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혹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뭔가 혹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 정경임
  • 승인 2021.11.29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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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Happy Song] 제5화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자주 들여다봐야 잘 자란다고 한다. 이는 성장하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잘 자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감성적 혹은 정서적인 해석이라면, 얼마 전 들은 원예학 교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른 아침에 농부가 밭에 가면 농작물이 잘 자라는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이 숨쉴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다. 또한 밤새 잎 끝에 맺힌 물방울 탓에 습도가 높은데, 농부가 스쳐 지나가면서 이슬을 떨어뜨려 습도를 낮추기 때문이다.”아, 농부의 발걸음이 식물의 동화작용을 돕고 높은 습도를 낮춘다는 자연과학적(?) 해석이 필자의 귀에 팍 꽂혔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왜 여지껏 정서적인 해석만 받아들였는지, 이것이 문과 출신의 한계인가 싶기도 하다. 하나의 현상에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건만, 그래서 사실과 진실이 있건만.

# 검은 돌에 기대어 피어난 꽃

서귀포에 살다 보니 제주시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주로 제주공항과 제주대학교만 오갈 뿐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제주시 구좌읍에 일주일간 머무는 손님들을 맞아 사흘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매일 오갔다. 숙소 앞길 건너편에는 종달초등학교가 있고, 그 사잇길로 조금 내려가니 종달스토리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그곳이 게스트하우스인지도 모르고 정원이 너무 예뻐 눈으로 보고 사진 찍고 수선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코로나19 탓에 거의 2년간 운영을 못 하고 있다면서도 부지런히 마당을 가꾸고 있었다. 이곳을 쉬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늦은 가을인지, 이른 겨울인지도 모를 11월의 쌀쌀한 날씨에 색색깔의 꽃을 피워내는 식물 위주로 마당과 돌담을 가꿔놓았기 때문이다.
 

# 식물들이 실하게 자라는 이유

검디검은 돌이 배경이 되어주어서일까. 병풍처럼 둘러쳐진 돌담 위에, 돌담 가운데, 돌담 아래에 앙증맞은 꽃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는 듯 여기저기서 예쁨을 드러낸다. 아기 손톱보다도 작은 꽃이 있는가 하면 아기 눈망울만한 꽃도 있고, 샛노랑, 진분홍, 빨강, 연보라, 진보라 등 11월에 더욱 빛나 보이는 꽃들이 가득하다. 삼다수숲길에서 본 단풍 든 나무들도 한없이 아름답지만, 찬바람 부는 계절에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식물에 더 눈길이 간다.

제주의 빛과 바람 덕분일까, 아니면 마당을 가꾸는 이의 손길 덕분일까. 제주에 사는 이들은 안다, 제주의 빛과 바람이 얼마나 많은 식물들을 잘 키워내는지. 그리고 부지런히 사는 제주 사람들의 발자국에 농작물이든 마당에 피어난 꽃식물이든 사람이 뿜어낸 이산화탄소와 이슬 털이 덕분에 실하게 자란다는 것을 말이다.

# 예쁜 꽃들의 배경이 되어준 돌담

안도현 시인의 <연어>라는 책에는 삶의 이유를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어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라고 덧붙인다. ‘배경’에 대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감싸고 있는 것, 나는 여기 있음으로 해서 너의 배경이 되는 거야.”라고 들려준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11월에 피어난 색색 가지 꽃들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검디검은 제주의 돌담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자신의 존재가 빛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빛나게 해준 배경이 무엇인지, 지금 현재 자신의 존재가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을 찾아보자. 언젠가는 자신의 가슴속에 빛나는 별을 알아챌 때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각자의 인생에서 자기 자신은 가장 빛나고 가장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농부의 발걸음과 호흡, 돌담이 되어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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