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공원기능을 지닌 공간으로 재조직
오일장을 공원기능을 지닌 공간으로 재조직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3.03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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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가와 함께 걷기] <8> 건축사사무소 ‘시드’ 이준석

도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대형구조물? 수많은 사람들? 높은 건축물이 많고, 인구가 많다고 도시에 힘이 붙을까? 그러진 않다. 도시의 힘이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공공건축가들이 지난 214일부터 225일까지 제주시민회관에서 걷고 싶은 도시 공간 만들기라는 기획전을 가졌다. 기획전에 참여한 공공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공성지도로 표현했다. 공공건축가들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원도심 일대, 제주 도내 곳곳에 널린 오일시장에 그들의 생각을 마음껏 담았다. <미디어제주>는 기획전에 참여한 공공건축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공성지도를 기획했고, 그들의 제안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마을 안에 있는 성산읍 고성리 오일장 변화 제안

시장에 주민들이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길도 제시

“우리는 공간을 더 좋게 만들려고 일을 찾아낸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사람들이 몰리는 대표적 장소는 ‘시장’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시장을 찾는다. 이때 시장은 현대화된 의미의 시장이라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오갔던 전통시장에 보다 가깝다.

전통시장은 단지 오래됐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지 않다. 해당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향이 가득하다. 어쩌면 여행을 하는 이들은, 그런 향을 맡으려고 전통시장에 목을 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대적인 ‘몰(mall)’이라는 개념의 시장은 건축적 요소를 강조하지만, 전통시장은 이와 다르다. 존 러스킨은 자신의 저서 <베네치아의 돌>에서 ‘건축의 미덕’을 세 가지로 표현했다.

1. 건물은 기능이 좋아야 하고, 의도한 대로 최상의 효율로 이루어져야 한다.

2. 건물은 잘 설명되어야 하고, 의도한 대로 가장 좋은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3. 건물은 보기 좋아야 하고, 기능이나 표현이 어떻든 간에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기쁨을 주어야 한다.

쇼핑몰은 러스킨이 제시한 ‘건축의 미덕’이라는 세 요소에 잘 어울린다. 그러지 않으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 이와 달리 전통시장은 기능이 좋고 잘 설명될 이유는 있으나, 러스킨이 제시한 3번째 요소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전통시장, 특히 매일시장이 아닌 경우엔 건물 자체가 보기 좋다거나, 기쁨을 준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시장을 건축에서 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전통시장은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쳐(Social Infrasturucture)’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쳐’, 줄여서 ‘사회적 인프라’로 부르는 용어는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자주 쓰는 용어이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과는 개념이 다르다. 클라이넨버그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이른다. 그의 말을 더 인용하면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고 했다. 이렇듯 ‘사회적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을 하려면 가벼운 교류가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하며, 그런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특징적인 전통시장으로 꼽는 ‘오일시장’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건축사사무소 ‘시드’의 이준석 소장은 올해 공공성지도에 성산읍 고성리 오일시장을 들고나왔다. 그는 ‘고성오일장_오일장=매일공원’이라는 주제를 제시했다. 고성오일장은 5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이지만, 그는 5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매일’이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고성오일장에 담으려 했다. 그는 왜 매일을 강조했을까. 그가 공공성지도에 담고 있는 오일시장의 이미지를 그로부터 들어본다.

 

빨간 선으로 두른 내부가 고성리 오일장이다. 네이버 지도
빨간 선으로 두른 내부가 고성리 오일장이다. ⓒ네이버 지도

- 어떻게 고성리에 있는 오일장 주제를 맡게 되었나요.

공공건축가 활동을 하면서 서귀포 동부를 맡게 됐어요. 처음엔 고성리는 길은 잘 뚫려 있는데 사거리를 지나가기만 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지난해 오일장 조사를 시작하면서 고성리에도 오일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을 조사도 하게 되었죠. 고성리 오일장은 소규모 오일장이지만 마을의 거주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었어요. 그럼에도 소규모 오일장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주목을 그다지 받질 못하던 곳입니다.
 

- 오일장이 마을 안에 있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고성’이라는 마을이 확장되면서, 마을이 오일장을 둘러싸게 됐죠. 그렇다면 마을에서는 가장 중심 공간이 되는 셈인데, 장소로서 오일장의 기능이 마을과는 화합이 안되는 느낌이었어요. 오일장을 옮겨야 한다거나 오일장을 수직으로 개발하는 이야기가 있는 와중에 공공건축가에게 오일장을 검토해달라는 문의가 들어온 겁니다.
 

- 오일장은 상설인 매일시장과는 다르잖아요. 오일시장 상인들도 제주도 곳곳을 옮겨 다니곤 하는데, 어떻게 지역 주민들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긴 하네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게 바로 장소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잖아요. 그러나 과거와 지금은 달라졌다고 봅니다. 차를 지닌 사람들은 제주시 오일장에도 갈 수 있고, 다른 오일장에도 갑니다. 때문에 5일이라는 정기적으로 그 장소에 간다는 ‘장소의 중요성’은 약화됐어요. 대신 오일장이 강화돼야 할 방향성은 있어요. 예를 들어 신천리라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서 고성오일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직접 팔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오일장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기능을 완전히 버릴 순 없어요. 그런 가능성을 강화하고, 주민들에게도 오일장이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곳이라고 해준다면 의미도 커지겠죠.
 

- 제안을 보면 주차장 기능을 약화시키고, 걷는 걸 강화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주차장을 약화시킨 건 아니고, 현재 주차대수를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주차 공간을 합리화했더니 남은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은 주민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바꿨어요. 다층적인 기능을 넣으면서 좀 더 공원으로서 기능을 지닌 공공공간으로 재조직을 한 것이죠.
 

- 장이 열리지 않을 때도 중요하게 봤다는 거군요. 도심에서 길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데, 인프라들이 워낙 멀어서인지 차에 의존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마을 내부에서도 걸을 수 있는 공간에 매우 인색해요. 어떤 사진가가 한 말인데 ‘길은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고 했어요. 그 얘기는 길에서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얘기거든요. 하지만 길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인사하고, 혹은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공공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재조직한 고성리 오일장. 미디어제주
공간을 재조직한 고성리 오일장. ⓒ미디어제주

- 제안을 보면 바닥 패턴도 통일화시키고, 삼각공원도 만들고, 주차장을 정리해서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도록 해뒀는데 행정에서 이 제안을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주차장 개선사업은 충분히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일장에도 좋고, 주민들에게도 좋거든요. 그렇게 되면 주변 상가에도 도움이 되죠.
 

- 인식 개선도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차를 세우던 공간이 줄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좀 더 걸으면 될텐데요. 아직도 걷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인식이 바뀌긴 하더라고요. 2~3년 전이었어요. 어머니가 제게 중문 대포리 앞바다에 가서 “여기가 가장 멋있는 바닷가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전에는 한번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걸 보니 관광객들이 올레길을 발견하면서 도민들도 올레길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었어요.
 

- 마지막으로 공공건축가 역할을 말씀해주신다면.

공간을 보면서 생업을 하던 사람들이 공공건축가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클라이언트가 되어서 제주도의 공공공간과 공공건축을 다시 바라보고, 우리 모두에게 좋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게 되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어요. 공간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일을 찾아내는 것, 그게 공공건축가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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