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 등재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의 脈을 짚다 1
기네스북 등재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의 脈을 짚다 1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12.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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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7)

작가 장영주는 늘 바쁘다. 현장탐방의 발걸음에 대한 가치를 높게 두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도 현장 어딘가에서 채록하고 현장의 느낌을 담고 있을 것이다. ‘작가 장영주는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를 향할 때 발걸음에서 광채가 난다는 어느 동화작가의 말이 반증해준다. 그는 40여년 교직 생활동안 종이책만 무려 150여권(공저·추가 저서 포함)을 펴내 공무원 저술분야 최고기록 기네스북 인물로 등재되었다. 아울러 최근 <돌하르방>이라는 도록책을 내고 사진전시회를 하고 있다. 돌하르방은 무려 40여년 현장을 돌아다니며 채록, 언론 연재, 전자책 등재 등 끊임없이 연구하던 분야인 만큼 1부에서 비중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다음 편 2부에서는 그가 왜 기네스북 등재 인물인지, 종이책 150권이 주는 성과적인 결과보다는 그가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써야만 했는지 과정에 가치를 두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1부 :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의 脈을 짚다

아동문학가 장영주의 '돌하르방' 출간 기념. 송미아
아동문학가 장영주의 '돌하르방' 출간 기념. ⓒ송미아

연분홍 개모밀덩굴이 이곳에 온 사람들의 마음을 곱게 물들여 준다. 작가 장영주가 펴낸 <돌하르방> 덕분에 돌하르방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혼자 찾은 돌하르방 공원이다. 북촌리에 소재한 이곳은 도내 외에 흩어져 있는 돌하르방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해 놓고 있다. 공원 입구 한구석에서는 몇몇이 모여서 돌을 부수거나, 다듬거나, 조각을 내면서 기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돌 틈에 모여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갓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여학생이 돌을 다듬다말고 눈인사를 한다.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장면이다. 순간 여고시절 돌멩이를 두고 정밀묘사를 했던 순간이 스쳤다. 돌멩이를 안고 이리저리 다듬고 살피는 그녀를 보니 시간을 거슬러 소묘를 위해 돌멩이와 씨름하던 내 여고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하필 소묘의 소재가 왜 돌멩이었을까. 여기저기 지천으로 깔려있는 게 돌이라 주워왔을까. 아니면 사람의 형상을 한 돌멩이가 신기해서 그려보고 싶었던 걸까. 그저 4B연필의 온기에 초몰입하며 돌멩이에 숨결을 불어넣던 기억뿐이다. 일주일 만에 완성된 소묘를 보며 ‘오, 네가 돌멩이를 살려줬구나’ 라던 선생님의 말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여기서 돌을 다듬는 사람들 역시 어딘가 묻혀있던 돌을 끄집어내어 깨고 조각하며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돌하르방 1기는 어디에 있을까?” 돌하르방공원에서. 송미아
“잃어버린 돌하르방 1기는 어디에 있을까?” 돌하르방공원에서. ⓒ송미아

제주의 돌은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소재가 되고, 밭담과 산담이 되기도 한다. 돌하르방 공원처럼 생각을 던져주는 다양한 형상의 돌하르방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또, 작가 장영주처럼 민중의 시선을 포착하려는 설화연구가에게는 민간의 삶을 이해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누군가의 부름으로 원석은 영혼이 담긴 그 무엇으로 새로이 존재하게 된다.

# 40년 현장탐방 돌하르방의 맥을 짚다

장영주 작가는 최근 사진 스토리텔링 도록책 <돌하르방>을 펴냈다. 그는 글을 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탐방과 채록이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40여 년간 현장을 뛰어다니며 집중했던 것 중 하나가 돌하르방 연구이다. 제1회 돌 문화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의 강사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돌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에 관한 영상이 언론사에 방영되었고 현장 탐방 자료들은 대부분 제주신문에 연재되었다. 이 내용을 모아 전자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는데 이번 도록책은 그 전에 출간한 책들과 겹쳐지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새로운 탐방길을 추가하며 또 다른 책으로 출간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같이 따라가 보자.

이 책은 크게 제주 3읍성을 지키던 옛 돌하르방 48기 편과, 언론에 연재했던 자료 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작가 장영주는 제주 민속자료 지정 돌하르방 48기의 자료와 번호를 추적 탐방하였다. 그는 원래 장소에 있던 돌하르방들이 이동하는 경로까지 정리하여 교육용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기 쉽게 정리하였다.

