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욕망을 다스리는 매개체가 필요한 시대
욕망을 다스리는 매개체가 필요한 시대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7.06 13:18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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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아의 독서 칼럼] <2>
지나친 욕망 추구에 따른 비극, 광령리 <매고할망> 전설

# <매고할망> 전설은 인간의 애욕이 부른 비극

나이가 든다는 걸 증명하는 것인지, 요즘 들어 자꾸만 흙을 만지고 싶은 욕망에 빠져든다. 하여 주말이면 난 어김없이 시댁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꽃모종을 심네, 씨앗을 뿌리네, 꺾꽂이까지 과하다 싶게 욕심부린다.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도 마치 연애하는 것처럼, 그들이 어떻게 움트고 자라는지 그립고 눈에 밟힌다. 이 흙에 대한 내 욕망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또 어디까지일까.

욕망을 상실한다는 건 삶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듯 인간의 삶에 있어서 욕망은 남녀노소 누구나 지닌 감정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욕망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그로 인해 겪어야 할 부정적 요소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적절한 욕망은 인간의 삶에 활력을 주지만, 지나친 욕망 추구는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먹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신체의 건강이 무너진다. 부에 집착할 경우는 분배로 인한 가족 간의 비극이 생긴다. 사랑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면 애욕을 낳고, 복수의 활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애월읍 광령리 비신굴에 얽힌 전설 ‘매고할망’ 역시 지나친 욕망 추구에 따른 비극으로, 욕망을 다스리는 매개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매고할망 줄거리

고려 시대 말엽, 제주도 애월읍 광령리 인근 ‘비신굴’에는 아리따운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마을에는 그 처녀를 짝사랑하는 무지렁이 총각도 있었다. 그러나 처녀는 부모님의 소개로 이웃 마을 총각에게 시집 가버렸다. 그 처녀가 바로 ‘매고할망’이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무지렁이 총각은 그만 활극을 벌이고 말았다. 매고할망 남편을 죽이고 시쳇말로 암매장했다. 남편이 사라진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마을주민들이 모여들어 남편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매고할망은 과부가 되고 말았다.

그 뒤 짝사랑하던 여인과 결혼에 성공한 무지렁이 총각은 아들 일곱 형제를 낳아 그런대로 늙어가고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부인의 무릎을 베고 마당을 향해 누운 무지렁이 남편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생기는 거품을 보고 히죽히죽 웃었다. 부인이 웃는 이유를 물었다. 지금껏 살았는데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던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 남편을 죽인 사실을 말했다. 부인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전 남편의 시신이 있는 곳을 묻고 확인했다. 그리고 흩어진 뼈를 모아 관가에 고발하며 무지렁이 남편과 아이들을 다 죽여달라고 했다.

남편과 자식을 다 죽인 부인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 하나를 남긴 후 자신의 집을 흙으로 덮고 무덤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배채기(질경이) 기름을 한 허벅 짜서 굴속으로 기어들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지름(기름)으로 붙인 불이 꺼지면 내가 죽은 줄 알고 구멍을 막아주시오.” 하고 부탁했다. 불은 꼭 석 달 열흘을 타오르다가 꺼졌다. 비신굴 사람들은 부인의 소원대로 굴 입구를 막아 버렸다. [출처: 1990, 광령약사]
 

# 매고할망의 어원과 유래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 매고할망과 비슷한 마고(麻姑)나 마고 할미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흔한 편에 속한다. 매고나 마고는 원래 중국의 여신 이름에서 전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나라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노파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묻혀 죽은 노파라는 뜻에서 매고(埋姑) 할멈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디지털 제주 문화 대전/ 제주시 향토 문화 대백과/ 현승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시편에도 짧게나마 마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중국의 신선전(神仙傳)에 기록된 마고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1627년(인조2) 홍익한의 <조선항해록>에서도 연행 길에 중국 마고 서녀의 화상을 본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국문소설 <숙향전>과 무가 <바리데기>에서도 마고 할미의 형상이 나타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 전설의 여인을 ‘매고’라고 하는 이유는 “전 남편의 원수를 갚았기에 열녀라 할만하지만, 자기가 낳은 자식마저 모두 죽인 것은 너무 매정하다.”라고 하여 “매정한 할머니”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스스로 “묻혀버린 할머니”라서 매고(埋姑)라 불렀다는데 모두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혹자는 이 전설이 고려 중엽 때의 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목민관이라든지 관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는 거로 봐서 고려 말엽으로 주장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출처: 1990, 광령약사]

경상남도 창원 진동마을에서도 매고할망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진동마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아내가 남편을 죽인 범인으로 확신하고, 원수를 갚기 위해 재혼하는 것으로 나온다. 송나라 고문호(高文虎)가 지은 『요화주한록(蓼花洲閒錄)』에도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등장인물의 욕망 추구에 따른 비극

(남편의 욕망으로 인한 비극)
욕망을 누르지 못했던 무지렁이 총각은 여인의 전남편을 죽여 암매장했다. 그리고 짝사랑하던 여인과는 결혼에 성공하였다. 매고할망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전남편을 죽이고, 결혼하여 일곱 아들을 낳고 늙어가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남편은 소유욕이 강한 인물이다. 그 애틋한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했더라면 복수의 활극을 벌이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방식에서 남편의 지나친 애욕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매고할망의 욕망으로 인한 비극)
남편과 자식을 다 죽인 매고할망은 복수심의 욕망을 추구한다. 그녀의 욕망은 지나친 복수심으로 죄없이 태어난 아들들까지 모두 죽인다. 이는 남편만이 아닌 자식까지 모두 복수의 대상으로 여겨 죽이는 모티프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성애의 어긋난 욕망을 드러내면서 모두가 파멸로 가는 닫힌 모티프를 제시한다. 아들들이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죄의식을 지닌 채, 또 손가락질당하면서 살아야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고할망은 아들들이 살인자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이 선택은 아들들이 속죄할 기회마저 차단해버린다.
 

