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2:47 (수)
“건축 거장? 아뇨, 그런 프레임이 아니라 서비스여야 합니다”
“건축 거장? 아뇨, 그런 프레임이 아니라 서비스여야 합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25 2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19> 건축가 강주영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영건축사사무소 강주영 대표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나고 자랐고, 고등학교는 제주시내에서, 대학교는 뭍을 건너서 수학했다. 전남 목포시에서도 활동하며 건축사 면허를 따고는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시내가 아닌, 읍면으로 불리는 시골이 그의 선택이다. 그는 섭지코지를 추억이 담긴 땅으로 꼽았다. 그가 소개한 책은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이다.

 

 

# 소풍 – 섭지코지의 기억

고향이 없는 사람이 있던가. 수구(首丘), 그렇다.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고향은 그리움이며, 고향은 향수병도 나게 만든다. 고향은 진한 기억을 풍긴다. 기억이 없다면 고향이랄 수 없다. 때문에 어떤 이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곳에 더 강한 애착을 지닌다. 아주 어릴 때 태어났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기억을 담고 있는 이른바 ‘제2의 고향’에 매료되게 마련이다. 아무튼 고향은 기억이 진한 장소이다.

고향에 대한 오랜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단연 ‘소풍’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지금은 ‘현장학습’으로 불리지만, 소풍은, 없던 시절 아이들에겐 최상의 행사였다. 도시락이 있고, 보물찾기가 있고, 친구들이 펼치는 장기자랑이 있었다.

소풍 장소는 들판과 오름이다. 제주시에 살던 이들은 사라봉과 별도봉을 소풍 장소로 삼았다. 별도봉은 초원이 펼쳐져 아이들을 맞았다. 지금은 그 넓던 초원에 식재된 나무들이 커버려 그 기억은 사라졌다. 성산읍에 살던 아이들은 섭지코지를 찾았다. 넓은 초원이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소풍은 마음껏 외치고 뛰노는 기회의 시간임을 그 기억을 지닌 이들은 안다. 지금은 누군가 그 기억을 앗아갔다.

대기업과 중국 자본이 잠식한 섭지코지 일대. 신양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미디어제주
대기업과 중국 자본이 잠식한 섭지코지 일대. 신양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미디어제주

섭지코지에 ‘글라스하우스’를 드로잉한 안도 다다오는 거기서 놀던 기억을 지닌 아이들을 알기나 할까? 섭지코지는 대기업의 땅이다. 섭지코지를 점령한 대기업은 섭지코지에서 놀던 아이들이 누군지 알까? 섭지코지는 대기업이 중국자본에 팔아버린 땅도 있다. 중국자본은 섭지코지가 어딘지, 원주인이던 아이들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며 7층 건물을 올렸다.

문충성 시인(1938~2018)이 돌아가시기 이태 전 기자에게 선물한 시집이 있다. <귀향>이다. 그의 22번째 시집이면서, 그의 숨결이 묻은 마지막 시집이다. 경기도 일산에 있던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찾아뵙겠다고 했으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문충성 시인은 그때 “오몽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향만 생각했다.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귀향’을 말하면서.

낯선 이들 되레
이방인처럼 대합니다
이방인이 됩니다
“누굴 찾으시는지요?” 전혀
귀 선 말입니다
“누겔 찾암수과?”
이렇게 말해야 찾는 이 얼굴
생각이 나겠지요
외지인이 되어 오늘날
고향에 와도
고향은 없고
옛 동무들도 없고
초가들은 회색 콘크리트 숲 이뤄
그새 사라져버렸네요
(중략)
정지용 향수
넓은 벌도 동쪽 끝도 다 사라져버렸어요
얼룩빼기 황소도

- 문충성의 ‘귀향’ 중에서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시인에겐 고향 같지 않은 고향이란다. 친구도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친근한 고향의 향수마저 사라졌다. 개발로 사라진 것도 있을테도, 기억 저 너머로 사라진 것도 있을테다.

제주사람들.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제주사람들. 우리에게 제주라는 고향도 ‘귀향’처럼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지 말라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고 문충성 시인은 가시기 전에 그랬다.

