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이어주는 풍경을 공유할 때 중요한 건 ‘길’이죠”
“세대 이어주는 풍경을 공유할 때 중요한 건 ‘길’이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2.2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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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가와 함께 걷기] <3> 에이루트건축 이창규

도시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대형구조물? 수많은 사람들? 높은 건축물이 많고, 인구가 많다고 도시에 힘이 붙을까? 그러진 않다. 도시의 힘이란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214일부터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공공건축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는 걷고 싶은 도시 공간 만들기라는 기획전이다. 기획전에 참여한 공공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공성지도로 표현하고 있다. 공공건축가들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원도심 일대, 제주 도내 곳곳에 널린 오일시장에 그들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미디어제주>는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는 공공건축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공성지도를 기획했고, 그들의 제안 내용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제주시 건입동 일대 가능성 타진한 제안 내놓아

보행 좋아지면 안전하고 좋은 도시로 느끼게 돼

돌담을 쌓거나 조경을 한다면 행정 지원도 필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땅은 우리가 걷기 이전부터 있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맨발로 땅의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두 발은 우리에겐 땅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인간은 두 발을 디디며 땅을 탐닉하고, 두 눈으로 지식을 쌓아갔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을 쌓으며 굳이 두 발을 디디지 않더라도 쉽게 이동가능한 수단을 만들었다. 땅을 탐닉하려고 애쓰며 두 발을 디딜 이유는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나? 우리가 사랑하던 존재를 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아끼던 기억도 없애지 않았던가.

걷는 일보다, 재빠른 이동 수단에 몸을 기댄 사회는 산업화를 이끌었을지는 몰라도, 기억의 매몰을 겪는다. 나중에야 기억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그때는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어쩌면 기억은 쌓이고, 쌓인다. 사라진 기억에 새로운 기억이 얹히고, 세대끼리 기억을 공유하기도 한다.

건축가 정기용은 ‘길’이라는 단어에 ‘풍경의 저장창고’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을 좀 더 옮겨본다.

“길은 풍경의 저장창고다. 할아버지가 보았던 풍경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나도 같이 풍경을 본다는 것은, 나 또한 길의 역사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풍경은 세월이 흐르면 달라질테지만, 길이 남아 있다면 ‘할아버지의 풍경’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풍경’ 또한 기억하고, ‘나의 풍경’도 길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기억을 소환하는 이들은 제대로 걸어본 이들이다.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었던 길, 아버지를 의지하며 걸었던 길, 이젠 ‘나’라는 존재가 커서 자식 세대와 걸을 수 있는 길을 지닌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건축가 이창규가 제안한 건입동의 새로운 풍경. 미디어제주
건축가 이창규가 제안한 건입동의 모습. ⓒ미디어제주

제주시 원도심 일대는 걸으며 생각하기에 좋다. 에이루트건축의 이창규 소장은 원도심을 훑어가며 지역 사람들의 생활문화경관을 담은 지도를 만든 이력이 있다. 그는 그 이력을 확장시켜, 건입동에 주목했다. 그는 건입동에 ‘서포터 랜드(Supporter Land) : 새로운 배후지로서의 가능성’이라는 구상을 제안했다. 배후지는 영어로 ‘힌터랜드(Hinterland)’로 불리는데, 그는 왜 지지자나 후원자의 뜻을 지닌 ‘서포터’라는 단어를 썼을까. 사실 모든 계획은 지지하거나 후원하는 이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포터는 시작점이자 끝점이다. 산지항을 품은 건입동은 ‘포구’였기에 누군가의 서포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건축가 이창규가 제안한 ‘서포터 랜드(Supporter Land) : 새로운 배후지로서의 가능성’이라는 구상을 그의 입을 통해 더 알아본다.
 

- 서포터 랜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건입동은 구도심이 개발될 때 배후지 역할을 했던 동네예요. 구도심이 개발될 때 주로 주거지로서 배후지 역할을 했죠. 이제는 배후지로서 주거 역할이 약해졌어요. 제가 제시한 ‘서포터 랜드’는 원래는 없는 단어인데 중심도시를 지원하는, 자생적으로 부흥을 하면서 상생하는 개념으로 제시를 했어요. 공공건축가로서 이 지역을 바라보니 잠재적 가능성이 많더라고요. 산지천 쪽으로는 문화시설이 많고, 건축자산이 되는 건물도 꽤 있습니다. 동네 분들만 이용하는 도깨비시장도 있어요. 경관도 좋은 땅이고, 가로변 성격도 달라요. 조사를 하다 보니 올레길이 많이 남아 있어요. 읍면에서 흔한 돌담이지만 구도심에서 잘 볼 수 없는 올레길이 있어요.
 

