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초가를 다루는 사람들은 제주 목수여야죠”
“제주 초가를 다루는 사람들은 제주 목수여야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1.18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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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장 4인을 만나다] ②목공 분야 문화재 홍원표

건축가가 없는 건축물도 많다.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는 건축물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오랫동안 이뤄진 행위의 결과물이다.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로 꼽히는 제주초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건축 관련 기사를 숱하게 쓰면서도 제주초가는 상대적으로 외면을 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외면했던 셈이다. 제주초가를 만드는 무형문화재를 초가장이라고 한다. 지난 2008년 제주도 중요민속자료 188호로 지정됐다. 분야도 목공, 석공, 토공, 지붕잇기 등 4개 분야이다. 분야별 문화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

“다른 지역 목수가 제주초가 건드는 것 이해 안돼”

제주초가를 이루던 가시낭 벌목 허가 안줘 아쉬움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문화재로는 젊다고 해야 할까? 1958년생이니 성성한 이들 곁에 있으면 젊다고도 볼 수 있다. 초가장 목공 분야 홍원표 문화재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리지만(?), 열정이나 실력은 역시 문화재급이다. 그는 초가장 목공 분야 문화재였던 현남인 선생의 뒤를 이어, 제주초가를 다루고 있다.

언제부터 목공과 인연을 맺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릴 때”라고 말한다.

“어릴 때, 초등학교부터였죠. 아버님이랑 현남인 선생님이랑 같이 일을 했어요.”

아버지를 쫓아다녔다. 아버지는 문화재였던 현남인 선생과 나이가 같았다. 그는 두 어른에게서 초가 다루는 법을 배웠다. 마을 일을 할 때 으레 어른 곁에 붙어 다녔다. 아버지가 그를 불러서 간 건 아니었다. 마냥 좋아서 다녔다. 그가 어릴 때, 집안에서 쓸 생활소품은 집에서 만들었다. 홍원표 문화재도 생활소품에 끌렸다. 잠대(쟁기)를 만드는 일, 그런 일을 하며 자연스레 아버지 일을 거들게 됐다. 그렇게 쫓아다닌 아들을, 아버지는 가라고 하진 않았다.

“아버지가 생활도구를 만들 때 지켜보고, 구경 삼아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일을 시키더라고요.”

예전 생각만 하면 ‘가난’만 떠오른다. 어디 가난하지 않은 집안이 없었고, 홍원표 문화재 집안도 그랬다.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해오면, 내다 팔기 일쑤였다. 그걸 팔아야 돈이 됐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나무가 떨어지자 다시 나무를 해오면, 또 내다 팔았다. 돈이 필요해서였다.

“나무를 해오고, 세 번이나 팔고 나서야 우리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해온 나무를 판거죠.”

아버지의 일을 배워서일까. 6남 1녀 가운데 그를 포함한 세 명이 현역 목수로 일하고 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

초가장 목공 분야 문화재 홍원표. 미디어제주
초가장 목공 분야 문화재 홍원표. ⓒ미디어제주

나무는 숨을 쉰다. 어쩌면 나무를 다루는 일은 생명과의 다툼이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집의 생명도 달라진다. 한라산에서 해온 나무는 자귀를 이용해 다듬는다. 자귀는 도끼와 비슷하다. 번자귀로 깎아내고, 다시 손자귀로 다듬는다.

“나무가 젖어 있을 때 깎아내야 잘 다듬어져요. 옆으로 치고, 또 치고…. 나무를 말려서 깎으면 그렇게 못해요. 나무가 젖어 있을 때 모양을 내죠. 나무를 산에서 바로 해오면 하루 8시간 깎으면 다섯, 여섯 개를 깎죠.”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기둥은 5~6개 정도란다. 집 한 채를 지으려면 나무를 다듬는데만 어느 정도 시일이 필요할까. 순전히 예전 방식 기준이라면.

“기둥이 스물 다섯 개. 그렇다면 기둥만 깎는데만 삼사일이 걸리죠. 기둥 위에 중목도 얹는데 기둥의 곱빼기가 더 들어가요. 중목은 80개 이상이니까.”

어림잡아도 최소 9일에서 길게는 12일이 걸린다. 아니,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잘 되질 않는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재료로 쓰는 목조건축은 부재끼리의 연결이 생명이다. 이음과 맞춤이 절대적이다. 나무를 길이방향으로 이어붙이는 ‘이음’이 있고, 나무와 나무를 서로 교차하며 잇는 ‘맞춤’이 있다. 못을 쓰면 그만이지만, 지금도 홍원표 문화재는 이음과 맞춤을 하며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다. 제주엔 특이하게도 ‘고사리기둥’이라는 게 있다. 나무와 나무를 끼울 수 있게 한쪽 나무에 4개의 요(凹) 모양을 만드는 기둥이다. 하지만 간혹가다가 다른 지역 목수들이 일을 하면서 어긋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제주초가를 만드는데 육지에서 온 목수들이 많아요. 제주 전통적으로 집을 만드는 거랑 다르거든요. 엄청 달라요. 한번은 육지 목수랑 다투기도 했어요. 내가 배운 것이랑 딴판이었어요. 나무 두께를 보면서 적당히 깎아내야 하는데, 너무 많이 깎아내는 거예요. 그걸 중단시켰죠. 육지 목수들이 하는 식으로 하면 집이 약해져요.”

홍원표 문화재는 제주초가를 제주 목수들이 손길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제주
홍원표 문화재는 제주초가를 제주 목수들이 손길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제주

맞춤을 할 때 철(凸)자 모양으로 깎아내는데, 뾰족하게 튀어난 부분의 폭이 좁을 경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기둥이 썩어서 집이 내려앉을 수도 있다. 육지와 제주의 풍토가 다르고, 나무도 다르기에 목수가 다루는 솜씨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일 때문에 하루종일 잠이 오질 않더라고요. 잠을 한시간 정도 잤나? 문화재 심의를 하는 위원들은 그런 걸 몰라요.”

그는 그때 문제가 된 부분을 확보해두고, 문화재 심의위원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어쩌면 지역 문화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지역 사람들이다. 특히 지역 문화재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서 건드는 일은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예전 제주초가를 만들 때 쓰던 목재는 가시낭(가시나무)과 노가리낭(주목)이었다. 가시낭은 기둥과 마룻바닥으로, 노가리낭은 서까래 재료로 많이 쓰였다. 이젠 그런 재목을 구하지 못한다. 대신 육지에서 들여온 소나무나 느티나무를 쓰곤 한다. 그 때문일까. 제주초가는 수명이 짧아졌다. 가시낭을 쓰고 싶어도 쓰질 못한다. 이유는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에 가시낭이 자라고 있지만 벌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시낭은 촘촘하고 잘 썩지 않죠. 가시낭은 물통에 그냥 넣어둬도 몇십년은 갑니다. 그렇게 만든 제주초가는 포근해요.”

홍원표 문화재는 초가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산다. 그는 가시낭으로 언젠가는 초가를 짓고 싶은 욕망을 지녔다. 아울러 제주 초가를 다루는 이들은 제주 목수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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