 

 

[대담] 건축가 강주영을 만나다

 

건축가 강주영은 성산읍 고성리가 고향이다. 제주를 떠나 살다가 터를 잡은 곳은 다름 아닌 고향 마을이다. 도심지에서 건축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당당히 고향을 선택했다. 고향에서 봉사활동도 하며, 건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영건축사사무소는 식물 향기가 사람을 맞는다. 으레 건축모형이 방문객을 맞는 설계사무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책을 소개해줬는데, 건축 관련이 아니다. <프레임>인데, 왜 이 책을 골랐는가.

건축을 어떻게 보느냐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건축을 작품이라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골에 올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을 접하면서 고정관념으로 그 사람을 보고 내 중심으로 일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축을 못할 수가 있다.

 

프레임을 확장한다면 기준점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항상 고정된 틀이 프레임인데 장점도 있고 위험성도 있다.

여기 사무실엔 다양한 사람이 온다. 어쩔 수 없이 건축을 해야 하는 사람도 오고, 여유가 있어 오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대상자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잣대를 대고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는 사람인데 집이 허물어졌더라고 새로 건축은 해야 한다. 우리는 건축을 하면서 놓치곤 하는 게 없는 사람을 위한 건축이다.

그런 경우가 많다. 그들을 위해 재능기부도 한다. 집을 지어주는 사업에 동참해서 인허가를 받아주고 민원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삼달리에 계신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있다. 컨테이너에 살다 보니 녹슬고 비도 샜다. 봉사활동을 하는 로타리클럽에서 도와주는 사업을 한다며 의뢰가 들어왔고, 설계를 해주고 인허가도 맡았다. 평수는 작았다. 경량철골조의 단순한 형태였다. 최근 준공을 했는데, 할아버지가 큰절을 해주더라. 조금 더 신경 쓰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설계를 해줬는데 못 짓는 경우도 있었다. 자재비가 없어서다.

 

판사들이 판결을 내릴 때도 프레임에 갇힌다. 검사 구형 형량에 따라간다. 그런 걸 보면 사회 곳곳에 프레임이 있다. 건축에서 프레임이라면.

대학 학부 때 느낀 프레임은 거장이다. 거장이 아니면 건축가가 아니라는 압박감이 심했다. 내가 거장이 될 수 있을까? 교수님들이 가르쳐주는 것은 세계에서 꼽히는 건축물이다. 그걸 보며 내가 과연 거장이 될 수 있을까?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 건축가인가? 이런 생각을 가졌다. 그런 고정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가 서비스라고 생각을 스스로 바꾸고, 프레임을 내게 맞췄다. 소시민에게도 건축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임> 책엔 청소부 얘기가 있다. 항상 즐겁게 청소를 한다. “왜 청소를 즐겁게 하느냐는 물음에 그 청소부는 나는 지구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는 의미 중심의 얘기를 했다. 대부분 건축가들은 도심에서 오픈한다. 만약 육지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제주시내에 오픈을 했을 거다. 고향에 내려오면서 제주시내로 할지 성산으로 할지 고민을 했지만 시골에 와서 작게, 조그맣게 시작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읍면 단위로도 건축사사무소가 있지만, 예전 4개 시군 때는 읍면은 갈 생각도 했다. 지역에 필요로 하는 건축 서비스, 건축에 대한 욕망을 해소시키는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여기 와보니 놀라운 게 있었다. 불법이 너무 많았다. 1960~70년대부터 살아온 집인데 대장에 없는 집이 많아서 황당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그건 읍면 주민들이 건축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결과였다.

영건축사사무소 강주영 대표. 그는 낮은 자세의 건축인을 강조한다. 미디어제주
영건축사사무소 강주영 대표. 그는 낮은 자세의 건축인을 강조한다. ⓒ조진희

- 1990년대 북제주군 출입기자였을 때 건축물 양성화 보도자료가 많았다. 지역 건축가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무소 일 가운데 양성화 일이 많다. 전담 직원도 두고 있다. 성산읍은 토지거래허가지역이어서 거래를 하려면 불법이 없어야 한다. 상속이나 양도를 할 때 불법이 있으면 안된다.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서도, 거장에 대해서는 비판을 잘 하지 못한다.

