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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이상만 없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몸에 이상만 없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13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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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패럴림픽] ⑥배드민턴 이동섭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린 패럴림픽.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해 대회는 4년이 아닌, 5년을 기다려야 했다. 1년을 더 기다리며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선수들은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6일까지 20일간 치러진 열전을 아직도 몸에서, 마음에서 기억한다. <미디어제주>는 ‘나와 패럴림픽’을 주제로 올해 패럴림픽에 참가한 제주 출신 선수들의 도전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배드민턴 복식 은메달, 단식 동메달 목에 걸어

병마과 싸우면서도 배드민턴 라켓은 놓지 않아

“3년 후 패럴림픽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올해 패럴림픽에 출전한 제주 선수는 모두 6명. <미디어제주>는 ‘나와 패럴림픽’을 주제로 올림픽 무대에 섰던 선수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 만난 선수는 배드민턴의 이동섭(52). ‘나와 패럴림픽’ 기획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수이다.

그를 만난 곳은 제주복합체육관 2층. 여기는 배드민턴 코트로 활용된다. 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게도 눈길이 쏠리지만 기자의 눈을 더 자극하는 건 코트 상단에 내걸린 플래카드다. 올해 패럴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따낸 이동섭 선수가 플래카드의 주인공이다. 그래서일까, 비장애인 생활체육 배드민턴 선수들도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한창 취재중인데, 그를 알아본 생활체육인이 “TV 중계를 봤다”며 격려를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동섭 선수는 13년만에 제주도선수단에 값진 메달을 안겼다. 모든 게 그렇듯 쉬운 일은 없다. 어쩌면 그가 패럴림픽에서 가지고 온 메달은 장애를 안기 전에 그의 몸에 밴 생활태도가 만든 결과물이기도 했다.

2004년이었다. 전기기사로 활동하던 그는 트럭이 주저앉는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다.

“사고가 나자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일을 좋아했거든요. 빨리 나아서 일을 하고 싶었죠.”

올해 도쿄패럴림픽에서 메달 2개를 따낸 이동섭 선수. 미디어제주
올해 도쿄패럴림픽에서 메달 2개를 따낸 이동섭 선수. ⓒ미디어제주

서른다섯이던 그는 노동부장관상을 2차례나 받을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였다. 그 나잇대에 장관상 2개는 최연소 기록이기도 했다. 일에 대한 열정을 지닌 이유는 그의 눈앞에 ‘기능장’이라는 타이틀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관상이 세 개일 경우엔 기능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는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다 배드민턴을 만났다.

“사고가 난 뒤 1년이 흐르고, 재활운동을 할 때였어요. 배드민턴 회장이 명함을 주고 갔어요. 무심코 받아서 가방에 넣어뒀죠.”

어느 날 열어본 가방엔 그 명함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와보라”는 응답이었다. 배드민턴 경기를 눈으로 지켜보며 ‘할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가 2008년이다. 그런데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휠체어에 앉아서 격한 운동을 소화하면서 몸에 탈이 났다. 배드민턴을 시작한지 1주일만에 욕창이 생겼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다가 배드민턴 코트가 아닌, 집과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1년이 흘렀어요. 배드민턴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 배드민턴 회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라켓을 잡았죠. 그런데 배드민턴을 연습한지 1주일만에 욕창이 재발했어요. 1년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이번엔 치료만 받던 걸 무시하고, 라켓을 놓지 않았어요.”

욕창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1년간 치료만 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라켓을 꽉 쥐었다. 그에겐 욕창만 찾아온 건 아니다. 아주 추운 해였다고 한다. 두 다리가 얼음같이 느껴져서 열 치료를 받다가 발바닥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피부를 이식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그는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병과 싸우면서 라켓을 그의 손에 꽁꽁 싸맸다. 왜 그랬을까.

“쉬게 되면 다음엔 코트에 나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아니, 안 나올 것 같았죠.”

처음 라켓을 잡았을 때를 그는 떠올린다. 1주일 만에 배드민턴을 접었던 기억이 그에겐 아직도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해내려는 의지는 ‘기능장’이 되고자 했던 그때의 심경과 다르지 않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건 7년이다. 그는 올해 도쿄패릴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은메달, 남자단식 동메달의 성적을 거뒀다. 어떤 이들은 올림픽 무대에 오르는 게 꿈이지만, 그는 메달 2개를 대한민국선수단에 안겼다. 그래도 그는 아쉽기만 하다.

“단식은 세계랭킹 1위였고, 복식은 랭킹 2위였어요. 최소 은메달 2개를 내다봤어요. 다른 사람에게 져본 적이 없거든요.”

도쿄패럴림픽이 예정대로 지난해 치러졌다면 그의 메달색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2020년 여름을 겨냥해 최상의 몸을 만들었는데, 다시 1년을 버티면서 그의 어깨와 팔꿈치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호소했다.

“몸이 안 좋은 상태였고, 원했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끝났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힘들었지만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이동섭 선수는 몸에 이상만 없다면 라켓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미디어제주
이동섭 선수는 몸에 이상만 없다면 라켓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미디어제주

패럴림픽 무대라는 긴장감도 작용했고, 요요기경기장이라는 장소도 그랬다. 그는 지난 2019년 세계오픈선수권대회 당시의 요요기경기장을 기억한다. 에어컨 바람이 그에겐 거슬렀다고 한다. 그때 역시 메달색은 금색이 아닌, 은색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감을 지니고 경기에 임한다. 지구력은 최강이다. 그의 강한 지구력에 혀를 내두르는 이들은 한 둘이 아니다. 때문에 ‘껌’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그의 단식 경기 최장 기록은 1시간 42분이며, 복식 경기는 1시간 44분을 하기도 했다. 대게 70분이면 끝나는 경기를 그는 30분 이상 더 버티면서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든다. 코트 위를 지휘하는 이동섭 선수는 어떤 꿈을 지니고 있을까.

“몸에 이상만 없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3년 후 패럴림픽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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