반천은 김해 도심에 흐르는 친환경 청정 하천이다. 도심 속 맑은 하천을 보니 마음이 탁 트였다. 2000년 초만 하더라도 악취가 심했었는데, 2004년 이후 김해시가 해반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김해시의 제도적 움직임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은 김해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었다. 크고 작은 손길들이 모여진 해반천 복원사업으로 이렇게 친환경 생태하천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손영순 작가가 손수 심어놓은 노란 소국 다발 꽃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반천 공동체를 위한 꽃 나눔의 감동이 이어지는 길이다.

손영순 작가가 가꾼 해반천 소국길 사진 송미아
손영순 작가가 가꾼 해반천 소국길 ⓒ송미아

 

생태작가 손영순의 작품 분석

손영순 작가는 경북 영덕 출신으로 2010년 새시대문학에 동화로 등단하였으며, 2016년에는 한국아동문학회에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그의 창작력에 힘을 실어주는경남아동문학 작가상, 소년해양문학상, 경남교육감상, 행정안전부장관상, 경남도지사상, 국가보훈처장상, 한국아동문학회 오늘의 작가상, 동심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맞이 꽃의 행복》, 《동화의 나라 해반천》, 《청설모와 비밀의 정원》 등 동식물을 소재로 한 자연사랑 환경동화 51편과 전자책이 있다. 아울러 <달맞이 꽃>, <해반천 속에는>, <엄마와 바다>외 다수의 동요를 작사했다. 여기에서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는 주요 작품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가치를 의미화하고, 독자 중심의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손영순 작가의 주요 작품.
손영순 작가의 주요 작품.


# 자연이 부르는 손짓, 생태 동화

《달맞이 꽃의 행복》에서는 작가의 어린 시절 자전적 요소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수록된 단편 중에 꽃밭의 정서가 담긴 <달맞이 꽃의 행복>과 <우물>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마당에 만들어놓은 우물과 꽃밭이 등장한다. 실제로 어릴적 작가의 아버지는 멀리 대구 시장까지 가서 손수 여러 종류의 꽃을 구해 오시며, 앞마당과 뒤뜰의 꽃밭 군락을 일구었다고 했다. 작가는 이렇게 아버지의 마당에서 키워나간 생태적 경험을 생생하게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그날 저녁 연희의 아버지가 화단에 꽃구경을 나왔습니다.
노란 꽃이 참 예쁘구나. 조금 전까지도 꽃이 피지 않았는데 언제 피었지?”
하시면 달맞이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 금방 꽃이 피네. ! 연희야, 이리 와 이 노란 꽃을 좀 봐! 꽃이 피는 것이 보이지?”
연희가 아버지 옆에 가 앉았습니다. (중략)
손영순, 달맞이 꽃의 행복, <달맞이 꽃의 행복>

이렇게 연희 아버지의 거친 손길에서 피어난 형형색색 이름 붙여진 작고 연약한 생명체들의 부름의 손짓은 꽃과 나무에 대한 작가의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집 우물 옆 울타리 아래에 꽃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백장미, 무궁화, 창포, 제비붓꽃, 백합, 작약, 달리아, 자주달개비, 채송화, 신경초들을 심어놓아서 동네에서 꽃집으로 이름난 집이에요. (중략)
여기 와봐. 이상한 풀이 꽃밭에 있어. 건들면 움직인다.” “정말? 어디에 그런 풀이 있어?”
재복이가 그때 처음 말을 했어요. “이걸 신경초라고 해. 재밌으면 언제든지 와서 건드려봐.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오면 꽃도 밟고 신경초도 피곤하니까.”
손영순, 달맞이 꽃의 행복, <우물>

 
“우리 집 우물 옆 울타리 아래에 꽃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백장미, 무궁화, 창포, 제비붓꽃, 백합, 작약, 달리아, 자주달개비, 채송화, 신경초들을 심어놓아서 동네에서 꽃집으로 이름난 집”이라는 묘사를 보면 집 울타리 안에 얼마나 많은 꽃을 재배했는지 알 수 있다. 단편 <우물>은 작가의 고향 집 우물로 친구와 우정을 쌓던 추억을 중심으로 쓴 작품이다. 옆집 전학 온 남학생과의 비밀 추억을 간직하며 애틋한 우정의 명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여기 와봐. 이상한 풀이 꽃밭에 있어. 건들면 움직인다.”라며 아버지로부터 습득한 꽃의 생태를 친구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에게 마당 꽃밭과 우물 주변은 작품의 주요 공간이자 애틋함으로 아로새겨진 추억의 장소이다.
 

