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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초토화작전' 희생자 추정, 유해 3구 발견
제주4·3 '초토화작전' 희생자 추정, 유해 3구 발견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03.31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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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표선면 가시리 지역, 유해 3구 발견
제주4·3 당시, '초토화작전' 희생자로 추정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역에서 제주4·3 당시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유해 3구가 발견됐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역에서 제주4·3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3구가 발견됐다. 이에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3월 31일 수요일 오후 3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보고회를 진행하며, 발굴 경위 등을 설명했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유해 3구가 발견된 곳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지역, 감귤과수원 한쪽 귀퉁이 부근이다. 유해 3구는 모두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두개골 등 신체의 일부만 발견됐다.

(왼쪽) 박근태 일영문화유산연구원장이 발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가 유전자감식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들 유해는 제주 중산간마을 대상 초토화작전이 진행되던 1948년 12월 21일, 인근 마을에서 몰살당한 희생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한 살 어린이, 30대 여인의 유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는데, 자세한 신원은 유전자감식 등을 통한 조사가 이뤄져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발견된 유해 중 2구가 가시리 남쪽 ‘우구리동산’ 토굴과 움막에 피신했다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한 희생자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구리동산 토굴 및 움막 추정 지역과 유해 발굴 지점 간 거리가 200~300m 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유해가 어떻게 이곳으로 이동하게 됐는 지 그 배경에 대한 조사 또한 이뤄질 예정이다.

유해가 발견된 1지점과 주민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움집, 토굴 2~3지점 간에는 약 200~300m 거리가 있다.
이에 발견된 유해의 신원, 이들이 어디서 죽임을 당한 것인 지 등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에 제주4·3평화재단은 △어떻게 이곳으로 유해가 옮겨졌는지 △머리뼈 등 현장에서 발견된 일부 유해만 옮겨진 것이 맞는지 △다른 가족들의 유해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추가 조사할 방침임을 알렸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보자 강군섭(79, 남)씨의 제보와 제주4·3 진상보고서 등을 종합한 결과, 아래 3명을 유해 3구의 신원으로 각각 추정하고 있다.

△김계화 (여성, 당시 32세)

△김계화 씨 아들 강홍구 (남성, 당시 11세)

△가시리 폭남동 주민 강원길(남성, 당시 48세, 제보자 강군섭 씨의 먼 친척)

이와 관련, 이번 유해 발굴은 표선면 가시리 주민 강군섭(79, 남) 씨의 공이 컸다. 그는 수십년 세월 동안, 마을 어딘가에 제주4·3 희생자가 묻혀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그리고 수년 간 유해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우선 강 씨는 희생자 유해 중, 자신과 먼 친척인 ‘강원길’ 씨가 존재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강 씨는 청년 시절, “현재 발굴지에 제주4·3 희생자 유해 4구가 묻혀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유해 발굴을 위해 인근 토지주를 수소문해 찾는 등 부단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 유해 발굴에 큰 역할을 한 제보자 강군섭 씨.

강 씨가<미디어제주>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 씨가 청년인 시절,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을 무렵. 그는 “마을에 4·3 당시 희생당한 친척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라는 증언을 가족으로부터 듣게 된다.

이후 수십년 시간이 흘렀고, 2017~2018년 즈음. 강 씨는 면사무소에 찾아가 관련된 증언을 했단다.

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알았다”라고 답했을 뿐. 제대로 조사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다림에 지친 강 씨는 제주도청을 찾게 되는데, 도 관계자는 “제주4·3평화재단에 문의하라”는 답을 했다고 한다. 이에 강씨는 제주4·3평화재단을 찾았고, 그제서야 조사가 시작됐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관련해서 강 씨는 제주4·3평화재단에 문의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5~6개월 전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면사무소에 증언한 이후 3~4년 동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제주4.3평화재단에 문의한 이후에도 조사 진행까지 수 개월 시일이 걸린 셈이다.

이처럼 강 씨의 제보 이후, 발굴조사가 곧장 진행되지 못한 까닭은 뭘까.

이와 관련해 제주4·3평화재단 측은 “조사를 위한 절차가 있어, 실제 발굴까지 시일이 다소 소요된 점”을 알렸다. 증언과 4·3진상보고서 등을 비교한 교차 확인, 발굴조사 위치 특정, 발굴 타당성 확보되는 위치 7곳 선정 등 사전 절차 진행 때문에 이제야 발굴조사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유해 발굴 현장. 발굴을 위해 파낸 흙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모습이다.

또 제주4·3평화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이밖에도 제주4·3 당시 가시리 마을에서 희생당한 이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발굴 조사에선 발견되지 않았지만, 김계화 씨의 1살된 아들 강홍주 씨도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김계화 씨의 남편 강태춘(당시 33세)씨는 총상을 입고 살아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이밖에 그의 딸 강순자(당시 10세), 아들 강홍원(당시 6세)은 할머니와 다른 곳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진다.

또다른 희생자 유해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강원길 씨는 일가족 7명이 제주4·3으로 모두 죽임을 당했다. 몰살당한 가족은 강원길 씨와 그의 부인 고열평(당시 47세), 딸 강대열(12세, 다른 이름 강순열), 딸 강태일(5세), 둘째 부인 오차여(46세) 등이다.

이에 제주4·3평화재단은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지점, 토굴과 움막 등 학살 추정 지점을 기준으로 추가 발굴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기본 조사가 이뤄지면, 발굴된 유해의 신원 특정을 위해 유전자감식 절차가 진행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유전자감식을 맡게 될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는 도민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상, 시료 채취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료 비교를 위해 유가족 분들이 새롭게 참여해주시면, (신원을) 못 찾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호소의 말을 전했다. 

3월 31일 제주시 표선면 가시리 지역 제주4·3 희생자 추정 유해 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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