- 제안은 남아 있는 올레길을 돌담으로 해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나요?

돌담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굉장히 중요한 자신이 될 것 같아요. 만약에 이 일대에 신축건물을 짓는다면, 울타라를 쌓아야 되잖아요. 그런 걸 돌담으로 지원을 해주자는 것이죠. 당연한 얘기인데 구도심의 정체성은 돌담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조금 더 유지하자는 의미입니다.
 

건축가 이창규는 풍경이 좋은 주차장을 공원 부지와 맞바꾸어 여기에 '열 우 달 상점'을 설치하는 제안도 했다. 미디어제주
건축가 이창규는 풍경이 좋은 주차장을 공원 부지와 맞바꾸어 여기에 '열 우 달 상점'을 설치하는 제안도 했다. ⓒ미디어제주
건축가 이창규가 제안한 '열두 달 상점'. 에이루트건축
건축가 이창규가 제안한 '열두 달 상점'. ⓒ에이루트건축

- 어쨌든 길을 걸을 때 연속 개념을 살린다는 얘기인가요?

네. 그렇죠. 이 일대 보행환경을 개선하려 했더니, 주자창이 많더라고요.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주차장을 공원과 맞바꿔서 ‘열두 달 상점’이라는 건물을 얹는 제안도 해봤어요. 공공 프로그램으로 제안을 해본 것인데, 주민들의 휴식공간도 되고, 매월 기획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게 되면, 수익도 나오겠죠.
 

- 도시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보는 건 뭔가요.

도시는 변하겠지만 ‘적층도시’를 만들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지난해 공공성지도 작업을 할 때 ‘적층도시’, ‘보행도시’, ‘소소(小少)도시’를 제시했는데, 소소도시는 자산적 가치가 있는 걸 공공에서 매입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그렇게 정비를 해줄 경우 앞으로 5년 후, 10년면 달라지리라 봐요. 보행도 좋아지면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라고 느끼고, 자연스럽게 동네가 전체적으로 좋아지는 거죠.
 

- 그렇다면 도심에서 걷는다는 건 왜 중요할까요.

걷는다는 건, 누적된 도시랑 같은 개념이죠. 할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아버지가 걷고, 또 손자가 걷는다는 건 매우 의미가 있거든요. 세대를 이어주는 풍경의 공유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 길이라고 보죠. 그래서 길이 잘 연결돼 있으면 그 도시는 정체성을 지니고 나가게 되죠. 또 걷기 좋다는 건 살기가 좋다는 말이거든요. 살기 좋다는 의미는 계속 거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건입동의 남아 있는 올레길. 에이루트건축
건입동의 남아 있는 올레길. ⓒ에이루트건축

- 제안 내용에서 길을 연속적으로 만드는 구상이 있다면요.

(공공성지도를 가리키며) 여기 점선으로 된 길은 이어지지 않아요. 이탈리아 등지의 오래된 도시를 가면 바닥 패턴으로 ‘연결이 됐구나’라고 인식을 하게 해주죠.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끊어진 느낌이죠. 바닥 패턴만 바꾸더라도 더 살아나겠죠.
 

- 걸으면 좋지만, 걷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떤 것 같나요.

많이 달라졌어요. 걷기 좋은 도시가 좋다는 걸 방송에서도 많이 해서인지, 시민들의 문화적 소양도 높아졌고, 그래서 앞으로 더 잘 될 가능성이 크죠. 실제 걷는 건 건강에 좋고, 자녀와 노약자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가 생긴다고 하면 인식은 더 달라질테죠.
 

- 이런 제안을 행정에서 받을 수 있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꼭 받아줬으면 하는 제안이 있다면요.

올레길입니다. 돌담을 쌓게 되면 행정에서 지원을 해주는 거죠. 여기는 녹지도 없어요. 건물을 신축하면 법정 조경이 있잖아요. 신축할 때 나무를 심게 된다면 행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안해 주는 것이죠. 공공에서 일정 부분 지원을 해준다면 삭막한 골목도 점차 좋아질 겁니다. 인사동도 그렇고, 북촌의 한옥도 예전은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걷기에 좋게, 조경도 지원을 해준다면 구도심의 녹지 비율도 높아질 거예요.
 

- 공공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장기적으로 제주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도심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한 곳을 바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공공건축가는 미래적으로, 중장기적으로 10년이든, 20년이든 혹은 50년이나 100년 후를 바라보는 관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와 관련해서는 이벤트적인 것들만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도시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도시를 기록하면서, 천천히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어요.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를 가지고서 중장기적으로 얘기해주는 건축가도 필요한데, 공공건축가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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