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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6.11 0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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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말하다1]

제주YWCA, 2021 평화아카데미: 박준영 인권변호사 강연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세상,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평화를 말하다' 기획은 작은 의미에서 말하는 '전쟁이 없는 상태'의 평화부터, 넓은 의미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화' 모두를 폭 넓게 다룹니다. 

허울 뿐인 '평화의 섬, 제주',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 이곳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기를 바라며, 첫 번째 기사로 제주YWCA에서 진행한 평화아카데미, 박준영 인권변호사의 강연 내용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6월 10일 제주YWCA에서 강연 중인 박준영 변호사.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기적)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대사다.

이같은 질문에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 있게 말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기적이 될 수 있고, 용기가 될 수 있다”라고.

6월 10일 오후 2시, 제주YWCA에서 진행된 ‘2021평화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위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당장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만 봐도 안타까운 사건,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기사로 가득한데 말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많은 비판이 있었죠. ‘어떻게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 라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에게도 행복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그런 믿음을 부모가 가질 수 있을 만큼 희망찬 사회였다면. 그렇다면 그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그렇게 극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영화 ‘재심’ 속 주인공의 실존 인물이자, ‘재심 전문 변호사’라고 익히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 그는 비판의 중심이 된 사건에서도 ‘희망’을 말한다. 어린 자녀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부모를 마냥 비판하기 앞서, 그가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당장 가난하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는 사회. 박 변호사는 그런 사회로의 변화가 우리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믿는다.

“교육을 통해 내 삶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치는 점점 옅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 속 믿음 또한 옅어지는 사회가 되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더욱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저는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6월 10일 제주YWCA에서 강연 중인 박준영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그는 소위 말해 ‘돈 되는’ 일이 아닌, ‘돈 안 되는 일’만 골라 하는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에서 살인범 누명을 쓰고 장기간 옥살이를 한 무고한 사람들.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억울한 사람을 위해 그가 나서서 ‘무죄’를 이끌어낸 재심 사건들은 지금도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억울하게 죄인이 된 사람을 위한 무료 변호를 자처하던 박 변호사. 수입이 좋을 리 없었다. 2016년 그는 끝내 월세 감당을 하지 못해 사무실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이 같은 사정을 공개하며 스토리 펀딩을 진행했고, 5억원이 넘는 모금액이 모여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도 변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안정적으로 살아볼까? 하고요. 실제로 제 변호로 ‘무죄’를 선고받으신 분들 중에, ‘집 한 채를 사주겠다’, ‘배상금의 10%를 주겠다’ 제안하신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제가 그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져요. 제가 한 일들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처럼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희망이 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여전히 ‘돈 안 되는 일’을 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무료’ 변호다.

“'돈 생각하지 않고 활동하는 전문직 종사자도 있구나. 세상은 살 만 하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저는 돈을 안 받고 살아보려 합니다. 대신 이렇게 (수입이 있는) 강연 열심히 다니면서 말이에요.”

 

 

희망 찾기1. 슬픈 경험
"나의 아픔이 있어, 당신을 공감합니다"

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 박 변호사가 맡은 대표 사건 중 하나다.

1990년 1월 4일, 부산 사하구 낙동강변에서 30대 남녀가 괴한에게 습격을 받게 된다. 여성은 성폭행 뒤 살해되고, 남성은 폭행으로 상해를 입었다.

그리고 사건 10개월 뒤 경찰은 두 명의 용의자를 검거했고, 끝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이때 2심, 3심에서 두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것은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당시 변호사)이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무죄를 확신했다 밝히기도 했는데, 훗날 ‘35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한이 많이 남는 사건’이라 회고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확신은 옳았다. 이들에겐 죄가 없었다. 2020년 1월 5일, 법원은 재심 신청을 받아들였고, 박 변호사는 이들의 변호를 맡았다. 이어 2021년 2월, 부산고법 형사제1부(재판장 곽병수)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이 자백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 등 강압수사가 이뤄졌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건의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제 개인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의 슬픈 경험으로 이 사건에 더 관심을 쏟게 됐고, 열심을 다하게 됐죠.”

이 사건과 박 변호사 사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그가 이런 말을 한 걸까.

“21년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해자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사건 기록을 복사한 문서를 들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내가 죽어서라도 내 자식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라며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 해요. 이 사실을 접하니 뜬 눈으로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이 사건에 더 절실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죠.”

전라남도 완도군에 위치한 작은 섬, ‘노화도’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눈을 고치기 위해 5시간 배를 타고 뭍을 다녔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가 중학생일 때,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중학생 아이에게 큰 시련이었고, 슬픔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러한 “슬픈 경험이 있었기에, 사건에 몰입할 수 있었노라” 고백하고 있다. 슬픈 경험은 희망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희망 찾기2. 보편적인 감정
"변화는 보편적인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박 변호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믿는다. 혹 믿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믿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재심을 맡았던 또 하나의 사례를 들었다. 1999년 2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마켓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고, 이 과정에서 77세 할머니가 질식사한 강도치사 사건. 일명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인근에 살던 3명의 청년이었다. 이들은 죄가 없음에도 경찰의 폭행으로 범행 사실을 허위 자백하기에 이르고, 3~6년 징역을 살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진범이 나타났습니다. 죄를 자백한 진범은 할머니 무덤을 찾아가서 사과했어요. 이유가 뭘까 궁금하시죠? 바로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2016년 1월 말 나타난 진범은 박 변호사가 집필한 책 ‘지연된 정의’ 관련 스토리펀딩을 보고 자백을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건(진범의 존재)을 검사가 직접 덮으려고 하니 좋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죄책감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진범이 죄를 뉘우치고, 마음을 돌리게 만든 것은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 ‘죄책감’이었다.

“영화 ‘재심’ 속 사건에서 실제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당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은 황상만 형사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변에서 ‘바보 같은 짓’,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재심 사건에 매달린 이유는 거창한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어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 있는 15살 아이가 불쌍해서. 이를 모른 척 하면, 스스로 평생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서 였죠. 실천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투철한 정의감과 같은 특별함(이성적 대응)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정(감정적 대응)이 실천의 힘이 됩니다.”

 

 

희망 찾기 3. 소소한 행복 전하는 평범한 사람들
"작은 행복, 절망을 버텨낼 힘이 된다"

“나뭇잎이 울창할 땐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나무가 곧게 서 있을 수 있는 근원, 가지가 보이죠. 이 어려운 시기, 나와 사회를 직시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들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덧붙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행이 모여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흔히 ‘큰 기쁨을 안겨줘야 그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소소한 기쁨으로도 슬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우리 사회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지 모릅니다. ‘절망 앞에서, 큰 기쁨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전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해요.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이 부각되는 사회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소수의 특별한 사람을 조력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조명하면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같은 진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모두 똑같이 존엄한 인간입니다. 각자의 삶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혹 미운 사람이 있나요?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 주면,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할 겁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언제나 사랑이 원한보다 먼저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박준영 변호사와 사진을 찍었다. 

한편, 제주YWCA에서 열리는 '2021 평화아카데미' 행사의 다음 강연자는 최일도 다일재단 이사장이다. '밥이 평화다, 밥이 답이다'를 주제로, 오는 17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강연을 진행한다. 이는 제주도민 누구나 무료로 전화(064-711-8322)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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