제주 3읍성을 지키던 옛 돌하르방 48기 편은 크게 제주목성, 대정현성, 정의현성으로 나뉜다. 3읍에 성을 쌓고 입구에 돌하르방을 세워 제주를 지켰는데 돌하르방이 병사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의 물결로 3읍성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은 심심찮게 이동했다. 옛 제주목성 24기 중 21기는 시내 곳곳에 있고 2기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1기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리고 옛 대정현성에 12기, 옛 정의현성에 12기가 존재한다. 작가 장영주는 행방불명된 돌하르방에 대해 걱정이 많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직 아무도 행방을 모른다. 잃어버린 돌하르방 1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찾기 운동을 펼쳐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론 보도 자료 편은 해외로 나간 돌하르방편, 본섬을 나간 돌하르방편, 본섬에서 다른 섬으로 나간 돌하르방편으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해외로 나간 돌하르방 편에서는 자매결연을 통해 그곳 상징물과 교차 설치하는 방식으로 돌하르방이 세워진 계기와 분위기를 현지 방문, 언론보도와 관광객 및 주민의 시선을 반영한 설화를 곁들여 기행문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독일, 중국, 미국, 일본, 파라과이, 벨기에, 러시아, 캐나다, 몽골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돌하르방의 정황을 통해 국가 간의 우호 협력 증진을 위한 노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본섬을 나간 돌하르방 편에서는 특별한 3곳, 마지막으로 본섬에서 다른 섬으로 간 돌하르방 6기를 지정하여 각 지역에 돌하르방이 이동하게 된 경위와 그 지역에서의 특징, 그리고 일부 설화를 담았다.

‘캐나다, 몽골까지 자료 조사…’ 4개국은 탐방했고 나머지는 코로나 정국이 끝나면 찾아갈 계획이라 한다. 작가 장영주가 발품을 팔아 기록한 해외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해외 곳곳에 소재해 있을 돌하르방을 생각하니 제주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적 상징물로 이만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한켠으론 이국땅에 홀로 떨어져 있는 자식 같아 더욱 마음이 쓰인다. 멀리 이국땅까지 달려가서 현장 사진을 담아내려는 장영주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일부 돌하르방에는 마스크가 착용되었다. 맘이 아프다.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할까. 작가 장영주는 ‘제주 3읍성을 지켰던 돌하르방에게까지 마스크를 씌우는 현실에서 돌하르방이 전하는 코로나 수칙을 덧붙이며, 돌하르방의 역사 설화를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데 대장정의 길을 떠나고자 한다.’라고 코로나 수칙도 제시했다. 어쩌면 그것은 팬데믹의 시대상까지도 품어 내는 돌하르방의 면모를 남기고 싶음일 것이다. 장소마다 반복되는 코로나 수칙을 보며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무엇을 책임지우는 걸까.’

‘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의 돌하르방은 오래전부터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말에서 영감을 받아 고 김영돈 민속학자 등이 돌하르방이란 명칭을 처음 쓰게 등록한 것이다. 1971년 제주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면서부터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고 작가는 전한다.

이 도록책에서 눈길을 끈 것은 1980년 제주신문에 연재된 제주3읍성 관련 ‘돌하르방 설화’와 1991년 민족전래동화 6권에 실린 목석원 전설 ‘갑돌이의 일생’이다. ‘아, 목석원 뜰 안의 갑돌이의 일생··· 작가 장영주님이 이렇게 널리 알려진 설화의 원작자였구나···.’ 작가님의 수많은 창작물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최근 설화채록 현장에서 작가님의 발자취를 배우는 독자로서 때마다 느껴지는 감흥이다.

# 제주 3읍성 돌하르방 48기 사진 전시회

2021년 항파두리 역사문화제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2021년 항파두리 역사문화제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전시회는 ‘2021년 애월 항파두리문화제 기념 전시’에서 출발해 지금은 조천리 소재 파파빌레에 전시되었다. 이번 겨울까지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회는 제주 돌하르방에 대한 가치를 재편하여 48기 돌하르방의 모습을 선보였다.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돌하르방은 “나를 무심히 지나치지 마세요…”라고 말을 건다. 사람들의 눈빛이 사진 속 은근한 돌하르방의 미소로 향한다.

