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무대에 선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려”
“패럴림픽 무대에 선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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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패럴림픽] ④배드민턴 강정금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린 패럴림픽.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해 대회는 4년이 아닌, 5년을 기다려야 했다. 1년을 더 기다리며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선수들은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6일까지 20일간 치러진 열전을 아직도 몸에서, 마음에서 기억한다. <미디어제주>는 ‘나와 패럴림픽’을 주제로 올해 패럴림픽에 참가한 제주 출신 선수들의 도전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생활체육으로 스포츠에 눈뜨며 다양한 종목을 경험

2004년이후 배드민턴과 인연2015년부터 국가대표

“내년에 항저우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에 도전할 것”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세 살 때 장애를 앓았다. 어쩌면 운명이다. 어릴 때는 바깥 생활은 없었다. 엄마가 업어주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쉰셋이 된 배드민턴 강정금 선수(제주특별자치도청 직장운동경기부)는 엄마가 업어주며 지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런 그가 이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로서, 배드민턴 라켓을 쥐고 코트를 누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이동이 더 힘들었죠. 바깥에 나서기 시작한 건 열한 살 때부터였어요.”

그는 천천히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스포츠가 눈에 들어왔다. 서른쯤이라고 그는 말한다. 생활체육으로 휠체어육상을 처음 접했다. 펜싱도 했다. 펜싱은 생활체육인이 아닌, 선수로 뛰었다.

“펜싱 선수로 3년을 활동했어요. 그때는 마흔을 갓 넘겼을 때죠. 그러다 운동을 접었지만 좀 더 즐기면서 운동할 스포츠를 찾기 시작했어요.”

선수들에게 운동은 제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강정금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로 활약하며 세상을 만났던 그에게, 운동을 접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몸이 근질근질했다. 늘 운동을 해오던 그였기에 다시 그에게 맞는 운동을 찾았다. 배드민턴이 그를 호출했다.

2015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강정금 선수. 그는 자신이 목표로 했던 패럴림픽 무대에 오르는 꿈을 이뤘다. 미디어제주
2015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강정금 선수. 그는 자신이 목표로 했던 패럴림픽 무대에 오르는 꿈을 이뤘다. ⓒ미디어제주

“배드민턴은 너무 재밌어요. 배드민턴은 성취감은 물론 쾌감이 있어요. 움직이면서 셔틀콕을 받아내는 스릴이 넘치는 스포츠죠.”

배드민턴 라켓을 쥔 것은 2004년부터였다. 처음엔 선수로서 라켓을 쥔 건 아니었다. 즐기면서 할 운동을 찾았고, 그게 배드민턴이었을 뿐이었다. 땀을 흘리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그 자체에 희열을 느꼈다.

그런 그를 생활체육인으로 머물게는 하지 않았다. 다시 선수로 스포츠를 접하기 시작했다. 결국엔 배드민턴 국가대표라는 자리도 그를 위해 남겨뒀다. 국가대표가 된 건 2015년부터였다. 그는 태극마크를 단 그해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가대표가 된 그해에 영국에서 배드민턴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죠. 여자복식에서 은메달, 단식에서 동메달을 땄어요.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느낌을 한마디로 한다면 ‘최고’죠.”

해가 갈수록 숫자 나이는 많아지지만 국제대회에 나서는 일은 늘 보람을 준다. 메달을 따내는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 도쿄에서 열린 패럴림픽은 장애인 배드민턴 선수들에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처음으로 배드민턴이 패럴림픽 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그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 패럴림픽 무대에 올랐잖아요. 스타트를 처음 끊었으니 ‘가문의 영광’이죠. 사실 패럴림픽은 아무나 출전을 하는 대회는 아니잖아요. 일본 도쿄의 요요기경기장에 들어섰을 때의 웅장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저절로 뛰어요. 세계 곳곳의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는 경기를 펼쳤어요. 그땐 정말로 ‘세계무대에 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올해 패럴림픽에 출전한 배드민턴 국가대표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포인트를 따내며, 아무나 오르지 못하는 패럴림픽 무대에 섰다. 그래서인지 그가 바라보는 올림픽은 소박하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듯이, 대회에 참가한 자체가 감격이었다.

“사실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쿼터를 따내는 게 제 목표였어요. 참가 자체에 더 큰 목표가 있었어요. 패럴림픽을 앞둔 올해 5월 스페인에서 대회가 열렸는데, 마지막으로 포인트를 딸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 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면서 꿈을 이루게 됐죠.”

패럴림픽 입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요요기경기장 코트에서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치른 자체가 더 값졌다.

강정금 선수는 내년에 있을 아시안게임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미디어제주
강정금 선수는 내년에 있을 아시안게임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미디어제주

강정금 선수는 내년 한번의 더 기회가 있단다. 국가대표로서 아시안게임에 도전할 꿈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체력을 키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코트에서 그의 주무기는 드롭이며, 체력도 그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만들었다. 일주일에 세 차례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체력을 다진다. 경기가 없을 때는 늘 체력을 다지며 다음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장애인 선수들을 대하는 장애인체육회와 도청직장경기부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체육회나 감독, 스텝들이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있어요. 그들의 열정이 너무 대단해요.”

코트로 넘어온 셔틀콕을 재빠르게 받기 위해 그의 발인 휠체어가 코트를 누빈다. 그는 주무기인 드롭으로 상대 코트에 셔틀콕을 떨어뜨린다. 패럴림픽 무대에 오르는 꿈은 달성했다. 이젠 그가 해보지 못한 아시안게임의 코트에 서는 일이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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