# 마음으로 부르는 자연의 동요, 통합적 독서활동

동요는 동심을 담은 노래이다. 디지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무디어진 이타성과 자연관을 불러오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더욱 협소해진다. 이러한 요즘 아이들에게 동요는 혼자만의 세계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들은 동요를 흥얼거리며 어릴 적 회상을 하기도 한다. 순환과 반복이라는 자연의 순리는 동요의 운율과 간결한 곡조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감수성을 재생시킨다. 짧은 여운에 따르는 마음속 긴 파장은 인간을 곁으로 부르는 자연의 손짓이다. 아이와 양육자가 함께 부르는 동요 속에 흥이 살아나고 행복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풀잎향기 싱그러운 초록 세상 여름달
이른새벽 눈을 떠 노란저고리 차려입고
생긋생긋 웃어요 빛난구슬 같아요
송송송 맺힌 이슬 눈부시게 반짝이고
해님께 부끄러워 저고리 접고 얼굴 가려요
<달맞이 꽃, 손영순 작사, 민병인 작곡>


손영순 작가는 생태환경을 주제로 동화뿐 아니라 동시, 동요 등 작품세계를 넓혀왔다. <달맞이꽃>은 손영순 작사, 민병임 작곡으로 2020년 경남지역 예술인 작가 초대 교류전에서 발표한 동요이다. 작곡가 민병임은 달맞이꽃의 행복하고 맑은 이미지를 박자와 음보에 내포시켰다. “이른 새벽 눈을 떠 노란저고리 차려입고” 싱그러운 여름날 이른 새벽녘의 상큼함이 떠 오른다. “생긋생긋 웃어요 빛난구슬 같아요” 동심 가득한 마음을 머금게 하는 노랫말이다. 달맞이꽃이 피는 새벽에 노란 꽃이 빛난 구슬처럼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지 시각적으로 즐거운 상상력이 발동한다. 동요를 듣는 동안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시적 회화성을 경험할 수 있다. 작곡의 음률 또한 달맞이꽃이 피고 지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그림이 없는 줄글의 묵독보다는, 행동이나 이미지 등 입체적인 활동을 동반했을 때 사고력이 활성화된다. 이 시기는 구연이나 낭독 또는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방식의 통합적 동기유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동화 <달맞이 꽃의 행복>을 읽기 전에 우선 동요 <달맞이 꽃>을 같이 부르면서 가족끼리 즐겁게 생각열기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달맞이꽃처럼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동요를 부르며 독서감상화를 같이 그리는 통합적 활동을 하기에 좋다. 특히 손영순 작가의 작품들은 온 가족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소재와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동화와 동요를 활용하여 가정에서 독서 전·중·후 활동을 해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맑고 맑은 해반천 속에는 파란 하늘이 숨어 있다
어리연꽃 꽃밭 속에도 파란 하늘이 숨어 있다
심술궂은 회오리바람 하늘을 지우려 장난을 해도
해반천 속 파란 하늘은 모르는 척 숨어있다
손영순, <해반천 속에는>, 손영순 작사, 허걸재 작곡

