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의 기억을 풀었다”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의 기억을 풀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1.08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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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센터, 11월 9일부터 현상지 그림전
‘청산이도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12월 10일까지
현상지 어르신의 그림.
현상지 어르신의 그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4·3의 아픔이 없는 곳이 제주에 있을까? 숱한 아픔은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제주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주 땅이라면 어디든 꺼내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상지 어르신도 마찬가지이다. 1930년생이니, 올해로 아흔한 살이다. 현상지 어르신도 4·3의 아픈 기억을 지녔다. 꺼내고 싶지 않지만 그는 그림으로 기억을 불러왔다.

4·3트라우마센터(센터장 정영은)가 오는 9일부터 마련하는 ‘4·3기억 그림전-청산이도의 기억’ 그림전이 바로 현상지 어르신의 아픈 기억이다.

현상지 어르신이 4·3을 맞은 때는 초등학생이었다.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했을 신분이었지만, 당시엔 늦은 나이에 초등생인 경우가 잦았다.

1948년 11월. 중산간 마을은 모두 소개되는 명령이 떨어졌다. 현상지 어르신이 살던 노형도 그랬다. 마을은 불탔고, 이호리로 강제 소개된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48년 12월 6일, 이호리 ‘호병밭’에서 큰형이 토벌대에서 총살을 당한다. 노형이 고향인 마을 사람들도 집단 학살된다. 10대였던 현상지 어르신에겐 충격이었다.

그뿐 아니다. 다시 피난을 가다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남동생도, 두 명의 조카도 토벌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살아남은 혈육은 자신과 어머니였다. 10명의 가족 중 8명이 희생됐다.

살아야 한다. 제주에서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목도한 이들은 ‘살아야 한다’는 게 명제였다. 살다 보면 살겠지만, 살려는 의지 또한 있어야 했다.

현상지 어르신은 한라산 정상부 근처인 ‘청산이도’(작은 두레왓 인근)까지 옮겨 다녔다. 생사를 넘나들며 모두 7차례 피난생활을 했다.

그림전 ‘청산이도의 기억’은 현상지 어르신의 처절한 생존의 기억을 풀어낸 손그림이다. 현상지 어르신은 “동시대의 수많은 제주인의 고단했던 삶에 작은 전시를 바친다”고 말했다.

‘청산이도의 기억’은 12월 10일까지 4·3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린다. 개막전은 11월 9일 오전 11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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