021년 항파두리 역사문화제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2021년 항파두리 역사문화제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파파빌레’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파파빌레’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툭 튀어나온 동그란 두 눈, 굳게 다문 입, 벙거지 모자, 구부정한 자세에 한쪽 어깨는 추켜올리고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있는 제주의 돌하르방…익살스럽기도 하고, 믿음직한 장군 같기도 하고, 손녀딸에게 뭐든지 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넉넉한 마음 같기도 하다. 구멍이 숭숭한 돌,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터라 생김새도 질감도 독특한 돌하르방은 제주를 상징하는 대부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사진마다 돌하르방의 생김새와 표정이 제각기 다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영혼이 서려 있는 듯 말을 건넨다. “나는 삼성혈의 돌하르방이야, 나의 말을 좀 들어다오”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파파빌레’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파파빌레’ 장영주 작가 돌하르방 전시회. ⓒ송미아

파파빌레는 현무암의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며, 현무암 음이온 자연치유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 항파두리 문화제 사진 전시회에 이어 이곳 파파빌레에서 올 겨울까지 연장 전시될 예정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파파빌레에서 사진전과 함께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 장영주 작가의 ‘돌하르방 설화’ 상징성 분석

장영주 작가는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돌하르방의 행방을 찾아 기록하는 것에 천착했다. 그래서 돌하르방이 있는 곳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간다. 그곳이 해외 현장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 집념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 장영주가 2017년 펴낸 <설문대할망>에 돌에 관한 이야기와 다른 설화를 함께 수록하기도 했다. 아울러 작가 장영주가 펴낸 10여 권의 돌하르방 관련 전자책과 2020년 펴낸 <제주목성을 떠난 돌하르방>에도 돌하르방 관련 전래 동화를 수록했다. 여기에서는 1980년 제주일보에 연재된 <돌하르방 설화>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옛날, 때는 조선시대 영조 30(1754)에 목사라는 사람이 제주를 다스렸습니다.
그렇다.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함이로다.’
성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히 병사가 해야 마땅하며 또한 그래야 튼튼한 법인데, 한갓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제주 목사는 하고 있었습니다.
안됩니다. 어찌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오리까?”
이방의 걱정은 태산 같았습니다.
허허, 돌이라고 영 생각이 없으며 아무 일도 못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냐?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시행 하렸다.”
목사의 명에 따라 제주목성 입구에 커다란 돌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중략)
목사는 백성을 위한다는 게 어리석은 정신병자가 되었고,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는 게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보니 기운이 하나도 없어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허허, 당장 일어나 일을 해야 할 게 아니더냐? 나라의 국록을 먹는 사람이 그렇게 나약해서야 어찌 백성들의 기강을 바르게 서울 것이며, 그런 허약한 정신을 가지고서야 어찌 나라를 튼튼히 지킨단 말인가? 일어나 기운을 차려라. 다시 돌을 다듬어라. 그 돌은 천하제일 석수장이의 힘으로 안 되느니라. 그는 기는 있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돌을 마음으로 다듬는 사람을 찾아라. 그로 하여금 돌 사람을 만들게 하라. 살아 움직이며 생각하는 힘과 지혜를 가진 돌사람을 만들게 하라.’
꿈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은 목사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허허, 이런 꿈도 다 있구나. 여봐라. 3읍에서 제일 마음씨 고운 사람을 불러 그로 하여금 돌사람을 만들게 하라.”
목사의 명을 받은 3읍 석수장이는 밤낮으로 돌을 다듬었습니다.
그렇도다. 바로 저 모습이로다. 옥중석이로다.”
목사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록 크기는 모수 달랐지만 얼굴 표정이며 생각하는 모습이 모두 같게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돌 사람을 3읍성 입구에 세워라, 저것으로 하여금 경계를 그으라.”
목사는 돌사람을 세워 그곳이 성내임을 표시하였습니다.
< 출처: 장영주, 제주신문, 1980>

[돌은 정신적 수호자로서의 상징물]

그렇다.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함이로다.’
성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히 병사가 해야 마땅하며 또한 그래야 튼튼한 법인데, 한갓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킥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제주 목사는 하고 있었습니다.
안 됩니다. 어찌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오리까?”

상징은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보며 떠올리는 정서가 한 덩어리를 이루어 표현되는 복합양식이다. 집단 무의식이 표출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돌하르방 설화의 초반에 ‘한갓 돌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제주 목사는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설정한다.

목사의 생각은 ‘돌’의 상징에 대한 의미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성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반영하려는 지역 사람들의 바람이 투영되었다. 그것은 병사가 지키는 것 이상의 큰 힘과 정신적 평화를 위한 집단의지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이렇듯 돌로 성을 지키게 하려는 목사의 바람은 이 지역 사람들의 바람이 아닐까.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까지도 수호해줄 영웅적 존재로 ‘돌’을 선택했던 게다.