사대주의라 생각해서 그렇다. 거장은 이유가 있다. 해외에 가서 거장의 작품을 보고 감흥도 느끼곤 한다. 르 꼬르뷔지에의 카펜터센터에 갔을 때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 눈물이 나게 만든 유일한 건물이다. 다른 건물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거장들의 작품이 제주에도 몇 개 있는데, 글라스하우스에 대한 비판도 공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글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석에서 가능하겠지만 공식적으로 쓴다는 건 어려움이 있다. (글라스하우스가 들어선) 섭지코지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장소이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중학교를 합쳐서 9년간 소풍을 간 장소였다. 1980년대와 90년대 소풍 장소였다. 고교 3학년 때는 반 아이들이랑 선생님을 모시고 사제동행을 했던 곳도 섭지코지였다. 그때가 1993년이다.

 

그때 섭지코지는 광활한 초지였다.

5월에 사제동행을 했다. 잔디는 파릇파릇하고, 뷰가 너무 좋았다. 다들 너무 좋아했고, 아이들은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냐고 내게 물었다. 너무 좋은 장소였다.

 

개발 이후 마을사람들은 쫓겨나다시피 했다. 대기업 땅이 됐다. 지금도 일부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다. 그걸 보며 제주도가 내 땅이 아니구나생각든다.

섭지코지가 팔린 걸 알고 격분했다. 헐값이었다. 그걸 다시 중국에 팔았더라. 지금도 억울하다.

 

섭지코지에 중국자본도?

싸게 사서 비싸게 판 곳이 있다. 운영도 잘 안되어 흉물처럼 돼가고 있다. 무려 7층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쉬운 소풍장소 이야기를 했는데, 본격적으로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곳은 섭지코지이다. 매일 걸어서 소풍간 장소이다. (강주영 소장은 옛날 사진을 보여주며 섭지코지 기억을 떠올렸다.)

굴러다니면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추억의 장소였다. 유채꽃이 사방에 피면 주변은 향기로 가득찼다. 고교 사제동행 때 참모습을 봤다. 진짜 좋은 곳이구나 느꼈다.

 

자기 것에 대한 중요성은 살짝 떠나보면 안다. 평생 같은 지역에 살았으면 몰랐을텐데, 제주시에 갔다가 고향에 와보니 알게 된 것 아닌가.

매일매일 다니던, 공기 같았던 섭지코지 그곳을 떠났다가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며 다시 한번 보게 되고, 대학에 들어가서 제주에 와보니 제주의 가치를 더 알게 됐다.

 

바닷가도 오고 가곤 했나.

지금도 꿈은 해녀이다. 바다를 좋아하고, 낚시를 했던 곳이다. 그런 섭지코지 바다를 통제당했다고 하더라.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데모를 했다. 섭지코지 시작되는 부분부터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다가 지금은 둘레길은 봐준 것이란다.

 

대기업 자본이 그렇다.

땅만 뺏긴 게 아니었다. 섭지코지는 해녀들의 수확이 가장 많은 곳이다. 낚시도 잘 되는 곳인데, 아버지랑 낚시를 했던 추억의 장소이다.

 

섭지코지는 개인적으로 무척 중요한데, 제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제주도라는 땅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귀포 건축포럼을 몇 년 했다. 그 전엔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건축포럼을 하면서 이해되지 않은 걸 목격했다. 토지의 사유화이다. 헬스케어타운, 비오토피아 등이 있다. 경관의 사유화는 막아야 하는데, 모두가 같이 즐겨야 되는 곳임에도 사유화된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오포티아는 숨겨 있어 잘 모르지만, 헬스케어타운은 밑에서 보면 공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교육도시도 그렇다. 왜 곶자왈 지역에 했을까. 임야를 전으로 바꾸는 행태도 많이 보게 된다. 영어교육도시 인근에서 이뤄지는 행위이다. 그러면서 계속 파괴된다. 공기업이 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공간은 소통이 중요한데 그러지 않는 곳이 많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그렇다. 육지보다는 낫지만 아파트는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심하다.

제주도에도 그런 아파트는 있다. 단지에 살지 않는 사람은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언니가 사는 곳인데, 밖에 차를 세워놓고 언니에게 나오라고 한다. 언니 집으로 오라고 하면 괜히 불편해진다.

 

제주도라는 땅의 전체적인 가치를 정리해준다면.

자연은 같이 나눠쓰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개인이 독점할 수 없다. 다같이 나누는 자산이기에, 자연을 쓸 때는 겸허한 자세여야 한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제주도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성산이라는 곳은 어떤가.