# 지나친 욕망 추구에 따른 비극의 원형을 제시한 현대 소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김동인의 <감자>와 <배따라기>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파멸에 이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 <감자>의 ‘복녀’와 <배따라기>에서 ‘그’의 욕망은 <매고할망>에서 주인공의 욕망과 공통된 주제를 드러낸다.

<감자>의 복녀는 환경에 의해 도덕성 상실 후 묘한 흥분과 희열을 느끼면서 동물적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른다. <배따라기>의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나치게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소유하려 하고, 지나친 소유욕은 아내와 아우가 쥐 잡는 광경을 오해하게 된다. 결국 ‘그’의 지나친 욕망은 부부간, 형제간의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을 부르고 만다.

김동인의 두 작품에서 볼 때, ‘복녀’와 ‘그’ 두 사람 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다. 이들 두 사람은 과도한 욕망 추구에 따른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매고할망> 전설의 ‘남편’과 ‘매고할망’ 역시 자신의 지나친 욕망에 집착하여 끝내는 모두가 파멸하는 비극을 맞는다.
 

# 매고할망 전설은 인간 본성의 근원 제시

‘매고할망’ 전설의 모티프는 시, 소설, 스토리텔링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원형으로 등장한다. 1990년 광령1리에서 발행한 광령 약사에 의하면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광령2리 관광대 근처인 그곳에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아쉽게도 비신굴을 찾아볼 수 없다.

매고할망 전설은 인간의 본성과 과도한 욕망 추구로 인한 파멸이라는 주제를 던져준다. 이처럼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보편성을 띤 주제는 1920년대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외에도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예술작품에 투영된다. 고려 중기 문인인 이규보의 詠井中月(영정중월)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성찰하는 한시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인간의 욕망은 허망한 것이며,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승이 달빛을 탐내
荓汲一病中(병급일병중)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으리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따라 비는 것을

달을 병 속에 담아 온 줄 알았으나, 병을 기울이니 달도 함께 없어진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 또한 채워지는 듯하나 허망하게 다시 비워져 끊임없이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출처: 한우리 고등 교과문학맥잡기 교재]

이규보는 이 시를 통해 우리에게 탐욕과 애착은 허무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울러, 매고할망 전설의 ‘지나친 욕망 추구에 따른 비극’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 추구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욕망을 다스리는 매개체가 필요한 시대

현대 사회는 필요 이상의 욕망을 창출하여 경쟁을 부추기고, 우리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자극하여 과도한 욕망을 추구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능적인 감정과 욕구를 적절히 추구하고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를 기르려면 욕망을 다스리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매개체는, 자신이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을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취미생활 또는 배움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자주 긍정하다 보면, 적절하게 욕망을 다스리는 지혜의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최근 나의 경험으로 봐도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둘러싼 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을 거부하기도 힘들었지만, 때론 소중한 것들을 모두 단절해 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의 일부를 조절해주는 매개체를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흙’이었다. 코로나 시국에서 비대면의 임계점은 일터를 숲으로, 오름으로 장소를 이동시켜 주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러면서 흙냄새, 숲 냄새, 들꽃의 미소가 나를 반겼다. 이렇게 자연은 각박했던 마음에 물을 주었고 여유를 되찾아줬다. 그 뒤 흙의 끌림에 따라 바지런히 시댁 마당을 찾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절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어떤 매개체를 통해 사랑의 싹을 틔우고,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기회 또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제 막 사랑을 주기 시작한 시댁 마당의 흙과 잡초, 그리고 꽃들……, 어쩌다 식구가 되어버린 길냥이까지 어긋났던 나의 욕망을 다스려주는 매개체이며 연인이다.

 

송미아 .....         

한우리 제주지부장
독서지도사양성과정 전문강사
독서지도사, 부모교육 강사
온라인설화문화연구소 활동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논문
“소그룹과 가정에서의 독서지도를 통한 독서습관의 형성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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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영 2021-07-13 09:14:16
진정한 욕망? 어렵지요~
알아차리고 내려놓기를 연습해야겠네요~

푸름이 2021-07-12 09:54:53
매기할망전설을 처음 들어봅니다. 자세한 분석을 해 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댁마당도 긍금하네요^^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남겨주세요^^

유수화 2021-07-08 11:41:25
글을 읽는 동안 "지나친 욕심은 귀신도 싫어한다"라는 옛말이 생각났어요. 오늘도 나의 하루를 욕심없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다은 2021-07-07 17:58:04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의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에 어떤 게 있을 지 고민하게 되네요!

잼잼 2021-07-07 16:00:12
진동을 자주 오가면서도 잘 몰랐던 내용이네요.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것만이 욕망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의 사상을 관철하는 것 또한 욕망이라는 넓은 해석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욕망과의 싸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고유의 충과 효, 열에 대한 관념도 세대를 관통하며 지켜야할 덕목으로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욕망의 콜라보는 본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주변도 파괴시키기에 욕망을 적절히 조절해야한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청명했던 하늘이 요몇일새 장맛비를 억수같이 쏟아내고 있네요. 알다가도 모를 대자연의 변덕은 아무런 욕망이 없기에 비가 개거든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하나인듯 맨발로 흙을 좀 밟는다면 저의 욕망도 희석이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