[기(器)보다 도(道)의 상징성 부각]

일어나 기운을 차려라. 다시 돌을 다듬어라. 그 돌은 천하제일 석수장이의 힘으로 안 되느니라. 그는 기는 있으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돌을 마음으로 다듬는 사람을 찾아라. 그로 하여금 돌 사람을 만들게 하라.

기(器)는 외형적 표상의 물질을 뜻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유형으로 드러난 존재를 말한다. 도(道)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 마음가짐 곧 정신을 말한다. 장영주 작가는 ‘기는 있으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라’라며 아무리 천하 제일의 석수장이일지라도 돌하르방을 만듦에 있어 지역민들의 마음이 안 들어가고 기술만으로 외형적 모습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또 ‘마음으로 돌을 다듬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고 말하며 지역 사람들의 바람을 표출하고 있다. 온 정신을 담아 돌하르방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마음의 신이 되길 바라며 기(器)보다 도(道)의 상징성 부각시키는 이유이다.

[힘과 지혜를 가진 신적 존재]

그로 하여금 돌 사람을 만들게 하라. 살아 움직이며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진 돌사람을 만들게 하라.’
꿈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은 모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허허, 이런 꿈도 다 있구나. 여봐라. 3읍에서 제일 마음씨 고운 사람을 불러 그로 하여금 돌사람을 만들게 하라.”

제주의 3읍성의 사람들은 섬이 지닌 고립성과 섬 주민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양식 속에서 살아간다. 이곳의 척박한 자연환경은 강력한 토속신앙과 설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신들을 지켜줄 신을 만들어낸다. 작가 장영주는 목사를 통해 ‘살아 움직이며 생각하는 힘과 지혜를 가진 돌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설정한다. 제주인들에겐 그만큼 고립된 섬 살이와 외부의 폭력과 압제에 대한 방어기제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작가 장영주는 믿음직스러운 힘과 시련을 지혜롭게 품어줄 수 있는 신적 존재를 염원하는 마음을 설화에 투영시킨 것이다.

[외적·내적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

저 돌 사람을 3읍성 입구에 세워라, 저것으로 하여금 경계를 그으라.”
목사는 돌사람을 세워 그곳이 성내임을 표시하였습니다.

돌하르방은 경계의 상징성을 내포한다. 경계는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한다. 안과 밖의 물리적 공간을 구분하기도 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내면의 공간을 구분하기도 한다. 섬 생활의 시련으로 표출되는 현실세계와 평화를 염원하는 무의식 세계의 경계를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제주인들은 그 경계에 돌사람을 세워 그곳이 성내임을 알리고, 그 경계 안쪽 사람들의 평화와 안녕을 염원했을 것이다. 작가 장영주는 “저 돌 사람을 3읍성 입구에 세워라, 저것으로 하여금 경계를 그으라.”라고 설정하여 외래인이 성문 앞에 다다랐을 때 성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공간적 경계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성 바깥 사람들이 성 안으로 함부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평화와 안녕의 선을 지키려는 정신적 경계의 영역 또한 내포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장영주 작가가 창작한 “돌하르방 설화”는 제주의 흔한 돌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하잘것없는 돌에 정신적 수호자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 정신적 수호자는 기(器)보다 도(道)의 상징을 강조하며,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힘과 지혜를 가진 신적 존재가 되어 자신들의 평화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외부의 폭력이나 압제를 통제할 수 있는 외적, 내적 경계의 상징성을 내포하여 돌하르방을 만들 수 있도록 설정한다. 이처럼 작가 장영주의 <돌하르방 설화>는 돌에서 돌하르방이 되어가는 의미화 과정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고, 돌하르방이 갖는 지역성과 민중성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다고 본다.

# 돌하르방의 발자취를 짚어 온 작가의 제안

장영주 작가 설립,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 회원과 현장탐방. 송미아
작가 장영주가 설립한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 회원과 현장탐방. ⓒ송미아

작가 장영주(아동문학가, 교육학 박사, 문학평론가,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장,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는 40여 년의 돌사랑을 되짚으면서, 돌문화해설사 양성 프로그램 강사를 맡으며 본격적인 돌 문화에 관심 가졌다고 고백한다. 특히 자신의 활동이 언론사 특별 영상으로 방영되고 제주신문사에 특집으로 나가면서 그의 연구는 더 활발해졌다. 돌하르방에 관한 책만 무려 10여권을 집필하는 결실을 보기도 했다.

