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림은 제주 그 자체이지요”
“내가 그린 그림은 제주 그 자체이지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2.01.21 16:3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6기까지 그림책 전시
산지등대 곁에 있는 카페물결에서 24일까지
“올해는 제주를 벗어난 서울 전시도 계획중”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18세 청춘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현재를 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겐 그야말로 ‘꿈’이다. 어르신 세대의 10대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난이 일상이었다. 특별한 삶을 사는 이들은 없었다. 주리지 않게 배를 채우고, 밭에 나가 일을 하는 그런 10대였다.

그래도 그들은 꿈은 꾸었을테다. 이루지 못하는 꿈이었겠지만.

만일, 어르신들이 지금의 10대처럼 자랐다면 어떤 삶이 주어졌다면?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그런 궁금증을 털어내는 일이 몇 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을까. 다름 아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이다.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등이 오는 24일까지 어르신들의 작품을 카페물결에서 전시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등이 오는 24일까지 어르신들의 작품을 카페물결에서 전시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어르신그림책학교는 2016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6차례 어르신을 대상으로 그림책 학교가 진행됐고, 여기에 참가했던 어르신들이 한 권씩 모두 47권의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림책을 출판하는 책여우와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어르신을 위한 책을 출간했다. 어르신 그림책을 그냥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르신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는 등 수개월이 걸리는 작업이다.

모두 6차례 이뤄진 그림책학교. 그 흔적을 더듬는 기획전도 열리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기획전은 ‘어디서 완?’이라는 주제를 달고, 사라봉 산지등대가 있는 ‘카페물결’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전시는 묻고 답한다. 어르신 작가들 스스로에게도 묻고, 전시를 보러 온 이들에게도 묻는다. 어르신들이 이른 나이에 그림을 배웠더라면 좀 더 일찍 왔을지도 모를테지만, 그래도 늦진 않았다.

어르신 작가들이 만든 그림책은 기성작가의 것과 다를 게 없다. 디데일 등 질적인 면은 다소 뒤질지 모르지만, 내용만큼은 전혀 뒤지질 않는다. 왜냐고? 어르신 작가들은 인생을 알기 때문이다. 70평생, 아니 80평생을 세상과 싸우며 터득한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용은 여느 그림책보다 더 탄탄하다.

오리는 24시간 중에 언제 알을 낳을까? 경험을 한 이들만 안다. 오리는 새벽에 알을 낳는다. 새벽에 오리알을 가지러 가다가 뱀에 물리는 일도 있다. 어르신들은 그런 생생한 정보와 사실을 그림책으로 환생시켰다. 그러니 어르신 작가들의 그림책은 질적으로 뒤지질 않는다.

어르신들은 배움에 고픈 이들이다. 10대 때 학교에 다녔더라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며 배우지 못한 한을 풀어내곤 한다. 어쩌면 그 한 맺힌 배움에 대한 울분을 그림책이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늘 주변을 걱정한다. 더 배우고 싶지만 살아야 하기에 밭에 나가야 한다. 그 밭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우지 않았던가.

카페물결에서 만날 수 있는 어르신 그림책 원화들. 미디어제주
카페물결에서 만날 수 있는 어르신 그림책 원화들. ⓒ미디어제주

그러나 47권의 그림책 가운데, 안타깝게도 더이상 나오지 않는 책도 있다.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는 절판된 책을 살리기 위해 클라우드 펀딩(tumblbug.com/bookfox)을 진행중이다. 지난 2016년 1기 어르신 그림책 8권을 재편집해 <새벽별은 베롱베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놓을 계획을 잡고 있다.

더 나아가 제주를 벗어나 전시를 하는 계획도 구상중이다. 어르신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는데, 제주라는 지역에서만 선보이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그래서 좀 더 넓은 곳을 향해 어르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련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 강영미 관장은 “어르신 작가들이 선보인 작품을 올해는 다른 지역에서도 보여주려 한다. 우선 서울을 시작으로 어르신 작가들의 그림책을 보여주고 싶다”며 “재발간 작업을 하고 있는 <새벽별은 베롱베롱>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어르신 작가들. 그들은 우리 곁에 있는 ‘삼춘’이며, 제주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그들이 가슴으로, 마음으로 만든 그림책은 제주 그 자체이며, 제주의 역사임을 어르신 작가들은 몸소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생각숲 2022-01-21 23:25:27
그림으로 풀어내는 제2막 인생,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