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비추다
가난한 살림에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 고깃국을 대접하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책 속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리고 ‘고려장’ 이야기를 역사로 접했다. 약간의 충격이 동반되었고, ‘고려’라는 나라의 이미지까지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효’를 중시했던 고려에서 가능한 일이었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고려장’이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한국 비하와 관련하여 역사 왜곡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졌지만, 어린 시절 오랫동안 고려는 내게 그리 긍정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개인의 정서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 기억이 추억이 되었든 상처가 되었든 내 삶에 스며들어 알게 모르게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역사란 과거에 대한 의미 있는 기억이다. 그 기억을 어떻게 갖고 있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긍정적인 기억이 많을수록 현재의 삶 또한 긍정적일 확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스토리텔링으로 역사 읽기
시대나 사건을 외워야 하는 세대들에게 역사는 지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공부였다. 지금도 교과서를 통해서 역사를 먼저 접한 아이들에게 역사는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는 암기의 대상이다. 하지만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인과관계를 살피고 스토리를 중심으로 역사를 알게 되는 경우라면 다르다. 이 경우에 역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역사접근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몰입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역사적 배경지식을 터득하기 위한 독서가 필요하다.
# 학년에 따른 역사 읽기 방법
초등 중학년(3‧4학년)의 인물 읽기
초등 중학년에게 역사 읽기는 일반적인 책 읽기에 비해 다소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동화 속에서 접했던 가상현실과는 또 다른 시대와 배경이, 전혀 다른 낯선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역사 읽기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도를 높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인물을 통한 역사 읽기다. ‘단군신화’를 통해서 고조선을, ‘주몽신화’나 ‘광개토대왕’ 등을 통해서 고구려를 들여다봄으로써 이야기가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인물 중심의 책 읽기는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주몽이 졸본 지방에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을 통해서 건국의 배경과 왕의 자질, 그 시대의 풍속, 문화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인물을 통한 탐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난 후에 역사적 사건을 접하게 되면, 인물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이야기 속의 사건들과 연결 짓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사건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초등 저학년인 경우에도 그림책을 통해 김홍도의 ‘풍속화’나 《삼국유사》 속의 일화를 통해서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는 것도 역사적 인물을 만났을 때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초등 고학년(5‧6학년)의 역사적 사건 읽기
인물 읽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된 후에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살피는 통사 중심의 책 읽기가 필요하다. 큼지막한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살피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는 책 읽기를 통해 적극적인 독서가 이루어지게 된다.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있다. 오랜 시간 쌓인 백성들의 불만이 반란과 전쟁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건을 유발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따져 읽는 책 읽기는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과 통찰을 갖게 하며, 관심 있는 사건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당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착취,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벌어진 청일전쟁과 일본의 간섭 등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 결코 우발적이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이는 관심 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고 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책 읽기가 가능해지게 한다.
중학생의 역사 읽기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어느 정도 통사적인 접근이 이루어진 중학생이라면, 관심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보는 시도도 필요하다. 학교 교육과정도 단순한 지식으로서의 역사적 서술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관점의 서술을 요구하는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교육과정에서 강조되고 있는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나 학습을 통해서도 결과물을 얻기까지 조사 과정에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하고, 깊이 읽기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고 중학생들과 토의를 한 적이 있다.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3.1운동의 의미와 그 희생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를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이들은 제각각, 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그들의 행적이 결코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절대 부모님이 만세를 부르다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게 적극적으로 말리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한 친구는 3.1운동이 끝날 때까지 집 안에서 꿈쩍도 안 하겠단다. 반면에 자신은 못 할 것 같아서 이를 실행한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대단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난감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반응이었다.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이 가치 있어지는 시간, 그들의 선택을 평하기에 앞서 어린 유관순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열여덟, 부모의 그늘 아래서 학업에 열중할 시기. 그녀가 만세를 부르다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하는 사이 가졌을 수많은 공포와 불안, 두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의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그녀가 가졌을 감정에 공감했고,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생이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그녀의 값진 희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결코, 자신이었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삶의 흔적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숙연해졌고, 지금의 환경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후에 유관순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저 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독립열사가 아니라, 어린 유관순을 떠올리며 그녀의 희생에 대한 가치와 감사함을 함께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 역사적 상상력이 주는 재미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카(E.H Carr.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화의 주체는 역사가이며, 역사가의 관심과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의 해석에 대한 관점도 독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래전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누구나 영웅이라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는 그가, 난중일기에서 보이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전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홀로 계신 어머님을 걱정해 밤에 몰래 쪽배를 타고 집에 다녀와야 안심이 되는 사람, 이순신의 일기를 접하면서 오히려 그의 평범함이 비범함보다 더 돋보였던 것 같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내게 이순신은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으로 더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나만의 해석이며, 나름의 기준이 된다. 김구가 일본인 장교를 죽이지 않고,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처럼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재미다.
#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다
오래전에 종영된 역사 드라마를 즐겨보는 친구가 있다. 자주 봐서 스토리를 보는 재미가 덜 할 만한데도 재미있단다. 완전한 팩트도 아닌 스토리 중심의 드라마가 이 친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친구에게 드라마 속의 스토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있다. 가끔 어떤 문제에 관한 의견을 물을 때 그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다. 말끝마다 ‘대조영’은, ‘왕건’은 하고 말문을 열고, 그 시대 사람들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빗대어 설명하며, 현실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명쾌한 해답을 내놓곤 한다. 그리고 가끔 역사책 추천을 주문하며 책 읽기를 시도하는 걸 보면 이 친구에게 역사 읽기는 현재에 대한 해석이며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이미 그에게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를 보는 창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초록을 머금은 나뭇잎 하나에 감사함을 담아 바라보는 사람과, 그저 나무일뿐이라고 의식 없이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간극은 크다. 역사는 지나간 일이라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속에서 현재의 답을 찾고,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의 설계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이 누군가의 희생과 시대정신의 결과물이라면, 부채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인비의 말을 빌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오늘이다.
김미자 .....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평생교육원 전문강사
한우리서귀포지부 지부장
독서지도사, 부모교육 강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활동가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제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논문“동기유발을 통한 효율적인 독서지도 방안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