성산일출봉을 서로 사유화하려고 한다. 건물을 서로 높인다. 자기 집에서 봐야 하니까. 도시형생활주택이 성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버티고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아쉽다.

(이 부분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도 아쉽게 여긴다. 아이들이랑 놀러 다니던 갯벌에서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 느낌은 예전과 다르다. 높은 건물이 올라와 있어서다. 성산리 입구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역시 성산일출봉을 가지려는 기업의 욕심이다.)

 

이 일대는 성산일출봉이 포인트?

여기에 나홀로 아파트가 있는데 남향보다는 동북향이 제일 비싸다. 성산일출봉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온 분들은 향이 좋지 않아도 일출봉을 보려 한다. 제주도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남향, 동향, 남동향을 중시하지만 그래도 성산출봉을 보고 싶어한다.

 

주로 성산읍 지역에서 주택 설계를 하나.

다른 지역 의뢰도 많지만 되도록 성산읍에서 소화하려고 한다. 자주 가봐야 하고, 설계뿐아니라 완공까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주 갈 수 없는 곳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용도인 경우에 설계를 맡는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분에게 추천을 해준다.

 

주택설계는 장단점이 있을테다.

대화를 많이 하고, 시간이 많이 든다. 어떤 건축주와는 설계에 1년이 걸렸다. 인허가 들어가기까지가 1년이었다. 나중에 허가 한달 차이로 개발부담금 대상이 되어서 난감했다. 주택은 일생일대 한번 짓는다. 재료부터 지붕 모양, 평면을 고민하는데, 고민을 한만큼 좋은 결과도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장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본다면.

라이프 스타일은 각각이다. 주택 설계는 재미있고, 내가 살 집도 설계하고 싶다는 로망이 쌓인다. 그래서 건축주 얘기를 귀담아 듣는데, 하루종일 미팅하기도 한다. 얘기를 많이 들어야 그들이 원하는 걸 제대로 반영시킬 수 있어서다. 나중에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서 가면,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준다.

온평리에 설계한 주택은 그 집 할머니에게 칭찬을 받았다. 땅은 작은데 3대가 살아야 하는 집이었다. 노부부가 와서 손잡을 때 뿌듯했다. 여기 분들은 여유가 있어서 집을 짓는 게 아니다. 농촌개량사업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주택 설계를 하면서 특이한 사례가 있는가.

앞서 내집 지어주기 사업을 하면서 큰절을 받은 기억이다. 미안하기만 하다. 옆집 사람이 집을 짓지 못하게 할 때 힘들었다. 자신의 집이 보이게 창을 내지 말라고도 하더라. 설계보다 민원인 상대가 더 힘들었다.

 

왜 그럴까. 땅에 대한 욕망인가.

예전 땅값이 아니다. 이 일대도 은근히 비싸다.

 

제주도의 부동산은 너무 비싸다. 이러다 자본에 종속되는 건 아닌가.

땅 분쟁도 심하다. 형제들끼리 재산다툼도 커지고 있다. 상속받으면서 분쟁 안나는 집안이 없다. 이 동네도 마찬가지이다. 자식과 부모 갈등도 생기고. 땅 가치가 올라가면서 사람간의 갈등 심하다.

 

안타깝다. 개발도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주체의 문제이다. 제주개발은 도민 주체가 아니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어차피 제주에 살 사람은 우리 자녀들이다. 미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제주도는 도로를 잘 닦는데, 앞으로는 시대가 달라진다. 도로에 치중하는 정책을 벗어나야 한다. 도심도 분산되지 말고, 이왕이면 콤팩트 있게 만드는 게 낫겠다. 집중해서 인프라를 만들고 나머지는 자연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생각해본다.

 

도로 얘기도 나왔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은 몇 개나 될까. 공원을 걸어서 갈 수 있다면 사람 중심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사람 중심이 아닌, 차량 중심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로 만들까

주차장 법을 바꿔야 한다. 먼저 대중교통이 발달해야 한다. 현행 버스개편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한 가정에 차가 몇 대씩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걸어다니면서 뭔가 보고해야 하는데, 주차장을 크게 만든 대자본만 돈을 버는 구조가 됐다. 마을 한쪽에 주차장을 만들고, 걸어다니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

 

사람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고정 프레임이다. 관에서 주도적으로 해준다면 상권도 살아나고, 건강해지고, 환경도 살리게 된다.

