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건축가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1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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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6화
삼양 샛도리물 전경. 고이권
삼양 샛도리물 전경. ⓒ고이권

건축가 승효상의 글귀를 몇 자 옮겨본다. “터무늬(터에 새겨진 무늬) 없는 삶이란 땅과 무관한 유목민적 삶이다. 정주한다는 것은 땅에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며, 기억을 적층하는 과정이다.” 삶의 흔적이 새겨진 땅을 아끼는 건축가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필자가 유목민적 삶을 살고 있으니까 서글픈 마음이 든다. 서귀포 붙박이가 되려고 열심히 살고는 있으나, 아직도 정주하지 못한 마음이 한켠에 남아 있다. 물론 건축가 승효상이 지적한 “더 많은 재화를 축적하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는 도시유목민”은 아니지만, 제주에서 살다 보니 텃밭을 일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고, 제주에 와서도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지 텃밭이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땅 한 평 가져본 적 없는 ‘땅거지’인 필자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 제주 건축가들에게 좋은 건축이란

부동산 중개업소의 도움을 받아 몇 번 토지를 보러 갔는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땅을 봐야 하는지, 쩝쩝. 그래서 이번에는 주택을 보러 다녔다. 200평 남짓 규모의 집들을 몇 채 둘러보았는데, 이것 역시 선택의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원하는 집은 어떤 것이지?’ 그리고 나열해본다. ‘우선 따뜻한 동네, 앞이 트인 집, 단아한 2층에 창문의 크기가 다양한 집, 마당에 여러 개의 아기자기한 텃밭을 만들 수 있는 집, 돌담이 허리께 정도의 높이로 둘러쳐진 집’ 등등. 여전히 맘에 드는 집을 찾아야겠다는 열망만 들끓던 때였다.

그 열망 덩어리에 둔기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제주 건축가들 19명의 견해와 의견을 담은 <나는 제주건축가다> 책을 읽으면서 제주의 건축에 담긴, 그리고 담겨야 할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주 건축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제주의 자연환경에 맞게(또는 해치지 않게) 건축을 하는 것이었다. 제주 건축가들에게 좋은 건축이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면서 그 장소와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건축이다. ‘나만 잘났소’ 하며 그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높다랗게 지은 주택, 제주의 땅은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편인데, 토지의 모양을 살리지 않은 건축물 등 그야말로 볼썽사나운 건축물이 불쑥불쑥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 제주 땅의 가치를 모르는 것도 죄

아, 무지한 게 죄, 맞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를 읽기 얼마 전 지인의 소개를 받아 주택을 보러 갔다. 도로에서 중산간 방향으로 올라가니, 평평하게 다져놓은 땅에 주택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널따란 잔디와 다각도로 꾸며놓은 지붕이 나름 신경 써서 지은 집 같았다. 잔디를 걷어내고 텃밭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주변 환경에 시선이 갔다. 왼쪽으로 꺾어진 방향으로 주택 4채가 있는데, 겨루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하는 듯한 모양, 땅 모양을 살려 집의 높이가 약간씩 다르고 정원도 그 모양대로 가꾸니 작은 숲을 연상시켰다. 높다란 나무와 키 작은 나무, 그 아래 다양한 꽃식물과 허브, 그리고 텃밭 등이 있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필자가 본 주택은 택지개발을 하여 필지를 나눈 곳에 들어선 집이며, 다른 주택과는 어울림이 덜한 곳이었다. 무지가 차고 넘치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을 넘어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 6세대 젊은 건축가들이 들려주는 제주 건축 이야기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 이창규 작품인 '어머니의 집'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 이창규 작품인 '어머니의 집'

제주를 다니다 보면 도로보다 낮은 곳에 집과 밭이 있는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궁금증이었다. 이 책은 제주 출신의 건축가들이 풀어낸 이야기를 담아서인지, 필자의 궁금증이 단번에 풀렸다. 바람이 많고 거센 제주이기에 바람을 덜 맞기 위해 ‘옴팡진(움푹한)’ 땅에 낮게 집을 지었다는 생활의 지혜였던 것이다. 한편 이 책에는 건축의 자양분이 바다·산·오름·돌담이라고 밝히는 박현모 건축가, 건축물이 준공되면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건축물을 소개하는 오픈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백승헌 건축가, 제주의 자연과 사람의 공존, 제주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공존, 이러한 공존의 건축을 고민해야 한다는 김태성 건축가, 보여주기 위해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양현준 건축가 등 제주의 겉모습을 만들어온 6세대 젊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경험과 견해가 담겨 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라는 책을 읽으며 제주 땅의 모양을 살리고 제주에 걸맞은 건축물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좀 더 값진 눈으로 집을 보러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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