위 곡은 김해 제27회 전국시립소년소녀합창제 위촉 곡으로 손영순 작가가 작사한 동요다. 해반천과 자연 그리고 동심의 순수함이 어우러진 시상, 손영순 작가의 해반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해반천 속에는>은 해반천을 둘러싼 자연물 모두를 생동하고 의식 있는 존재들로 형상화해 그곳이 얼마나 재미있고 청정한지 노래하고 있다. 이 가사는 허걸재 작곡가 외에도, 오세균 작곡가, 백승태 작곡가 등 세 분이 각기 다르게 작곡할 만큼 해반천의 생태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실수로 물 위에 지은 물닭의 집, 한밤중 사람들 안 볼 때 풀숲으로 이동했음 @사진 제공 손영순
실수로 물 위에 지은 물닭의 집, 한밤중 사람들 안 볼 때 풀숲으로 이동했다. 사진 제공 손영순


# 의인화가 주는 흡입력, 해반천 친구들

손영순 작가의 세심한 상상력은 작중인물들을 의인화하여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해반천의 동식물들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특히 저학년과 중학년 초의 아이들에게 의인화는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장치가 된다. 동식물과 자연 친화적인 생태의 모습은 아이들의 해맑은 동심의 속성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안절부절못하는 엄마 물닭을 보며
지금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일단은 그냥 두고 밤에 이동합시다. 내가 좋은 자리 봐서 고정해 지을 테니까, 뱀이나 황소개구리 같은 천적도 피해야지요.” (중략)
엄마 물닭은 새끼들을 지키고 아빠 물닭은 물풀이 우거진 숲속에서 열심히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었어요.
손영순, 동화의 나라 해반천, <해반천 속에는>

“지금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일단은 그냥 두고 밤에 이동합시다. 내가 좋은 자리 봐서 고정해 지을 테니까, 뱀이나 황소개구리 같은 천적도 피해야지요.”라는 대사를 보면 물닭이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물닭은 물풀 위에 풀을 꺾어 집을 지어야 한단다. 왜일까. 비바람에 집이 떠내려가는 걸 막고 사람이나 짐승들 눈에 보이지 않게 꼭꼭 숨겨진 집을 짓는다. 아빠물닭은 풀을 잘라 물고 오면 어미물닭은 받아서 집 둥지를 엮으며 그들이 살 집을 몰래 짓는다고 한다. 평소에 물닭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동화를 읽으며 물닭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서로 어떻게 감정을 교류하는지 알게 된다. 물닭의 세계를 진지하게 경험하고 자연의 섬세한 원리를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간밤에 붉은 목 거북이의 습격을 받았나 봅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지자 그 틈을 타서 소리 없이 동생들을 잡아간 거죠. (중략) 엄마가 알을 품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큰언니가 다급하게 외칩니다.
엄마, 빨리 도망쳐! 엄마 등 위에.” 깜짝 놀란 엄마가 등 뒤를 돌아보는 순간, 유혈목이가 엄마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물속으로 풍덩 몸을 숨기며 외칩니다. “얘들아, 모두 여기를 피하자!”
엄마도 아빠도 유혈목이를 이기지 못합니다. 유혈목이는 뱀의 이름입니다.
손영순, 동화의 나라 해반천, <뿔논병아리>

“엄마, 빨리 도망쳐! 엄마 등 위에….” 다급해진 큰 언니의 외침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마음도 함께 다급해진다. 손영순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과 식물의 소통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손영순 작가의 동화에는 동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의식 아래 독자를 자연물과의 대화의 장으로 초대한다.
 