 

불편에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무조건 동네는 걸어다니고, 동네마트는 걸어간다는 사고가 중요하다. 캠페인 차원에서 해야 할 것 같다.

차츰 걷는 것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를 바꾸고 제도를 바꿔서 걷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가로수도 그렇다. 인도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의 도로도 있다. 차도는 크게 만들어두는데 인도는 작다.

 

제주사람들은 녹지비율 높다고 착각한다. 실제 도심녹지는 빈약하다.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녹지가 풍부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성산에서 갈 수 있는 공원이라면.

수산봉? 거길 가지 못하면 밭에 무 크는 걸 보고, 과수원 보는 게 녹지이다. 아이들이 놀 공간은 학교와 하수처리장 뒤에 있는 놀이터, 그게 전부이다.

 

학교가 중요한 것은 지역과 연계돼 있다. 아쉬운 것은 방과후 이후 학교굥간이 지역과 단절돼 있다. 방과후에 학교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학교 도서관이 그렇게 안된 이유는 학교 울타리내에서 발생하는 일은 무조건 학교 책임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안 열어둔다. 5시 이후는 사회가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학교 도서관은 학생도 오고, 지역주민도 오고, 관광객도 올 수 있는 공간이 될텐데.

성산읍사무소 신축과 관련된 심사를 한적이 있다. 학교 연계를 눈여겨봤다. 여기는 맞벌이 부부도 많기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둔 곳에 높은 점수를 줬다. 관공서는 6시 이후에 문을 닫는데 그 이후에도 열린 공간을 계획한 작품이었다. 아쉽게도 떨어졌다.

 

앞으로는 그런 건축이 필요하고, 공공시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관은 공공의 서비스를 하는 기관이고, 영역이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돼야 한다. 내 집은 아니지만 누구든 와서 자유롭게 내 집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특히 성산읍에 있는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 그렇더라면 관에서 해줘야 한다. 열려 있어야 올 수 있다. 6시만 되면 불이 꺼지고 통제하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어야 한다.

 

건축가라면 다들 지역성을 이야기한다.

논문을 쓰면서 느낀 건 제주도가 대게 창의적이라는 생각이다. 농촌주택개량사업을 하던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 때 표준설계도가 있었다. 제주도는 그 표준설계도랑 달랐다. 제주도만의 독특한 걸 만들었고, 제주도만의 색깔이 있었다. 제주도 사람의 현명함을 알았다. 예를 들면 굴뚝이다. 육지의 표준설계도를 보면 굴뚝은 집 밖에나 뒤에 숨어 있다. 제주도는 정면에 의장적 요소로 쓰였다. 건물 양쪽으로 굴뚝이 있다. 굴뚝 바깥은 타일로 치장을 하고, 숨기고 싶은 걸 전면에 내세웠다. 비가 많이 오니까 처마의 테두리를 만드는데, 이것도 의장적 요소를 지녔다.

 

오래전부터 제주도는 지역적 해석을 잘했다. 강 소장이 생각하는 지역성이란.

바람, , 햇빛 등의 자연적인 요소들을 선배들은 잘 활용했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 이런 영향을 덜 받겠지만 그렇다고 무시를 하진 못한다. 자연을 반영한 건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처마를 길게 내거나, 창문과 비에 대한 생각, 바람에 대한 생각, 남동풍인지 북서풍인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아무튼 옛날부터 우리는 그런 걸 건축에 담아왔다.

 

건축가로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건축가는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건축의 전문가인 건축가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내가 위에 있으면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거장이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이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으로 임한다. 건축을 바라보는 가치관은 다들 다르고, 늘 배우는 입장이다. 내가 모든 걸 안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건축주에게서 생각지 못한 걸 배우기도 한다.

 

재능기부도 하는데.

재능기부는 하면 좋지만 그런 기회를 갖는 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 시골에 있다 보니 그런 기회가 생긴다. 건축설계를 하는 것만 재능기부가 아니다. 일부러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봉사도 하려 한다. 건축은 돈이 들어가기에 설계를 무료로 해주어도 돈이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하기도 한다.

