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독립운동 성산면 씨름대회을 아시나요!
잊혀진 독립운동 성산면 씨름대회을 아시나요!
  • 고기봉 시민기자
  • 승인 2021.05.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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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청년 의거 재조명 되어야..

지금부터 일제강점기인 94년전 제주청년의 굳건한 기상을 드높여 준 대표적인 항일의거가 성산면 청년들에 의해 표출되었다.

하지만 8월15일이면 광복절 76돌을 맞는 가운데 지난 94년전 성산지역 청년들의 집단 항일의거가 여전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큰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성산청년항일의거는 당시 일본 어민과 어상들이 성산포 근해에서 불법 어업을 자행하던 시대상황과 1910년 8월 한일합방 이후 더욱 극심해진 민족적 차별과 맞물려, 청년들의 항일 정신이 분출되어 나타난 집단 항일의거였다.

1927년 5월16일 당시 성산면 청년연합회가 주최한 체육대회에서 일본 어민들의 행패로 성산지역 청년들의 분노가 급기야 폭발됐다.풍랑을 피해 성산포로 대피했던 일본 어민 등이 고성리에서 열린 씨름대회장에 몰려와 행패를 부리고 이를 제지하던 심판을 얼굴을 폭행하자 청년 500여명과 일본인 어민 등 200명간에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일제 경찰은 이 사건을 ‘성산포 소요 및 상해 치사 사건’이라 칭하고 전남 경찰부의 병력을 출동 시켰다.이 사건으로 일본 어민 등 1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하자 52명은 광주지방법원으로 보내져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으나, 당시 싸움을 유발한 일본 선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일제가 당시 단순한 폭력사건으로 규정한 성산면 씨름대회 항일의거의 정신은 우도와 구좌 지역으로 확산되어 1932년 해녀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는 .1932년 1월 제주해녀항쟁과 같은 해 추자어민 투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하지만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옥고를 치른 48명은 94년이 지난 지금까지 폭력범 등 범죄자의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성산면 항일의거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로 조명 받아야 할 것이며 그들의 항일운동이 범죄자·파렴치범으로부터 재조명을 통한 이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일제시대 경찰이 성산청년 집단 항일을 단순 폭력사건으로 처리한데다 당시 성산 청년들의 항일 현장인 씨름장이 세인들의 무관심으로 농경지로 개간·이용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행정당국은 성산 청년 집단항일이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또한 옥고를 치른 항일 청년들의 명예회복 및 상징적 조형물을 조성하여 지역 주민과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용기를 복 돋아야 할 것이다.

광복 후 파생된 동족간에 있었던 4·3 피해자도 복권되었는데 하물며 일제에 저항한 일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주민의 직무포기이다.

94년의 지난 성산읍 한마음  체육대회 씨름대회 모습(사진 성산읍 연합청년회)
94년의 지난 성산읍 한마음 체육대회 씨름대회 모습(사진 성산읍 연합청년회)

끝으로 성산항일의거를 지방 아동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지도서나 지침서가 간행되어야 하며 성산포, 우도, 추자도 등에서 이 땅· 이바다를 지키며 외세에 저항한 의거는 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위대한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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