# 생태계 공존의 지혜, 작은 실천의 힘

손영순 작가는 환경보호에도 앞장선다. 기후 변화는 동식물의 서식지와 개체군을 감소, 소멸시키며 생태계 보전을 위협한다. 특히 양서류는 기후 변화에 취약하다. 꼬리치레도롱뇽은 허파가 없으므로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동물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기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동식물의 서식 환경은 악화일로이다. 기후 변화를 멀찌감치 낙관하는 시선에서 자연의 위기가 인간의 위기로 이어지는 현실을 직시하는 위기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나 인간은 좀처럼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상 곳곳에 실천적 환경 운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막에는 숲이 있다》의 저자 인위쩐 여사는 허허벌판인 사막에 나무 한 그루가 시작되어 울창한 숲을 만들어 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 맨트》 작가 콜린 베번은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를 해 나가며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지금은 별나라에서 지구환경의 변화를 기대하는 고(故) 고봉선 작가는 도롱뇽 서식지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아픈 현실을 보며 <멸종위기 도롱뇽 보호> 표지판의 설치를 끌어냈고, 인터넷 신문에 <도롱뇽 관찰일기>를 쓰면서 환경보호 의식을 독자들에게 일깨웠다. 해반천 손영순 작가 역시 꽃과 나무 심기, 나눔 운동과 멸종위기 꼬리치레도롱뇽 보호의 실천적 의지를 보여줬다. 이렇게 크고 작은 노력들이 울림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꼬리치레도롱뇽 알이란다. 기다려보자.” 저쪽 동굴 벽 물에 작은 알주머니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어요. 한참을 보는데 진짜 어머 꼬리치레도롱뇽이 나타났어요. 숨 숙이며 아빠랑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여기저기 알 낳을 자리를 찾더니, 알을 낳는 순간을 포착했어요. 감격의 순간이었답니다. 어떻게 물이 마르지도 않은 돌벽에 알을 붙이는지 신기하기만 했어요. 자세히 보니 눈이 선하고 예쁜 꼬리치레도롱뇽! (중략) 물이 흐르는 돌벽에 알을 낳아 붙이는 꼬리치레도롱뇽을 직접 보았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죠. (중략) “그러자꾸나! 이렇게 먹이의 사슬은 서로 연결되어 또 다른 생명을 부르는구나. 자연은 참 오묘하지.”
손영순, 청설모와 비밀의 정원, “동굴과 계곡의 생태탐험


손영순 작가는 김해 서재골 샘물 아래에서 도룡뇽의 알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토종 도롱뇽이 알을 낳은 것을 보는 순간, 그곳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뒤 지인들과 함께 도롱뇽 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생태 보존을 위해 직접 나섰다. 이러한 작은 노력이 모여져서 결국, 도심에 시민들이 생수로 마시는 청정 지역 도롱뇽의 보금자리, 반딧불이가 사는 서재골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멸종위기 동물 보호에 대한 실천적 의지는 동화 속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생태학자가 꿈인 주인공 현수는 어느 날 동물 탐험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을 만난다. “꼬리치레도롱뇽 알이란다. 기다려보자.” 현수는 아빠와 함께 도롱뇽알을 낳는 순간을 관찰하고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자꾸나! 이렇게 먹이의 사슬은 서로 연결되어 또 다른 생명을 부르는구나. 자연은 참 오묘하지.”라고 말하는 아빠를 통해 생태계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꼬리치레도롱뇽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체험을 기반으로 멸종위기 동물에 관한 관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왜 멸종이 될까. 멸종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다면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손영순 작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생태계 공존의 지혜에 대한 물음표를 남겨놓는다.
 

독자층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손영순 작가는 온누리에 동심이 가득 찼다며 자연과 동심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동해안의 과수원에서 자란 그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풀숲의 곤충, 동식물과 끊임없이 나눴던 대화를 작품에 담아 행복의 근원은 자연과 동심에서 온다고 토로한다. 그의 동화와 동요 작품들은 대부분 동식물을 소재로 한 친환경 동화인 만큼, 이렇게 작품 속에 생태적 순수성을 표출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동식물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자연의 생태를 알려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자연과 인간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모두 생태계의 친구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건강한 지구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시켜 준다. 암울한 생태계 현실을 그리는 도표와 지구온난화 그래프로는 현대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자극에 둔감해진 우리에게 누군가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자연물이 주는 감동이야말로 진정한 설득의 열쇠가 될 것이다.