 

<프레임>, 최인철 지음

 

이 코너엔 늘 건축 관련 책을 써왔다. 건축을 전문적으로 말하는 서적, 혹은 그런 서적은 아니지만 문학작품에 녹아든 건축을 읽었다. 이번에 소개할 <프레임>은 다르다.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심리학과 건축학은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프레임’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은 다른 학문이라도 의미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프레임은 건축으로 읽힌다. 어쩌면 그것은 고정관념이다. 건축은 ‘틀’이 있어야 한다. ‘틀’을 세우고 나서야 건축물이 된다. 거푸집이 프레임이고, 창틀도 프레임이다. 특히 현대건축은 프레임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얼기설기 얽힌 상태에서 건축은 탄생한다. 손으로 주물럭거려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높이의 한계와 크기의 한계를 지닌다. 어쨌든 건축은 프레임을 지녀야 살아난다. <프레임>에서 말하는 프레임은 그런 게 아니지만.

<프레임>은 고정관념의 탈피를 말한다. 우린 알게 모르게 프레임에 갇혀 산다. 사람들은 누구나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잘 들여다보면 객관적인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둔 프레임에서 나오는 ‘객관화로 포장된 주관’일 뿐이다. 프레임은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인 건 분명하지만, 늘 한계를 지닌다.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한정되어 있고, 세상의 바라보기를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레임>에 자신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저자가 헐레벌떡하며 강의실에 들어가려는데 대학교 주차장은 꽉 차 있고, 어쩔 수 없이 학교내 도로에 차를 세워야 했다. 도로변에도 차를 세울 곳은 없었고, 두 차 사이의 좁은 공간에 대각선으로 차를 세울 공간을 발견했다. 저자는 45도 형태로 차를 세우고 강의실로 향했다. 수많은 차가 세워진 도로라는 공간에서 45도로 꺾여 세운 한 대의 차량은 별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도로 양옆에 세운 차들이 빠져나가면서 인도에 반쯤 걸쳐 45도로 세운 그 차는 질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캠퍼스의 심각한 주차난’을 뚫고 차를 세운 저자였지만, 차가 모두 사라지자 ‘주차난’이라는 맥락은 사라지고 ‘이상한 주차 행태’만 남게 됐다. 이렇듯 프레임은 맥락으로 작동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앞뒤 내용을 다 잘라내고 인터뷰를 담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저자가 당한 주차난과 다르지 않다.

특히 프레임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그렇고, 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 구분도 그렇다. 은연 중에 우리는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젠더 프레임’에 갇혀 산다. 응급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라는 말에 사람들은 자동으로 남성을 떠올린다. 간호사라는 단어는 여성을 상기시킨다. 미국의 백인 경찰이 흑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총기사건도 그렇다. 어쩌면 백인 경찰은 흑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혜로운가”라면서. 어떻게 답을 내릴까. 지혜롭다고 할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사람도 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 게 아닌가”라면서 문제를 슬쩍 비껴가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지혜는 나이와도 상관없고, 배움의 많고 적음과도 관계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한계를 인정하는 그 자체가 지혜라고 한다. 한계를 인정한다는 건 오류를 찾아내는 일이며, 그건 곧 프레임이라는 허점과 한계도 아는 일이다. 그래서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 지혜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렇다고 프레임이 없이 살 수는 없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프레임을 만들고, 주변도 행복하게 사는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 저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프레임으로 11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하나 나열해본다.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접근 프레임을 견지하라, ‘지금 여기’ 프레임을 견지하라,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주변의 물건들을 바꿔라,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져라, ‘누구와’의 프레임을 가져라,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인생의 부사(副詞)를 최소화하라 등이다.

저자가 제시한 11가지 프레임은 역시 ‘프레임’이다. 누군가에겐 족쇄가 되는 프레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프레임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하면 그만이다. 11가지 중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프레임은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는 프레임이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일은 피곤하다. 남이 내가 될 수 없기에 그렇다. 코로나19 시대를 긍정적이면서도 가치를 지니며 살려면 자신의 달라지는 프레임을 만드는 일이다. 어제와 다른 나, 오늘과 다를 내일의 미래를 만들면 된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삶이 절박했던 누군가에겐 아주 간절했던 내일이었고, 오늘과 다를 내일 역시 누군가에겐 더 나아지고 싶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