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사이공간을 찾고 활용하는 건 도심 결핍 채우는 일”
“사이공간을 찾고 활용하는 건 도심 결핍 채우는 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30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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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공간] <5> 원도심의 사이공간

쓰레기 버리던 공간에서 주민들의 쉼터로 탈바꿈
학교 외엔 놀 공간 없는 어린이들을 위한 역할도
제주시 삼도2동의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제주시 삼도2동의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도시의 확장, 그에 따른 시가지의 형성. 도시는 ‘편리’라는 선물을 주지만, 폐해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 건축가인 피터 줌터는 도시의 확장을 말할 때 쓰는 ‘스프롤현상’에 주목한다.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이 부른 결과물은 경관의 파괴로 이어졌음을 피터 줌터는 경고했다.

이번 기획에서 경관의 파괴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기획은 ‘놀이와 공간’이라는 타이틀이기에 아이들이 노는 공간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공간은 도시의 전체적인 그림을 통해 나타난다. 우리는 건축물을 바라볼 때 도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별 공간’으로 보질 않는다.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도로와 건축물 사이의 공간도 바라본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빈 공간에 초점이 가기도 한다.

어느 특정한 공간이, 주변과 아무런 유대관계도 없는 ‘개별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주변과 호흡하지 않는 ‘개별 공간’이라면, 그건 ‘죽은 공간’이 된다. 흔히 도심의 공간을 말할 때 ‘다공성’이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그건 다름 아닌 “열려 있으면서 그 기능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가 된다. 기획을 통해 여러 차례 설명했던 ‘사이공간’은 도시를 열리게 만들고, 숨쉬게 만드는 ‘다공성’과도 연결된다.

‘다공성’과 의미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쓸 수 있는 단어도 있다. 바로 ‘세포막’이다. ‘세포막’은 우리 인간의 몸에도 있고, 식물에도 있다. 세포막은 흐름이다. 그 흐름이 막히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야 한다. 도시도 다르지 않다. 공간과 공간의 흐름이 막히면 생명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혼자서 당당한 ‘개별 공간’이 아니라, 도시는 ‘열린 공간’을 추구한다.

제주시 원도심의 사이공간으로 아주 작은 쉼터가 있다. 삼도2동 176번지 일대로 옛 제주성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100평을 좀 웃도는 이 공간은 도심의 여백으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여백은 좋은 의미보다는 활용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삼도2동 이곳은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곳,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방치되는 공간이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지난 2016년이다.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이 탄력을 붙고, 제주에서도 도시를 바꾸려는 분위기가 조성된 때이다. 마침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의 마중물사업으로 버려진 이 공간을 사들인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이하 센터)가 여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도심텃밭 혹은 쉼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놀던 공간은 사들였고, 그렇다면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까. 센터는 2018년부터 ‘사이공간’으로 남아 있던 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갔다. 땅을 사들인 후 곧바로 사업추진을 하지 못한 이유는 국비의 원활한 투입이 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가 삼도2동 지역주민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가 삼도2동 지역주민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사이공간. ⓒ미디어제주

센터는 삼도2동의 이 공간 활용을 위해, 센터가 주인이 되지 않고, 원도심의 주인인 주민들의 의견을 우선 듣기로 했다. 어떤 쉼터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지역사람들과 나누었다. 왜냐하면 쉼터는 지역주민들이 찾을 땅이기 때문이다.

센터의 안현준 재생지원팀장은 의견수렴 과정만 1년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워크숍을 열고, 주민의견을 수합했다. 주민의견을 수렴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안현준 팀장은 “1년간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의견을 받았다. 그런 과정을 거친 첫 사례로 기록된다. 주민들은 단순한 쉼터가 아닌, 놀이터로 겸해줄 것을 요구했다”면서 “이런 사업은 도심의 결핍요소를 채우는 일이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놀이터’를 지목한 이유는 있다. 원도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놀 공간이 매우 부족하다. 학교 공간을 억지로 찾아야 놀 장소가 된다. 어른들이 부동산에 무척 관심을 쏟지만, 정작 어린이를 위한 그런 공간을 제대로 선물해 준 적은 없다. 원도심은 그런 공간을 요구하고 있었다.

삼도2동에 조성된 쉼터와 놀이터는 계획수립부터 주민들이 함께한 좋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죽어가던 사이공간을 살려낸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안타까운 건 ‘제주성터’라는 문화재로 인해 사이공간을 더 확장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남아 있는 제주성과는 3m 거리를 두라는 조건이 붙으면서 애초 구상한 공간보다 좁아졌다.

비록 문화재에 막히면서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데 실패했으나, 도심 곳곳에 사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여기를 들를 때면 늘 아이들을 만난다. 어찌 보면 아이들을 위한 사이공간을 찾아내고, 거기에 아이들을 담을 공간을 만들어내줘야 할 사람들은 바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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