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무용지물이던 옥상이 환상적인 놀이터가 되었어요”
“무용지물이던 옥상이 환상적인 놀이터가 되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26 13: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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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10> 놀 곳 만들기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놀이터 만들기 도전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아이들이 놀 공간 마련
아이와 학부모들 의견 듣고 건축가와도 협업
아이들은 노는 게 생명이다. 자연스레 몸에서 놀이가 튀어나온다. 사진은 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을 마음껏 뛰노는 원생들.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아이들은 노는 게 생명이다. 자연스레 몸에서 놀이가 튀어나온다. 사진은 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을 마음껏 뛰노는 원생들.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공간은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한다. 허허벌판을 개척해서 거대한 단지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더 이상 존재가치를 느끼지 않는 공간은 헐린다. 이럴 때 공간의 수명은 인간의 목숨처럼 유한하다.

놀이공간도 사라지고 없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놀이공간이 인간의 생존 공간과 다르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었다가, 언제 있었는지 모르게 사라진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놀이는 어린이들의 창조 영역이어서다. 빈 공간에 아이들은 뭔가를 가져다 놓고, 그들만의 놀이를 한다. 빈 공간이 놀이공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놀이가 끝나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빈 공간이 되곤 한다.

특히 흙이라는 공간은 놀이영역의 끝판왕이다. 아무런 장비없이도 놀 수 있는 공간이 흙이다. 아이들 손에 공기나 구슬이 있다면 놀이엔 더 힘이 붙는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놀이공간은 찾기 힘들다. 다 큰 어른의 기억 한 구석에 자리를 틀고 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만나는 그런 놀이가 바로 순간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라지던 놀이였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고민을 할까. 그게 아이러니다. 놀이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이기에 어른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놀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나.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놀이를 할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고민에서 나왔다. 아울러 어린이들이 놀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도 놀이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놀 공간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자. 놀 공간의 실종은 개발과도 맞물린다. 도심이 확장되면서 놀 장소는 자리를 잃고 있다. 골목이라는 공간도 위험 투성이가 돼버렸다. 아늑해야 할 골목은 차량에 지위를 뺏기면서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변했다. 거기서는 아이들이 주인이 아니라, 차량을 지닌 어른이 주인 행세를 한다. 이러니,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찾을 수밖엔 없다.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가 도심의 사이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놀이터를 창출했다면, 이제는 또다른 놀이영역을 찾는 작업이 대두된다. 아이크가 만든 놀이터는 ‘놀이’와 ‘놀이 밖’이라는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공간으로, 도심에 숨을 불어넣는 장점이 있다. 이럴 때 사이공간은 마치 세포막처럼 도심에 활력을 준다. 하지만 자동차가 활개를 하고 다니면서 그런 공간은 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덜 위협을 받으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길은 없을까.

빈 공간일 때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 모습.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빈 공간일 때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 모습.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주변으로부터 덜 위협을 받는 새로운 공간이라면 뭐가 있을까.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의 학교공간혁신사업에 눈길을 줘보자.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은 2층 건물에 널따란 옥상을 두고 있다. 옥상은 방치된 공간으로, 어느 누구의 애정도 받아보지 못했다.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은 이런 공간을 변화시키는 ‘사고의 전환’을 감행했다.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학교공간혁신사업은 대개 본관을 중심으로 필요한 공간을 찾곤 한다. 학교 도서관, 학교 건물과 건물 사이공간 등이 학교공간혁신사업의 대상으로 지목을 받는다. 제주중앙초는 이와 달랐다. 초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애정을 받던 ‘병설유치원’을 들여다봤다.

제주중앙초 오정자 교장은 병설유치원을 매우 중요한 ‘학교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서는 안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학교에 부임해보니 유치원 아이들이 물과 모래놀이를 할 공간이 없더군요. 유치원 건물 바깥에 아이들이 놀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걸로는 부족해서 비어 있는 옥상에 주목했죠. 여기는 도심이어서 주변엔 동산도 없어요. 아이들에게 놀이는 창의성을 크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옥상을 활용해보자고 했어요.”

1층이던 병설유치원은 학급수 증가로 2층으로 올리며 커졌지만 아이들이 놀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마침 건물을 올리면서 자연스레 생긴 옥상은 새로운 공간으로 중앙초 구성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유치원 공간이 학교공간혁신사업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텄다. 4차례에 걸친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부모들의 생각도 모았다. 놀이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들의 생각도 읽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변신한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 미디어제주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변신한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 ⓒ미디어제주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은 '완두콩놀이터'라는 이름처럼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 옥상은 '완두콩놀이터'라는 이름처럼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옥상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옥상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건축가와의 협업도 이뤄졌다. 옥상에 어떤 놀이를 넣으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도 담았다. 미끄럼틀을 갖고 싶은 욕망, 방방 놀이를 하고픈 아이들, 숨바꼭질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이도 있었다. 심지어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옥상에 등장(?)시킨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에 대한 배고픔을 알기에, 옥상에 모든 걸 담고 싶었나보다.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공간이 될 옥상은 얼마 전 세상에 선을 보였다. 이름도 있다. 학부모들이 낸 여러 이름 가운데 ‘완두콩놀이터’를 점 찍었다. ‘완전 두근두근 콩닥콩닥 신나는 놀이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아이들은 모여라. 칠판으로 만든 벽에 마음껏 낙서를 하면 된다. 방방 뛰고 싶은 아이들도 모이게 만들었다. 허브향기 가득한 꽃동산도 있다. 아이들이랑 놀기 싫으면 꽃이랑 놀면 된다. 나무로 된 데크는 살짝 휘어진 부분도 있다. 노는 재미는 일상적이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한다.

우리 주변엔 이런 공간이 널렸다. 다만 이용하려 들지 않을 뿐이다. 제주중앙초 병설유치원은 새로운 공간을 찾는 재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쉽다면 건물 하중 때문에 푸른 나무를 담지 못한 점이랄까. 그래도 좋다. 아이들이 놀 공간을 찾아내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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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사랑 2021-10-26 16:28:22
빈공간을 놀이공간으로 잘 만들었군요 다른 학교도 이런 공간을 활묭해주세요

제주바람 2021-10-26 18:06:45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하네요~~옥상에 이런 마술을 부리다니~~~^^
제주중앙병설유치원 유아들은 참 좋겠네요~~
부럽습니다♡♡

Sunny 2021-10-26 15:25:40
아이들의 행복이 느껴지는 유치원입니다!!
이런 곳이 모델이 되어 제주에 많은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