2022년 교육과정은 과정 중심 읽기를 강조하며, 책 읽기 전·중·후 과정 자체를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독서활동이란 책 읽기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전후 활동의 중요성을 확장한 전방위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확장된 독서활동을 진행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읽기 습관이다. 아무리 좋은 독서활동 모형을 만들어도 독서습관이 잡혀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것은 독서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독서습관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손영순 작가의 동화는 가족이 함께 읽기 습관을 만들기에 좋은 동화이다. 저학년, 중학년이 주요 독자층이지만 유아에서 어른까지도 즐길 수 있는 온가족 대상의 좋은 동화이기 때문이다.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는 시기의 아이들은 책의 구성과 글씨체, 글자 크기, 삽화, 글밥 등 형식적인 구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손영순 작가의 작품을 초등학교 저학과 중학년 아이들과 그 가정에 추천하고 싶다. 《달맞이꽃의 행복》과 《동화의 나라 해반천》 은 초등학교 3학년 전후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동식물의 생태 범위를 전 지구에 걸쳐 확장한 《청설모와 비밀의 정원》은 초등학교 4학년 전후 시기에 적합한 동화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달맞이 꽃의 행복》과 《동화의 나라 해반천》을 그림책 시리즈로 재구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워낙 자연 속의 좋은 소재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배경이 되는 그림을 더 생동감 있게 자연의 모습을 담아낸다면 유아에서 어른까지 함께 읽는 생태 그림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청설모와 비밀의 정원》은 중학년 아이들이 읽기에는 200여 쪽의 분량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분량을 나눠서 읽을 수 있도록 독서 전 읽기 전략을 사용해도 좋겠다. 그러나 단편 모음집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나눠 읽기 방식으로 해당 독자층에 접근한다면 크게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손영순 작가의 책을 분석하다 보니 미디어제주와 함께하는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운동이 떠올랐다. 이 책이 주는 담백함과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 그리고 독자층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친환경 자연동화라 더욱 그런 듯하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는 온가족이 하루 30분 정도 같은 시간에 둘러앉아 책을 읽으며 올바른 독서습관을 만들고, 건강한 가족 독서 생활화 붐 조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공감이 되는 이야기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재, 자연스럽게 구연할 수 있는 분량의 책 선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요건에 딱 부합하는 책이 바로 손영순 작가의 작품들이다.

작가의 작품들은 양육자가 자녀와 함께 윤독하며 읽을 때 따뜻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온기 어린 소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를 통해 가족 모두 내적 성찰과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작가의 동화와 동요를 “온가족이 맛있는 책 읽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은 이유이다. 온가족이 함께 읽는 그의 동화와 가족의 노랫소리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멜로디가 흘러나와 공간과 시간을 적셔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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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돼지 2022-03-25 11:26:32
작가님 글을 읽고보니 누리가 온통 동심으로 가득차 보이네요 ^^ 저만 바쁜줄알았는데 자연은 이리도 바쁘게 움직이며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하늘이 2022-03-23 15:33:07
물닭이 지은 집을 처음보네요. 자연관찰 좋아하는 우리딸에게 보여줘야겠어요. 온가족 맛있는 책읽기할때 이 책을 같이 하면 좋겠네요.

미진 2022-03-23 12:18:11
생태동화 기대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강영미 2022-03-23 07:07:36
언제부터였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고개들어 하늘 한 번 보지 않고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사물을 더듬지도 않으면서 손바닥 만한 핸드폰과 시험지에 초롱한 눈망울을 가두게 된 시점이. 그렇다고 어른 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다들 시간에 쫒기면서 휙휙 지나가는 사물들에 눈 돌릴 틈도 없지요. 이런 상황이라 손영순 작가님의 생태동화는 더더욱 마음이 갑니다. 하루종일이라도 작가님의 해반천 어귀에서 따뜻한 봄햇살 맞고 싶습니다. 우리 마음 속 한 부분에 그런 터를 마련하여 가끔 퍼질러 앉아 정신없는 자신을 도닥여 주어도 좋겠습니다. 이제는 그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랑하는 강아지와 마음껏 거닐고 계실 고 고봉선 작가님을 추억애보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송미아 작가님 고맙습니다~

노꼬매 2022-03-23 07:04:57
꽃길이 정말 아름답네요!시민의 손으로 가꾸었다는 것이 더 의미있네요. 삶속에서 이뤄낸동화작품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