여러 권을 집필하다 보니 겹쳐지는 부분도 있고, 다듬어지지 않는 날것의 문장들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며 기록한 여정의 가치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잃어가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몸부림한 기록이 다소 투박하다한들 그의 열정과 투지는 고스란히 살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작가 장영주는 마을마다 돌하르방의 특징이 있고 기본적인 모형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상품화된 돌하르방을 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겉모습의 변형은 어쩔 수 없다지만 상품화된 돌하르방을 만들지라도 진실된 가치를 투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설화에서도 강조했듯이, 돌하르방은 외형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혼을 담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마음을 다하는 석수장이들이 혼을 담아 돌을 다듬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자료 제작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설화연구가의 관점에서 아래와 같은 보존 방안도 제안했다.

‘제주목성은 길이가 13km다. 이를 10분의 1로 축소하면 1.3km의 모형이 생길 것이다. 여기에 동서남문을 옛 모형을 짓고 S자 문 밖 길에 돌하르방 4기씩 두 군데 세우는 데 그 크기는 원형대로, 모양도 원형대로 했으면 한다. 모형 제주목성 내에 설문대할망상을 높이 49m로 세웠으면 한다. 설문대할망의 키는 설화에 의하면 한라산을 베개 삼아 관탈섬에 발을 걸치고 잠을 잤다 하니 한라산과 관탈섬과의 거리가 49km로 이를 100의 1로 축소하면 49m가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순순한 키 높이보다 3m가 높음이니 이 또한 명물이 될 게 아닌가? 거기다 센서를 달아 출입할 때마다 설문대할망 노래가 자동 생성된다면 금상첨화리라. 탐라 본연의 제주목성과 탐라 본연의 돌하르방과 탐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상이 한데 어우러져 탐라 선인의 생활모습과 의식주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디즈니랜드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말처럼 한라의 돌하르방 한 쌍을 백두에 세워 이정표를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해외 돌하르방 교류처럼 통일 돌하르방이 세워져 북한도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한라산에 보내온다면 더할 나위 없는 ’통일 돌하르방 편‘이 완성될 것이라고 희망하며 도록책을 마무리했다.

학계나 전문가 집단 못지않게 그는 설화연구가의 길을 걸어오며 돌하르방의 보존 방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그가 펴낸 책 이상으로 천고의 신념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점점 잃어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중요한 가치를 남길 것이다. 또한 원위치를 떠나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돌하르방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부지런히 제주 돌하르방의 원위치를 비정하고, 각 석상의 일련번호를 부여하여 역사적 자료와 교육생을 위한 교육자료로 활용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노력의 가치를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장영주 작가의 발자취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는 메시지가 있다. 잃어버린 돌하르방 1기이다. 200년 가까이 제주성을 지키던 돌하르방 1기가 사라져버렸다. 이 돌하르방은 누가, 언제, 어떻게 가져갔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제주인들이여, 잃어버린 돌하르방을 부디 잊지 않기를...’ 장영주 작가의 마음을 담아 쓴 돌하르방 설화 시 한 편을 남기며 이 글을 갈음한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무자

스산한 바람에 떨어져 구르는 나뭇잎처럼
흩어졌다 모아졌다 이곳저곳을 떠다니다
길을 잃었는지 행방이 묘연한 사람

아들 운, 재물 운, 출세 운
관운의 꿈을 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던 온아한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누구의 애절하고 간절한
소망 앞에 불을 밝히고 계시는지요
애타게 기다리는 나를 잊으셨나요

잃어버린 돌하르방을 찾아주세요

뭉텅한 코에 부리부리한 눈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현무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런 분을 보셨나요, 보호하고 계신가요,
제발 연락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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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향기 2021-12-22 22:23:17
200년동안 제주성을 지키던 돌하르방 1기가 사라졌다는 글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돌하르방을 접할때 느꼈던 따뜻함과 온화한 미소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지희 2021-12-22 19:48:07
제주에서 나고 자라도 왜 돌하르방이라 불리울까? 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번 칼럼으로 돌하르방의 가치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돌하르방의 맥을 짚듯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의 소중한 문화와 유산에 대해 톺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설리반 2021-12-22 14:35:17
'돌하르방1기'를 찾으며 쓴 시는 정말 가슴이 뭉클하며 꼭 찾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어딘가에 잘 계셔서 건강하게 나타나시길~~

만재 2021-12-22 13:22:49
장영주 작가님의 노력이 빛나 보입니다.
돌하르방을 보러 가야 될거 같아요

박현순 2021-12-22 13:16:09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