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한 책은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책을 보며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방법도 배워”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코로나19가 취재도 주춤하게 만든다. 기획 ‘온 가족 맛있는 책읽기’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일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책은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려 들려고 행동하면 코로나19가 막아서곤 했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도 며칠 전부터는 덜하다. 다행이다. 약속대로 책을 읽는 가족을 만날 수 있으니.
처음으로 소개할 가족은 아라초등학교 5학년 한진호 가족이다. 아울러 진호네 가족이 읽은 책 소개도 곁들인다.
진호는 농사를 짓는다. “초등학생이 무슨 농사를?”이라며 의문을 표하겠지만, 텃밭을 잘 가꾸는 5학년이다. 진호는 기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가 “아침에 채소에 물을 주면 잎이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자도 잘 모르는 내용이다. 진호는 정말 농사꾼인가보다. 이른 아침에 채소에 물을 주게 되면 잎에 물방울이 맺히고, 거기에 햇볕이 쏟아지면 물방울이 렌즈작용을 하게 된다. 잎이 타는 이유이다.
진호만 텃밭을 가꾸는 건 아니다. 진호 가족들이 텃밭을 가꾸는 주인공이다. 엄마도 텃밭에서 채소를 괴롭히는 해충을 잡고, 할머니는 밥상에 올릴 채소를 애지중지 키운다. 이렇게 된 배경엔 책이 있다. 진호네 가족은 텃밭을 분양받고, 진호가 땅과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알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손에 잡힌 책은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였다.
진호네 가족 모두 책을 끼고 산다. 할머니는 새마을문고에서, 엄마는 중학교 사서도우미로 활동중이다. 쌍둥이 언니도 책을 열심히 읽는다. 책 읽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될 수밖에 없는 가족이다. 진호네 가족이 미디어제주와 한우리제주지역센터의 ‘온 가족 맛있는 책읽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책 읽는 프로그램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진호는 책을 통해 이랑과 고랑도 배웠다. 농기구도 만져봤다. 곤충이 하는 역할도 책을 통해 더 잘 알게 됐다고 한다. 진호 가족이 가꾸는 텃밭은 친구의 아빠 땅이란다. 그 텃밭엔 여러 가족들이 참여하고 있다. 진호네 텃밭은 고추, 상추, 가지, 파, 옥수수, 토마토, 강낭콩 등이 자란다. 텃밭을 가꾸는 재미도 있고, 밥상에서 먹는 재미도 있다. 진호 이야기를 들여볼까.
“직접 키우고 따서 먹으니까 좋아요. 처음 텃밭을 가꿀 땐 돌이 많아서 힘들긴 했지만 쇠스랑으로 돌을 골라냈어요. 아침 일찍 채소에 물을 줄 때는 잎이나 줄기보다는 땅 아래쪽에 줘야 해요. 잎이 타거든요.”
진호네는 실제 책을 통해 농사를 배운다. 그래서일까. 진호 엄마인 이문실씨는 책 읽기를 늘 강조한다. 똑똑해질 수 있다면서.
“애들에게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해요. 집에서 책 이야기를 많이 하죠. 중학생인 쌍둥이들은 자신이 읽은 책을 신나서 이야기하곤 해요. 저는 중학교 사서도우미로도 일하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쌍둥이가 말한 책을 권하기도 하죠.”
책은 이렇듯 파급효과를 지녔다. 한사람이 읽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힘이 책에 있다. 쌍둥이를 돌보다가 딸의 집에 함께 살게 된 할머니 황호순씨에게도 책은 남다르다. 할머니에겐 추억을 선물한다.
“책 속에 추억이 있어요. <할머니의 보릿고개>라는 책은 추억에 젖게 했어요. 배고픈 시절이 떠올랐거든요.”
올해 여든인 황호순 할머니는 책 덕분에 글을 더 자주 쓰게 됐다고 한다. 책 내용을 필사하곤 한다. 그러면서 “요즘 역사책이 잘 나온다”며 거들기도 했다.
책을 읽는 진호 가족. 농사를 모르던 할머니도 텃밭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자신의 행동이 책과 연결되는 힘을 진호네는 배운다. 농사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됐다는 진호에게 제일 좋아하는 농기구를 물어봤다. ‘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랑을 만드는데 그만큼 노동력을 덜게 만드는 농기구는 없으니까. 그것도 책의 힘이다.
책 소개 :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진호네가 추천한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무당벌레가 화자가 되어 가을에 거두는 열 가지 텃밭 작물의 생태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겐 그림이 담뿍 담겨 있어 땅에 대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좋고, 고학년에겐 실제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실제 괭이를 들고, 쇠스랑을 만지는 진호처럼.
농사를 짓는 일은 세상 온갖 이야기다. ‘짓는 일’은 단순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창작’의 개념도 녹아 있다. 더더욱 농사는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기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귀한 활동이다.
고랑과 이랑. 예전이야 널린 게 밭이었기에 익숙한 단어였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그 단어를 안다는 게 더 특이하다. 진호는 실제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봤기에 더더욱 그들 세계에서는 특이한 아이가 아닐까. 책은 땅을 갈아서 흙을 쌓아 만든 게 이랑이며, 거름이 있더라도 이랑에 너무 많이 뿌리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랑을 만들었으면 씨앗을 뿌려야 할텐데, 책은 그림으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고추는 모종을 옮겨심고, 당근은 씨앗이 촘촘히 놓이도록 줄뿌림을 할 것을, 호박은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채운 뒤에 한 뼘 간격으로 호박씨를 심도록 한다.
책을 읽어주는 무당벌레는 싹이 올라오고 난 뒤에 벌어질 일도 알려준다. 그게 뭘까. 바로 풀이다. 풀은 농사의 적이다. 김을 매지 않으면, 풀인지 채소인지 알 수도 없다. 무당벌레는 다행히 풀이 작물보다 더 크게 자리기 전에 뽑으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면서 풀 종류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나물로 먹는 풀도 있고, 약으로 쓰는 풀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풀이 훌쩍 커버리면 농사가 되지 않는다고 단단히 일러준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진호네 텃밭의 채소들도 그날을 기다리며 큰다. 책은 채소를 갉아먹는 벌레의 종류도 그림으로 설명한다. 농사에 도움을 주는 곤충과 그렇지 않은 곤충을 콕 집어서 말한다.
세대간의 소통이 부족해지는 요즘 텃밭이라고 하는 어쩌면 무척이나 힘든 농사의 일종인데 세대를 거쳐 지혜를 전달받고 그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얻기까지 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이 매개가 되어 현실생활에 흥미를 주게되고 또 모르는 부분까지 채워주게 되니 얼마나 좋은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