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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생존수형인·유족 국가 상대 배상청구, 사실상 패소
제주4.3 생존수형인·유족 국가 상대 배상청구, 사실상 패소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10.07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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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4.3 생존수형인과 유족 등 39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이 사실상 패소하는 결과가 나왔다.

'제주4.3 생존수형인이 겪은 명예훼손, 가족들의 희생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이뤄진 일련의 결과일 뿐, 별개의 불법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다.

특히 제주4.3 희생자 가족들이 겪은 희생에 대해선 원고 측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됐다.

이에 소송을 제기한 39명 원고 중 10명 내외만이 손해배상금을 수령하게 됐다.

손해배상금 기준 또한 일률적으로 판단됐다. 개인의 피해 정도, 유가족의 고통의 정도가 사실상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제주4.3생존수형인 및 유가족들과 4.3도민연대 관계자 등이 2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배상청구 소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4.3생존수형인 및 유가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이 사실상 패소했다.
사진은 2019년 11월 29일, 원고 측과 4.3도민연대 관계자 등이 국가배상청구 소장을 접수한 날.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 미디어제주

이와 관련,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생존수형인과 유가족 등 39명은 2019년 11월 29일, 국가를 상대로 '재심무죄판결에 따른 국가배상청구' 소장을 접수한 바 있다.

2021년 10월 7일 이뤄진 재판은 이에 대한 결심이다. 소장이 접수되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판결이 이뤄지게 됐다.

당초 원고 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산정한 위자료 요소는 다음과 같다. ▲위법한 구금 ▲체포 및 수사 과정에서 구타, 고문, 위협(총살) 등으로 인한 후유증 ▲구금 과정서 입은 상해 ▲함께 구금된 아이의 사망 ▲당시 부모 및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피해 ▲출소 이후 전과자 신분으로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한 명예훼손 등이다.

청구 금액은 생존수형인 1인당 적게는 3억원, 많게는 15억원까지. 유가족을 포함한 원고 39명의 총 청구금액은 103억원이었다.

그리고 2021년 10월 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기준을 적용, “희생자 본인에게 1억원, 배우자 5000만원, 자녀 1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명시된 금액이 전액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원고가 기존에 수령한 형사보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희생자 A씨가 형사보상금으로 기존에 7000만원을 수령했다면, 이번 재판으로 인해 3000만원을 추가로 배상 받게 된다.

이와 관련, 2019년 8월,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불법 군법재판으로 옥에 갇힌 제주4.3 생존수형인과 희생자 18명에게 총 53억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형사보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1년 8월에는 제주4.3 생존수형인 김두황(93) 씨에게 형사보상금 1억 5462만원 지급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김 씨는 간첩 누명을 쓰고 일반재판을 통해 죄없이 옥에 갇혔다.

이들 모두 국가 공권력에 의한 불법행위가 인정되며,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7일 재판부도 인정했다. 재심 사건에서 인정된 △영장 없는 불법 구금 △가혹 행위 △형무소 구금 등에 대한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또한 인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이미 결론이 내려진 판례를 언급한 것에 불과할 뿐. 이날 재판의 관건은 ‘수형인이 겪은 명예훼손, 그 가족이 겪은 피해 사실 등을 재판부가 별도의 손해배상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실상 원고의 패소 결정을 내렸다. 원고 측이 제기한 청구사실 중 상당 부분을 ‘국가가 행한 별도의 불법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원고의 청구사실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고문 등의 가혹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재심 사건에서 국가배상책임으로 인정받은 사실이 있어 별도의 불법행위로 인정하기 어려움.

- 억울한 옥살이로 전과자가 되어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점,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재심 사건에서의 국가배상책임으로만 인정. 별도 불법행위로 인정 어려움.

- 제주4.3 당시 원고들이 생활하던 집을 불태우고, 출소 이후 불법 사찰을 한 점: 증거 부족.

- 제주4.3 수형인이 체포, 구금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겪은 희생 : 증거 부족.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재심 사건에서의 국가배상책임에 해당.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을 들어 원고 측의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이날 재판부의 판단에 원고 측은 강하게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송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 같은 판결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피해자의 오랜 고통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39명 제주4.3 생존수형인과 유족들의 불복 여부에 귀추가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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