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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이 숨 쉬는 ‘다공성’의 부산을 꿈꾼다”
“활력이 숨 쉬는 ‘다공성’의 부산을 꿈꾼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1.30 0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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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지역을 말하다] <1> 부산과 건축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은 건축이라는 틀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건축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대를 만들어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은 그 시대의 결정(結晶)이다고 외친 건 건축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시대의 결정을 탐구하려고 그동안 숱한 건축 기획을 하며, 건축가들을 만나곤 했다. 기억 나는 건축가들과의 만남을 들라면 <나는 제주건축가다>를 꼽겠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의 젊은 건축인들이 이야기하는 제주를 담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담았으나, 다른 지역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침 기회가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예총 제주도연합회(회장 김선영)와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회장 문석준)가 공동 주관하는 ‘2021 6대 광역시+제주 건축교류전1211일부터 16까지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도가 아닌, 6대 광역시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지역의 특성을 살펴보고, 각 지역의 건축가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편집자 주]

 

 

한국전쟁, 산, 바다 등 다양한 건축 키워드 존재

백양뜨란채·부산대 인문관 등 경사면 적극 활용

다공성 없으면 도시는 단절 경험할 수밖에 없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사람은 살아본 곳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추억이 되고, 가슴 한 곳엔 몰래 숨겨둔 사랑도 있다. 뭇사람들의 기억은 그렇다.

부산(釜山). 두 글자가 풍기는 냄새는 강렬하다. 우선 ‘자갈치 아지매’를 연상시키는 바다가 떠오른다. 부산을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부르듯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을 말할 때 1순위는 부산이 되곤 한다. 그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단어가 부산임엔 분명하다.

부산에 살아본 기억을 지닌 이로서, 부산의 풍경을 말한다면 한마디로 “이상야릇하다”이다. 왜냐, 낮에 바라본 부산과 밤의 부산이 달라서다. 1980년대 페리를 탈 때, 제주항에서 출발한 페리는 새벽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높은 곳에서 불빛이 아른거리고, 갓 고교를 졸업한 청년은 그 불빛에 매료된다. 청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층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도시의 풍경을 맘껏 상상한다. 하지만 그 상상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스름이 사라지면 부산은 본 모습을 드러낸다. 본 모습은 고층건물의 웅장함이 아니라,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간 집의 풍경이다. 높은 불빛에 한 번 놀라고, 산 정상까지 살림집이 차오른 광경에 또 놀란다.

감천문화마을에서 바라본 부산의 풍경. 미디어제주
감천문화마을에서 바라본 부산의 풍경. ⓒ미디어제주

부산은 이름이 말하듯, 산(山)의 도시이다. 산을 등지고, 산을 도심 곳곳에 안은 상태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배산임해(背山臨海)’라는 말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금정산, 장산, 백양산, 황령산, 구덕산, 승학산 등이 있다. 산이 도심 곳곳을 장악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산과 산 사이에서 살고, 산으로 올라가서 산다.

그렇다면 부산 건축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까. 산이 많고,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근거지를 만들면서 살기에 경사에 맞는 건축환경이 필수이다. 아울러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바다를 끼고 있기에 해변을 살리는 건축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거슬리는 게 있다. 바닷가를 수직으로 꿰뚫는 고층의 향연, 달리 말하면 마천루의 경쟁이다. 제주도 사람이어서 그런지, 거슬린다. 물론 부산에 사는 이들은 고층의 향연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다니엘 리벤스킨트(1946~)가 설계한 해운대 아이파크에서 과연 지역성을 느껴볼 수 있을까.

오히려 김중업(1922~1988)의 부산대 인문관(예전에는 본관으로 쓰였다)이 낫지 않을까. 금정산을 뒤로 두고 설계한 부산대 인문관은 경사가 심한 산 중턱에 앉혔다. 산(山)이라는 부산의 특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금정산이라는 지형에 건축물을 삽입시켰다.

앞서 두 번 놀라게 만든 풍경은 부산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관광객들이 자주 몰리는 미로처럼 얽힌 감천문화마을이다. 그 마을은 한국전쟁이라는 기억의 산물이며, 그 기억을 현대화시켜 보존하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풍경은 부산에서 유독 많이 만날 수 있는 ‘이상야릇한’ 요소이다. 감천문화마을에만 있는 건 아니라, 산을 오르며 집을 만들어낸 부산 곳곳에서 그 같은 풍광을 접하게 된다.

산으로 층층이 겹치는 풍광을 아파트라는 현대물로 표현한 곳도 있다.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백양뜨란채(예전 당감주공2단지)는 급경사를 이룬 지형을 만날 때 표현방식이다. 건물을 하늘 높이 올리지 않고, 경사를 따라서 낮은 건물을 층층이 앉혔다. 이런 모습은 일찍이 안도 다다오의 록코 집합주택에서 만날 수 있었다.

광안리에서 바라본 부산의 모습. 멀리 해운대 아이파크의 모습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광안리에서 바라본 부산의 모습. 멀리 해운대 아이파크의 모습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한국전쟁, 산, 바다, 미로, 마천루…. 부산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건축의 다양한 키워드들이다. 어느 하나가 우세하다고 볼 수 없다. 서로 연관을 맺는다. 어쩌면 부산은 다공성이 필요한 도시다. 다양한 색을 지닌 도시에 다공성이 없으면 도시는 단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산과 바다는 다르다. 미로와 마천루도 다르다. 한국전쟁과 마천루는 섞이지 못할 단어로 읽힌다. 바다와 미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산이 선사하는 건축 키워드는 이렇듯 서로 다르다. 어쩌면 ‘경계’를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경계’를 주의해야 한다.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가장자리로서 ‘경계’와 ‘접경지대’를 구분했다. 접경지대는 구멍이 많은 가장자리이고, 경계는 그 너머로 어떤 종(種)도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한계를 이른다. 경계는 ‘단절’이며, 접경지대는 숨쉬기가 가능한 ‘다공’인 셈이다.

부산은 다양하기에 여러 요소를 숨통 트이게 하는 ‘다공’이 요구된다. 획일화된 도시가 아니라, 여러 요소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경계를 해체하는 활력이 바로 다공성이다. 부산은 원래부터 다공성이 풍부했다. 맞지 않아 보이는 요소들끼리 숨을 쉬는 다공이 흔한 도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공이 아닌 경계가 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특히 하늘로 솟으려 하는 바다 풍광은 이전까지 유지되던 ‘다공성의 부산’을 배격하고,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경계의 부산’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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